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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이제는 거의 격월에 한 번 여기에 글을 쓴다.

눈 꼭 감고 자고 있는 하얀 장모 고양이는 바닥에 깔린 흰천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고, 그에게 안겨 자는 황갈색 고양이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한다. 포근한 한 떄.

 

12월이 어수선했다. 연말연시가 후루룩 흘러가 버렸다. 근간의 나의 정신은 25%쯤 한국과 한국에 사는 사람들 걱정, 50%쯤 우리 고양이 둘의 건강 걱정, 25%쯤은 일 걱정을 하느라 소진되었다.

 

노릉이가 마지막 방사선 치료를 받은 지 7주가 지난 지금은 부작용으로 인한 대부분의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지난 7주간 매일매일 좋다 나쁘다 하면서 아주 천천히 낫는 바람에 나는 늘 긴장상태로 아침저녁 재택치료에 공을 들였다. 재택치료 초기에 처방받아 실행한 호흡치료 약이 노릉과 맞지 않았는지 구토가 심해서 크리스마스까지 아주 겁나는 상황이 많이 있었다. 밤새도록 토하는 노릉의 구토 횟수를 기록하고, 액체로 된 모든 시중의 사료를 구입해 먹이려 시도하고, 닭가슴살을 삶아 삶은 물과 고기를 다져서 먹이고, 주사기로 물을 먹이고, 생각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 같다. 병원에 데려가서 수액과 위장제 주사도 맞았다. 약의 도움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 대신 식염수로만 호흡치료를 하니 더 이상 구토를 하지 않는다. 나이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령묘에 속하는 우리 11살 노릉이는 아무래도 방사선 치료 중 손상된 건강한 세포의 상처와 염증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찐득한 눈물과 콧물, 코딱지는 계속해서 노릉을 불편하게 하지만 병원에서 말한 '꼭 다시 병원을 찾아야 하는 증상들'은 막상 겪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딱히 약처방도 없이 지지부진하게 만성이 될까 봐 걱정이다. 그래도 가벼운 비염 정도의 증상이고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 구토가 심해서 아예 밥을 못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식욕도 좋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요를도 아팠다. 지난 주말쯤부터 목소리가 좀 쉰 것 같더니 이번 주 초반에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만큼 잠겨버린 것이 아닌가. 일단 집안이 너무 건조해서 나도 목이 아픈 상태였기 때문에 요를이 주로 지내는 거실에 빨래를 열심히 해다 말리며 실내 습도를 50%대로 유지했다. 환기에 신경 쓰고 바닥 청소를 원래 주 1-2회만 하는데 한 번 더 했다. 목이 아파서 짜증이 심했던 요를에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노릉이를 위해 활약 중인 네블라이저를 이용해서 증기치료도 아침저녁으로 해줬다. 고양이들이 하고 남은 한두 방울의 식염수로 나도 몇 초씩 증기를 쬐는데 이거 나름 효과가 좋은 것 같다. 식욕도 떨어지지 않고 그루밍도 꼼꼼히 하며 해가 나면 알아서 해를 쬐며 스스로를 잘 돌보는 요를을 보고 병원에 데려가는 스트레스를 주는 것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2-3일 안에 서서히 목소리가 회복되었다. 개선된 환경 덕분인지 늘 부어있어서 침 삼킬 때 아프던 내 목도 더 나빠지지 않고 아주 약간 나아진 것 같다.

 

