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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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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킹 트랜스포메이션 회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무려 8천여 명을 구조조정 했다. 7%에 해당한다고 한다. 내 일기장에 욕을 쓰기는 싫지만 참 좢같은 일이다. 사실 툭하면 구조조정을 한 지 몇 년이 되었다. 다만 이렇게 엄청난 규모로 한 적은 처음 보고, 특히 나와 가깝게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우수수 사라지는 걸 보는 건 소스라치게 무섭다. 중요도나 가치, 능력에 관계없이 북미나 영국, 아시아 등 소위 해고하기 쉬운 나라에서 다 잘렸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고용된 사람들은 강력한 노조 덕분에 대부분 자리는 가까스로 보전했지만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게 될지 막막한 사정들이 되었다. 이 와중에 회사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엿 먹어라 캐피털리즘. 투자자들은 어마어마한 경험과 기술이 증발하는..
투표 재외국민 선거 참여율이 엄청나게 높았다는 뉴스를 봤다. 지난 오스턴 휴일에 나와 나그네가 한 시간여를 운전해서 가서 참여하고 온 것도 집계에 포함되었겠지. 우리는 머릿속에 한 번에 진행 중인 토픽이 다국어로 많다 보니, 여태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정치판에는 관심이 덜 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국회는 뭐랄까. 좀 한심하다. 이렇게까지 아무나 권력을 가질 수 있구나, 한 번 가지면 그냥 밀어붙여서 내 마음대로 하면 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여론을 눈속임하려는 수고조차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굳건한 지지층을 보면 아이티업계 은퇴를 서두르고 어르신들 살아계시는 동안 정계에 입문해서 듣고 싶은 말들을 해주는 편이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영리한 길처럼 생각될 지경이다...
3월에 다 읽은 책 두 권, 그리고 드라마화 된 삼체 홍콩출신 대만에서 활동하는 작가 찬호께이의 추리소설 [13.67]은 사실 올 초에 읽기 시작했다. 6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3개쯤 읽고 한동안 다른 책을 읽거나 다른 걸 하고 놀다가 한 편 더 보고, 부활절 연휴를 맞아 나머지 두 편을 다 읽고서 작가의 후기나 편집후기까지 아껴서 꼭꼭 씹어 다 읽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6편의 단편이 하나하나 전부 완성도가 높고 재밌었다. 형사 관전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1967년부터 2013년까지 오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홍콩에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명탐정 형사의 활약, 시대에 따른 사회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 등등 홍콩의 근현대사까지 버무려서 보여준다. 나는 원래도 '정의'가 뭔지 고찰하고, 본인의 직업적 사명을 철저하게 믿고 수사하는 뛰어난 인물..
통증들 목 안이 부어있고 침삼킬 때마다 아프고 이물감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오는 상태가 2주간 계속되고 있다. 이게 딱히 병가를 쓰고 쉬어야 할 만큼 심하지는 않아서 계속 피곤한 상태로 목아프게 일하고 있다. 게다가 월간 출혈도 발행중. 배도 너무 아프다. 평소에 통증이란게 없이 사는 나그네는 가끔 아프면 시원하게 병가쓰고 쉬던데 부럽다. 물론 병이 난 채로 직장에 가서 동료들한테 옮길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해야 하는게 이 곳의 룰이지만. 오늘도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첫 미팅시간 맞춰 출근을 하려고 좀 늦었지만 여유를 부리고 있다. 오랜만에 카푸치노를 만들었다. 십오분쯤 시간이 남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제도 경험했는데 가끔 인풋은 좀 멈추고 이렇게 백지를 바라보며 머릿속에 부유중인 생각들을 한줄씩 ..
번뇌와 고성 지난주까지 들끓던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은 좀 잠잠해졌다. 이런 감정은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절대 잊지 않았는데 벌써 찾아오고 방심하면 또 찾아오고 그냥 같이 산다. 하지만 소강기는 반드시 있다. 그것도 신기하다. 동료들이 사람이 좋아서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사이니까 이렇게 서로서로 관심 가져주고 살지, 그만두고 나면 안부 묻는 것조차 좀 이상한 사이가 곧 되어버리겠지. 나는 왜 어쩌자고 회사를 때려치고 싶은가. 회사를 다니며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기 싫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나, 왜 딱히 부족할 것 없는 지금의 삶에 나는 불만인가 생각하다가, 수긍이 가는 발견은 하나도 없이 점점 흐릿하게 멀어져 가는 의식을 배웅하게 된다. 요즘의 나는 총명함과는 좀 거리가 멀고 일할..
안식년 계획 안식년을 가지고 싶다. 2026년에 내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니까 그 기점으로 안식년을 가져보기로 정해볼까. 2년이 남았다. 너무 긴가? 사실 당장 내년에 그만두고 싶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올 해는 안된다. 아빠랑 남동생과 여행을 해야 하니까. 올해 매달 내 통장에 꽂히는 x000유로 남직한 돈은 우리 둘과 고양이 둘 네 가족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 준다.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일 자체를 통해서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임기응변으로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지만 내 스스로를 사용자 경험 전문가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함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는 같은 직군에게도 매 년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전문성을 쌓는 것이 의미가 있는 분야인지 모르..
너무 일만 하면서 사는 것 같다 회사의 업무가 점점 늘어난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많아져서 재밌었는데, 이제는 버거운 마음이 들고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책임이 점점 늘어나고, 매니저가 풍기는 뉘앙스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잘 해냈을 경우 어느 정도 승진 같은 보상도 주어질 것 같다. 다만 업무 시간 동안은 내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 외에는 더 잘하려고 애쓰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회사가 잘 된다고 내게 직접적으로 콩고물이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고, 업무가 늘어나니 스트레스도 늘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어지고 자세도 안 좋아지는 등 내게 끼치는 악영향이 더 많다. 그리고 예년처럼 결국은 보상이 째끔 늘어난 보너스 정도로 그친다면 애쓰기는커녕 나도 파업전선에 끼고 싶은 마음이다. 안타깝게도 이 업계는 운항/운송업처럼 사..
아름다움을 곁에 두기 1월 들어 읽은 책이 두 권 있다. 마르셀 서루의 소설 '먼 북쪽'과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에세이 '그늘에 대하여(음예예찬)'다. 작년부터 읽고 있는 삼체 2권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결국 병행으로 다른 책을 읽게 되었다. 삼체 1권은 정말 어마어마한 설정에 흥미롭게 처음부터 끝까지 꽤 분량이 많은데도 단번에 읽은 편인데, 2권은 싹 바뀐 인물들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고, 그 인물들이 겪는 이해의 어려움을 나도 겪느라(대체 왜, 하필 이 인물이, 그리고 이 인물은 이미 죽고 없을 수백 년 후의 일에 대비해야 하는가) 진도가 잘 안 나간다. 개인적으로 되게 웃겨하면서 읽었던 우스꽝스러운 삼체 세계에 대한 게임을 통한 묘사가 2권에는 더 이상 안 나오니 그것도 흥미를 떨어뜨리는 요소이기도 하다.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