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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Chapter 1 vom meinem Leben in Deutschland ist bald zum Ende

면조와 나의 자전거 두 대가 나란히 벽에 세워져 있음. 독일에 와서 산 첫 이동수단. 내 자전거는 팔 예정이다.

독일어 시험을 봤다. 구우지 꼬옥 반드시 봐야만 하는 건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본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결과에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시험도 아니었다. 구두나 글쓰기로 자기소개, 상황 설명, 약속 잡기, 간단한 의견 피력을 할 수 있고, 상점이나 대중교통, 정부에서 공지하는 것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요구하는 B1 레벨이다. 그 정도를 어떻게든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구글 번역기도 없이 시험을 보자니 막막하기는 했다. 이래저래 삶이 바빴고, 퇴근 후에 공부하기란 생각보다 더 끔찍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시험 준비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시험센터를 찾아 예약을 했고,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했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약간 준비했고, 토요일 당일에 아침 일찍 일어나 시험도 끝까지 다 봤다. 이 점에 대해서만 자축하며 4주를 기다리련다. 시험 결과가 나올 때쯤이면 나는 이미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해 있을 것이다. 거기서 축하를 할지 분풀이를 하며 마당의 잡초를 뽑을지 아직 정말로 모르겠다.

 

시험 보고 만하임에 들러 사고 싶던 램프를 실물로 구경하고, 동료를 잠깐 만나 같이 커피 한잔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는 파티용 색종이 파티클을 주머니에 가득 담아와서 시험 본 것을 축하한다며 내 머리에 팍팍 던져주었다. ㅋㅋㅋㅋㅋ 바닥에 흩뿌려진 흔적은 다 같이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리고 시험 본 날답게 다 같이 독일어로 얘기했는데 내 독일어 수준이 너무 수치스럽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이런 걸 견뎌야 느는 거겠지? ㅠㅠ

 

오늘은 오래간만에 시험 준비에 대한 걱정 없이 보내는 일요일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면조가 나를 가만히 냅두질 않았다. 얼마 후에 갈 스위스 여행에서 면조의 친구들과 호수 수영을 할 예정인데, 호수 수영을 위한 특훈을 해야 한다며 날 수영장으로 끌고 갔다. 자유형부터 배우는 한국과 달리 유럽 사람들은 평영과 개헤엄을 먼저 (또는 유일하게) 배우는 것 같다. 호수나 바다에서 고개를 물에 집어넣지 않은 채로 오랜 시간 부유하기에 좋기 때문이리라. 다들 어릴 때부터 호수 수영을 많이 해서 되게 잘 떠있는다. 그런데 자유형부터 배영, 평영, 접영을 순서대로 배운 나는 상대적으로 평영과 접영을 가장 못한다. 아무래도 배운 기간이 앞에 두 가지에 비해 짧아서 연습량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평영도 물속에 머리를 넣었다 뺐다 하는 리듬과 호흡법만 익혔기 때문에 아무리 부력이 좋아도 머리를 어느 정도 담갔다 뺐다 해야만 한다. 고개를 들고 있으려고 의식하면 팔다리 동작이 되게 바쁘고 정신없이 꼬여서 오래 버티질 못한다. 그래서 호수 수영을 위한 평영을 연습하고자 했는데, 거의 2년 만에 찾는 수영장에서 몸도 제대로 안 풀린 상태로 그런 게 될 리가 없었다. 어린이풀에서 좀 연습하다가 몸이 좀 풀린 뒤 깊은 풀로 가서 다시 여러 바퀴 돌며 연습을 했지만 결국 운동만 실컷 하고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아마도 중급 수영반을 다닌 이후 처음으로 평영으로 50미터 풀을 계속해서 몇 바퀴씩 돈 것 같다. 아무래도 내겐 자유형이 가장 힘을 덜 쓰고 빨리 갈 수 있는 영법이라 운동을 위해 수영장을 찾을 땐 주로 속도랑 자세에 신경 쓰며 자유형만 여러 바퀴 돌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마어마하게 오래간만에 수영을 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춥고 흐린 날이었지만 간간히 해도 비쳤는데, 야외풀에 햇빛이 들어오는 물속 풍경이 너무 예뻤다. 날씨 덕에 사람도 없고 정말 한산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자전거를 닦고 사진을 찍어서 이베이에 올렸다. 내 자전거는 정말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환경에 어울리진 않는다. 그래서 많이 타지는 못했다. 빠르고 아름답고 보기만 해도 설레는 이 녀석을 보내야 하는 것이 슬프지만, 누군가 더 멋지게 타 주겠지. 나는 돈이 필요하다. 혹시 안 팔리면 이사 간 동네에서 접근이 괜찮은 자전거 길을 발굴하면 된다. 아니면 역시 여기저기서 타기 편한 바퀴 두툼한 시골 자전거를 사면 된다. 점점 멋 부림에서 멀어지는 삶을 사는 것 같아서 살짝 안타까우면서도 이게 몸과 마음은 더 편한 게 사실이니까.

 

일기 제목은 '독일에서의 삶 챕터 1이 곧 끝나려 한다'란 뜻이다. 저 자전거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다. 학생으로 왔던 처음과 달리 나는 더이상 어지간해서는 자전거와 대중교통을 타지 않는다. 곧 좀 더 안락한 집으로 이사도 갈 예정이다. 이사 가고 나면 수영장이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수영 동호회도 가입하고 싶다. 좀 더 이 동네에 오래 정 붙이고 살 기틀을 만들고 싶다. 사실 큰 도시에서만 살다가 이 시골마을에 오게 되었을 때는 불편하고 답답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도시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는 대신, 이때 아니면 다시 해보기 어려울지도 모를 전원의 삶(?)을 좀 더 제대로 만끽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하우스를 찾게 되었다. 어쨌든 서울이란 메트로폴리탄에서 30년을 살다 왔으니까. 그래서 비교는 내려두고, 가끔 쌓인 욕망은 프랑크푸르트 같은 곳에 나들이 가서 푸는 걸로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한가한 곳으로 들어가 살게 되어 기쁘다. 뭐 그렇다고 엄청 외진 곳도 아니고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10분 떨어진 곳에 있는 일반 주택가다. 그렇지만 완전한 이방인의 삶에서 한 동네에 사는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다. 막상 살아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의 각오는 이렇다.

 

주말이 바빴던 탓에 아빠에게 전화를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매일 아빠 걱정을 한다. 오랫동안 엄마를 걱정하던 뇌가 아빠로 대상 설정을 다시 한걸까. 아무튼 그래서 전화 타이밍을 놓쳐 약간 불안하다. 집이 잘 정리되고 아빠가 시간이 나서 놀러 오실 날이 너무 기다려진다.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해 준 시골 생활을 조금씩 좋아하게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