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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폭우와 홍수 후 날씨가 다시 맑고 더워졌다.

눈부신 햇빛을 거슬려 하며 눈감고 쉬는 우리집 상전 요를레이

지난번에 우울증과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은 독후감(비슷한 거)을 쓰기도 했지만 한동안 많이 우울했다. 아무래도 8개월을 기다려 드디어 맞이한 여름인데도 날씨가 너무 춥고 계속 비가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홍수도 심하게 나서 서북쪽 독일에선 사람들이 많이 실종되고 죽기도 했다. 오래된 대륙의 한 복판에 위치한 독일은 전쟁은 몇 차례 겪긴 했지만 자연재해는 별로 겪을 일이 없던 축복받은 자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할 정도의 홍수는 겪은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5년간 살면서 태풍이 지나가는 경우를 매년 보긴 했지만 한국처럼 비가 종일 가차 없이 퍼붓는 장마와 관계된 태풍이 아닌 폭우를 동반한 심한 바람 정도였어서 나무가 쓰러지는 정도가 재해였다. 집이 물에 잠기고 차가 떠내려가고 이런 건 확실히 본 적이 없다. 내가 사는 주도 피해를 입은 부분이 있어서 회사로부터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에 대한 염려와 당부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안타깝고 두려운 상황 중에 내가 사는 지역의 날씨는 다시 맑아졌다. 해가 나고 오늘은 기온도 올라가서 제법 여름 날씨 같아졌다. 한국에 살 때는 나는 여름을 아주 싫어했는데 (누가 좋아하겠어? 끈적하고 불쾌하고) 여기 와서 깨달았다. 나는 오히려 추위를 되게 많이 타고, 햇빛과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그냥 습기가 많은 계절이 싫은 걸까? 아무튼 여기에선 원래 좋아했던 겨울을 별로 안 좋아하게 되었고, 대신 여타 유럽인들처럼 여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날씨 덕분인지 아니면 책도 찾아 읽고, 테드 강연도 보고, 갖가지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인 노력들을 한 번씩 실천해봐서 그런지 우울감은 많이 나아졌다. 지난 주말에 N과 S가 만나자고 했다 말았다 애매하게 굴어도 거절하지 않고 무사히 성사시켰는데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면 사고 날 확률이 늘어나니까 꺼려했었는데, 스펙터클한 하늘을 보며 고속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해보지 않고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게 우울감이 가져다주는 대표적인 병증인 것 같다. 친구들이 그동안 연락도 안 하고 약속도 거절해온 것에 대해 화를 내는 대신 걱정과 공감을 해줬다. 경험담과 조언을 주었고, 미국에 사는 누나가 보내줬다며 멜라토닌 보조제도 한 통 선물로 줬다. 일주일 동안 침대에 들기 전에 챙겨 먹어봤는데 어젯밤에서야 효과가 있었구나라는걸 깨달을 수 있을 만큼 잠드는데 고생도 안 하고 아침까지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잘 자놓고 노르망디가 내 베개 위에서 그릉대고 있던 탓에 다시 잠들어서 늦잠도 좀 잤다. 잠을 많이 자니까 과연 뒷목과 어깨에 묵직하게 있던 통증도 가시고 컨디션이 좋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정신적으로 안갯속을 헤매고 있던 탓에 많은 것을 못하고 살았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도 좀 버거웠다. 싫어 죽겠다고 몸부림치는 몸을 어르고 달래서 산책이라도 좀 할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그 외에는 걱정만 하면서 폰만 들여다보고 살았다. 이런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또다시 걱정을 하면서. 그런데 며칠 전에 친구가 알려준 유퀴즈에 나온 구글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시는 분이 겪었던 무기력증 시기의 클립을 보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고, 트위터나 주식앱(ㅋㅋ)이라도 들여다보면서 도파민을 공급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어떻게든 괜찮아 보려는 무기력자의 노력이라는 것도 배웠다.

 

오늘은 아빠와 시부모님께 전화드리고 나서 새로 산 러닝화를 신고 작은 숲 공원에 가서 달리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쿠션이 기가 막히거든. 에어팟과 함께 산책이 쉬워졌다면 러닝화와 함께 운동도 쉬워질 것을 기대한다. 역시 지름신은 내 유일신이야(?!) 덕분에 큰 도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