8시간의 시차를 두고 한국의 계엄시국 상황을 지켜봤다. 내가 보고 있는들 바꿀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와중에도 걱정이 되어서 새로운 정보를 주지 못하는 라이브를 켜두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날이 며칠 있었다. 계엄이 해제되는 새벽부터 탄핵 가결을 위한 두 차례의 투표, 그리고 공수처와 경찰이 두 차례에 걸쳐 시도한 체포 시도까지. 국회, 헌법 재판소, 대통령이 칩거하던 공관 앞에 모인 사람들과 남태령의 밤을 넘긴 사람들, 그 추운 새벽의 눈을 맞으며 바닥에 앉아 키세스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걱정되어 라이브 영상이라도 틀어놔야 마음의 짐이 너무 무거워 놓쳐버리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덕분에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내 하루에서 잠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억울하다. 세상의 많은 일은 신뢰와 약속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직하게 잘 지키고 사리사욕을 포기하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는 듯한 사회를 산다는 마음에 그 사회가 싫어서 이민을 꿈꾸고, 실행하기도 했다. 내가 목격한 2024년 12월 3일부터의 사건은, 그런 사회의 가장 악한 방식으로 사는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벌인 일에 대해 수많은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수습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빌런의 난동을 이겨내는 것은 그에 대적하는 선의 끝에 있는 영웅이 아니라, 평소에는 거짓말도 하고 농땡이도 피울지 모르는 어떤 사람, 착실하기만 한 사람, 조금 똑똑한 사람, 공부는 너무 싫어도 오지랖은 넓은 사람, 농사짓는 사람, 평생 엘리트로 산 사람, 남자만 좋아하는 사람, 여자도 좋아하는 사람, 남녀로만 구분된 성별에 스스로를 맞출 수 없는 사람 등등 아주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공유된 목적의식이었다. 계엄이 선포되고 내란 우두머리가 잡혀가기까지 걸린 40여 일 동안 12월 초에 한림원에서 진행된 노벨상 수상식에서 한강작가님이 수상 소감을 발표하며 조용히 읊조리던 '세상은 왜 이토록 잔인하며 동시에 왜 이토록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어제 데이빗린치 영화감독의 부고를 들었다. 그의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레이저 헤드를 대학 다닐 때 수업에서 언급이 되어 반자발적으로 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재미있게 봤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비디오그라피가 너무 멋있어서 인상이 강하게 남았던 것 같다. 감독의 이름도 뭔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영화 잡지라든지 그가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캡쳐한 장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그가 찍은 영상처럼 본인의 스타일도 제법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큐멘터리의 정지 장면에 찍혀있던 자막의 대사를 통해 그의 그림, 예술 활동에 의지하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나는 삶을 예술로 점철시킬 수는 없었지만 나의 삶에 예술이, 여전히, 너무나 깊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특히나 평소보다 더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그런 것 같다.

 

사람들 말처럼 나라의 큰 위기가 어느정도 진정국면을 향해 방향을 튼 것을 보니 비로소 새해가 왔다는 실감이 조금 든다. 그간의 삶과 달리 올 해는 새해를 기점으로 목표설정도 좀 해보고 성실한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한다. 한국에 다녀온 나그네에게 부탁해서 사온 다이어리도 연말부터 쓰고 있다. 다이어리를 써 본 적 없어서 어떻게 써야 하나 2주 정도 헤매다가 일단 하루칸을 3 등분해서 한 구역엔 오늘 꼭 해야 할 것, 한 구역엔 운동과 식사와 같은 내 건강 기록, 나머지 한 구역엔 감상이나 직관을 메모하는 구성으로 쓰고 있다. 뭔가를 써서 채우려는 욕심도 3주 정도에 걸쳐 좀 내려놨더니 이제야 좀 쓸만하고 읽을만해진 것 같다. 끝까지 한 번 다 써보고 싶다. 올 해의 목표라고 하기는 그렇고 소망이 몇 개 있다. 주로 서울브리즈 일 관련한 것이다. 이제 유엑스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는 안중에 없는지 그 관련 목표나 소망은 단 하나도 없다. 하하하. 물론 그래도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은 열심히 수행할 것이다. 연봉도 5% 정도 올랐다. 지난해 4분기에 매니저가 해고되어 버려서 제대로 협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좀 아쉬운 정도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다.

 

이번주말부터 테니스를 배우기로 했다. 일부러 새해에 맞춰 시작하는건 아니고 전부터 배우려고 했는데, 노릉이가 아프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뤄진 시작이다. 오래간만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니 기대가 된다. 재미있게 공을 주고받는 게임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잘 배워봐야지. 그동안 운동을 너무 안 하고 살아서 좀 걱정이 되어서 이번 주는 스쿼트라도 좀 했다. 맨몸 스쿼트 100개 하는데 예상외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서 왜 진작 안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어서 이 정도 기초체력이 있구나 싶기도 했다. 운동과 잠을 잘 챙기며 하루하루 정성스럽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