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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우울할 땐 뇌과학 그리고 에어팟

산책길에 지나가는 어떤 집 정원의 탐스런 분홍수국
종종 산책하러 가는 작은 숲길

뇌과학 책이 읽고 싶어 져서 며칠 전부터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제 절반 좀 넘게 읽어서 책의 두 단락 중에서 첫 단락인 뇌의 각 부위별 신경이 담당하는 역할과 해당 기능의 활성도에 따른 우울증 증상 또는 상관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두 번째 단락에서는 각 부분의 신경을 자극하는 생활 습관과 그 원리를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동안 내가 겪고 있는 것이 우울증 증상임을 확신했다. 정확히 시점을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판데믹 전후부터 나는 불확실한 일에 대해 최악의 경우의 수를 상상하는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판단이나 선택을 미루는 경우가 잦아졌다. 심한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급기야는 수면의 질도 안 좋아졌다. 잠을 잘 못 잔 날의 후유증도 생각보다 크고 오래가는데, 두통은 물론 근육통과 관절 쪽 신경통까지 며칠을 괴롭게 만든다. 이 모든 증상이 책에서 언급되는데, 정확한 작용 부위와 원리까지 설명이 되어 있다. 또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내가 최근에 관찰을 통해 깨달은 바로는 인지하는 시간의 범위가 되게 짧아졌다. 가령 예전에는 적어도 1~2주 전후로 총 2~4주간의 일을 대략적으로 기억하고 계획하며 살았다면, 요즘에는 이틀만 지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떠올리기 어렵고 당장 주말의 계획조차 캘린더의 메모를 확인하지 않으면 깜깜하게 모르고 살고 있다.

그동안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우울하고 슬픈 기분에 빠져 지내지는 않기 때문이다. 불안한 마음이 드는 때는 좀 성가시지만 홈 오피스에서 일과 집안일을 하고, 록다운으로 제한된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어려움도 불편함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불안하고 싫었지만 그 것은 바이러스라는 확실한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몇 차례나 겪은 심적으로 힘들고 무서웠던 일들을 떠올리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상황이 어쩌면 당연한 순리적 결과라는 생각은 든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육 개월도 되지 않았다. 이모부의 갑작스러운 부고로 인해 충격을 많이 받았고, 불안증이 한층 심해진 것도 또라이 이웃과의 사건을 겪은 이후다(이때부터 외출할 때마다 페퍼 스프레이를 들고 다녀야 불안함에 떨지 않는다).

이러한 기간을 견뎌 오면서도 한가지 희망적인 면은 있었다. 운동을 매일 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록다운으로 인해 신체활동이 확 감소해서 체중이 하릴없이 늘어나는 것이 걱정되어 시작한 홈트레이닝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내가 알코올 대신 의지하는 유일한 것이 되었다. 운동이 좋았던 이유는 시간을 보내는 덜 지루한 방법이면서 신체에 끼치는 이점이 많고, 평소에 지나치게 많은 잡생각이나 스크린 타임을 줄이는 역할을 하며, 무엇보다도 실제로 자세교정과 통증 감소가 효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스스로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심해지는 것이 걱정되어서 날씨가 너무 나쁘지 않은 날에는 짧게라도 산책을 하려고 노력하는데 이 것도 도움이 많이 된다. 산책을 좀 길게 4킬로 이상 다녀온 날에는 홈트는 생략하고 간단한 스트레칭만 하고 자도 되어서 리워드를 받는 기분도 든다.

책에서도 운동의 중요성을 두번째 챕터 첫 부분에서 반복하고 강조해서 주창한다. 책에서 권장하는 정도의 운동량은 이미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다행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 정도 운동량보다 한참 안 하고 살던 때는 어떻게 멀쩡했는지 의아하다. 물론 자세도 구부정하고 멀쩡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이 타이밍에 에어팟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제목에도 에어팟을 썼다. 에어팟을 산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정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산책이나 외부 활동을 꺼리게 된 계기는 코비드로 인해 인종차별적이고 불쾌한 경험을 몇 번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상 이어폰을 끼고 주변을 덜 신경 쓰며 걷는 사람에게는 무식하고 어린 양아치들이 시비를 털 기회도 의욕도 덜한 것 같아서 가끔 산책을 하고 싶을 때는 줄이 있는 이어폰을 끼고 나갔었다. 에어팟은 무선의 편리함과 함께 소음 차단, 음질 개선 등의 이점도 함께 있어서 산책 경험이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되었다. 또 책에서 말하는 ‘상승 순환’을 이를 통해 경험했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하는 산책이 즐거워지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스스로 음악을 선곡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마 수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음악을 적극적으로 듣게 된 것 같다. 익숙하고 좋아했던 음악들로 시작해서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 앨범을 몇 년 만에 캐치업 하며 오래간만에 귀 기울여 음악을 들으니 내가 나다운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이조차 다 귀찮아서 안 했었기 때문에 다시 느끼는 이 감각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책에서 추천하는 다른 방법(예: 감사일기 쓰기. 정말 하기 싫다.)들은 안하고 있는 것이 많은데 운동과 산책 그리고 잠을 잘 자려는 노력은 이미 스스로 필요를 느껴서 실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노르망디의 생일이기도 하니까 꼭 감사 인사를 덧붙이고 싶다. 내 사랑하는 요를레이와 노르망디 덕분에 혼자 살고 있지만 혼자라는 기분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다. 고양이들 덕분에 웃고, 성대를 써서 소통하고, 방해받고, 일 하고 관심을 받고 있다. 어마어마한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