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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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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갈 집을 찾았다. 독일에서의 이사는 정말 어렵다. 특히 내가 원하는 일정 조건을 갖춘 집을 만나는 건 어렵다 못해 인간의 노력 이면의 신 또는 운의 영역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조건의 집이 나와도 그 집에 방문예약 신청서를 보내고, 연락을 받아 약속을 잡고, 집을 보면서 인터뷰를 하고, 최종적으로 집주인이 나를 선택하기까지 많은 관문이 있다. 지원자로서 일종의 '결격사유'가 없는 편이 아무래도 인터뷰의 기회가 많이 올 것이다. 우리는 제법 큰 결격사유 중 하나인 '외국인'으로서 남들보다 약간 더 실패를 맛봐야 했다. 집을 사려다가 포기한 이유 나와 면조는 작년부터 immobilienscout24, immowelt, meinestadtde, ebay kleinanzeige, wg gesucht 등의 앱을 ..
폭우와 홍수 후 날씨가 다시 맑고 더워졌다. 지난번에 우울증과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은 독후감(비슷한 거)을 쓰기도 했지만 한동안 많이 우울했다. 아무래도 8개월을 기다려 드디어 맞이한 여름인데도 날씨가 너무 춥고 계속 비가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홍수도 심하게 나서 서북쪽 독일에선 사람들이 많이 실종되고 죽기도 했다. 오래된 대륙의 한 복판에 위치한 독일은 전쟁은 몇 차례 겪긴 했지만 자연재해는 별로 겪을 일이 없던 축복받은 자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할 정도의 홍수는 겪은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5년간 살면서 태풍이 지나가는 경우를 매년 보긴 했지만 한국처럼 비가 종일 가차 없이 퍼붓는 장마와 관계된 태풍이 아닌 폭우를 동반한 심한 바람 정도였어서 나무가 쓰러지는 정도가 재해였다. 집이 물에 잠기고 차가 떠내려가고 ..
우울할 땐 뇌과학 그리고 에어팟 뇌과학 책이 읽고 싶어 져서 며칠 전부터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제 절반 좀 넘게 읽어서 책의 두 단락 중에서 첫 단락인 뇌의 각 부위별 신경이 담당하는 역할과 해당 기능의 활성도에 따른 우울증 증상 또는 상관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두 번째 단락에서는 각 부분의 신경을 자극하는 생활 습관과 그 원리를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동안 내가 겪고 있는 것이 우울증 증상임을 확신했다. 정확히 시점을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판데믹 전후부터 나는 불확실한 일에 대해 최악의 경우의 수를 상상하는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판단이나 선택을 미루는 경우가 잦아졌다. 심한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급기야는 수면의 질도 안 좋아졌다..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살기 바질 페스토(페스토 제노베제)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하고서 나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전까진 페스토는 시판 고추장이나 간장을 사 먹는 것처럼 슈퍼마켓에서 사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생바질 잎을 사더라도 보통은 샐러드나 피자 위에 뿌려 먹고 끝났었다. 사실 페스토를 만들기 위해서 생바질을 따로 산 적은 없다. 큰 발코니를 그냥 두기 아까워서 하나 둘 화분을 만들어 두고 만만한 허브 씨앗을 사다가 조금씩 심어봤고, 그중 가장 수확량이 많은 바질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막상 레시피는 되게 간단한데 이걸 직접 만들 엄두를 내 볼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진 오랜 세월과 많은 변화가 필요했다. 작은 화분에서 바질을 키울..
두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 6월엔 일기도 거의 못썼는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그네라는 별칭에 충실하게도 면조(이 역시 본명이 아님)가 대학이 있는 도시의 기숙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통에 나까지 같이 바빴다. 나그네가 없이 나 혼자 고양이 둘과 지내는 시간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6:4 정도로 섞인 나날을 보냈다. 나도 기숙사가 있는 바이에른 남부에 놀러갔다 오기도 했다. 결혼기념일 즈음에는 늘 같이 여행을 가는데, 이번 9주년(!!)에는 독일에 있는 알프스 줄기를 산행했다. 독일에도 알프스가 있고 그 은혜로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그 외에는 세금 신고에 따른 증빙서류를 챙겨 보내느라 바빴고, 몇 가지 부동산 매물을 보고 연락하고, 혼자서 방문하기도 했다. 이제는 아파트 매매는 완전히 포기하고..
화창한 날엔 반드시 빨래를 해야 해 하루 종일 맑고 화창한 토요일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8개월 만인가?! 진짜 그렇진 않겠지만 체감은 그렇다. 침대 시트 빨래를 해야 한다는 알림이 한 달도 더 전에 떴었는데 햇빛에 말릴 수 없는 날씨 때문에 한 달을 넘게 미뤄뒀었다. 엄청나게 오랜만에 눈 떠서 해가 화창한 걸 보자마자 시트를 벗겨내 빨래를 했고, 하루 종일 햇빛에 바삭바삭하게 말렸다. 극세사 목욕가운도 빨아서 옆에서 같이 말린 덕분에 지금 샤워 후 입고 있는데 기분이 정말 좋다. 원래도 단조로웠지만 코비드로 인해 더더욱 단조로워진 내 생활중에 그나마 위안과 치유가 되는 행위는 이런 maintanence를 위한 집안일들이다. 물건이든 공간이든 아껴서 깨끗하게 잘 사용하는게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일단 제대로 관리를 하려면 관리대상의 ..
춥고 더디다 오늘 정말로 오래간만에 하루 종일 비가 오지 않았다. 해도 떴다. 다음 주 일기 예보를 보니 드디어 밤 기온이 10도보다 높이 올라가는 날들이 찾아온다. 가장 추운 5월로 기록되는 올 해는 봄이 와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이 미뤄져 있다. 일 년 중 회사일이 가장 바쁜 시기이니만큼 그동안 일만 열심히 했다. 집안에 틀어박혀서 일만 하고 지내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식사와 집 정리를 마치고 요가하고 씻고 조금 놀다가 잠이 들면 하루가 끝난다. 너무 단조로워서 어쩐지 슬픈 나날이다. 여러모로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든다. 그 와중에 기쁜 일은 있었다. 삼 년 넘게 쓴 랩탑을 바꿀 타이밍인데 최근에 비디오 작업을 많이 한다는 것을 핑계로 엄청 고사양의 맥북프로..
쉬면서 본 일드 세 작품 감상 - 고잉 마이 홈, 호타루의 빛,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나는 고등학생 때 일본 음악과 일본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한 2-3년 정도 푹 빠져서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고는 더 이상 보지 않았었다. 그때 고쿠센이랑 트릭이 한창 방영하던 때였고, 좋아하는 배우나 작가를 따라서 더 오래된 작품도 많이 찾아봤었다. 그러고는 아주 오랫동안 몇몇 많이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는 봤지만(오센, 심야식당, 한자와 나오키,...) 도무지 일드를 보는 게 취미라고 말할 수는 없는 삶을 살았다. 끊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예상하기를 대학교에 가서 바빠졌고, 캐나다에 가게 되어 인터넷 스트리밍 등을 통해 동아시아의 컨텐츠를 보기 어려워져서 그런 것 같다. 대신 내 관심사는 영어권 나라의 컨텐츠로 옮겨갔었다. 캐나다에서는 한동안 호러, 미스터리, 좀비 영화들을 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