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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워캉스?를 다녀오다.

산 위 성당에서 내려다 본 지중해 풍경

 

단 하루도 휴가를 쓰지는 않았지만 지난 주말까지 총 2주간 남부 프랑스에 다녀왔다. 리옹에서 총 2주를 보내고 주말을 낀 3박 4일은 마르세유에서 보냈다. 기차를 타고 이동했고, TGV 1등석의 편리함에 감탄했다. 리옹은 맛의 도시로 유명해서 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과연 뭘 사 먹어도 맛없는 것은 없었다. 다만 풀타임으로 일을 계속하고 있기도 했고, 날이 너무 더워서 (36-37도까지 올라간 날이 삼일 연속 있었다) 거의 장 봐온 채소들로 샐러드를 해 먹으며 버티는 날이 많아서 외식을 많이 했다고 볼 수는 없다. 리옹에서 사는 친구분이 한국을 방문하는 동안 친구분의 고양이를 돌봐주기 위해서다. 이미 랜선으로 오랫동안 알아서 나의 일방적 친밀감이 높은 고양이 꺄하멜을 돌보러 갔다. 꺄하멜은 우리 집 고양이들과 달리 사람을 아주 좋아하고 꾹꾹이나 쭙쭙이도 해주는 고양이였다. 하루종일 내 옆에 붙어 있고 싶어 했고, 말이 정말 많았다. 나중에 친해져서 그랬는지 내가 앉는 자세를 바꾸거나 재채기를 하거나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면 가만히 있으라고 잔소리를 많이 해서 웃겼다.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다 너무 귀여워.

 

면조는 내가 이런식으로 오래 집을 비우는 것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 초에 런던 사는 고양이를 돌봐주며 여행하러 2주 다녀올 때도 불만을 토로했었다. 하지만 독일의 시골에 콕 박혀 살면서 가끔씩 이렇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새로운 도시에서 생활해 보는 기회가 나는 정말 좋다. 그래서 면조의 불만을 감수하고 앞으로도 기회가 있고 내가 원한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

 

리옹은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그러면서도 프랑스의 제2 또는 제3 도시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대도시적 인프라를 갖춘 곳이었다. 그래서 방문객으로 지내다 가기에 편안하면서도 재밌고 멋진 곳이었다. 큰 강이 두 개가 흐르고, 강변에서 바람 쐬며 맥주나 아페롤을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이 멋졌다. 나도 그 풍경 안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 했는데 맥주는 하나같이 진짜 맛없었다. 지역 양조장들이 좀 있는 모양인데, 약간 수긍이 가지 않는 조합의 크래프트 비어 스타일 맥주들을 만들어 팔고 있었고,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실망한 이후로는 샴팡, 크레망, 프로제코만 마시고 다녔다.

 

마르세유는 그냥 좋았다. 산과 언덕 그리고 지중해가 있는 도시인데 당연히 멋있었다. 풍경이 너무 예뻐서 별 목적없이 걸어만 다녀도 좋았다. 목요일 밤에 도착했는데 마침 올림픽 개막식 관련 행사 중이라 큰 도로가 통제 중이고 내가 타야 할 버스를 탈 방법이 없었다. 포기하고 30분쯤 걸어야 하는 길을 따라 호텔까지 걸어가는데, 같은 방향으로 걷던 지역주민 아저씨가 말을 걸어서 호텔까지 같이 대화하며 걸어갔다. 튀니지 혈통의 마르세유사람인 나집이란 아저씬데, 영어는 잘 못하셔서 영어 단어, 프랑스어 단어, 스페인어를 섞어서 대화했다. 말이 왜 통하는지 모르겠지만 신기했다. 중간에 운행하는 버스정류장을 만나 앉아서 맥주 한 잔 하며 버스 기다릴 때, 같이 기다리던 청소년들과도 대화하셨다. 맥주도 나눠마셨다. 내가 둘이 아는 사이인지 물었더니 그런 게 아니고 원래 이런 게 마르세유라고 둘이 입을 모아 얘기했다. 틀린 말은 아닌 게, 이후로도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았다. 뭔가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 타인과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인가 보다.

금요일에 일을 마치고 날이 되게 덥고 뜨겁기는 했지만 해변을 오래오래 산책했다. 물에 들어갈까 고민도 했는데 물놀이용 신발이나 복장이 아니어서 관뒀다. 옷은 둘째치고 신발은 물놀이용이 꼭 필요해 보였다. 그냥 파도 소리를 듣고, 누워있는 사람들 구경하고, 작열하면서 바다 너머로 져가는 해를 봤다. 남부 프랑스는 깔랑끄라는 바다절벽 같은 지형이 유명하던데 한 군데 가볼까 했지만 차를 렌트해야 하고 미리 국립공원 입장권을 사야 하는 등 주말만 잠깐 다녀가는 내가 가기엔 좀 벅차보여서 관뒀다. 대신 르코르뷔지에의 첫 주상복합 집합주택이자 한 마을을 구상한 건물을 구경했다. 투어프로그램을 예약해서 내부와 모델하우스까지 입장해서 구경할 수 있었다. 아파트 내부가 정말 멋졌다. 가이드 선생님이 가격도 알려주셨는데 생각보다 싸더라. 하지만 입지나 연식을 생각하면 싸다고만 볼 수는 없어서 현재 아파트 주인들은 대부분 건축가나 디자이너, 예술가 등 이 건물의 건축사적, 미학적 가치에 돈을 지불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가 상상해도 매일 직장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사람들이면 이 아파트를 소유하거나 렌트해서 살기엔 많은 걸 희생해야겠다 싶었다. 전쟁 이후 남프랑스의 상황 설명과 르코르뷔지에의 네트워크와 제작 당시의 사람들의 반응 등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토요일에는 언덕 위에 있는 노트르담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보는 풍경이 끝내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올라간 김에 성당도 줄 서서 들어가 봤다. 별로 크지 않지만 되게 귀엽고 화려한 예쁜 성당이었다. 과연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와 해안가의 마을, 그리고 반대편 도시의 풍경까지 너무너무 예쁜 풍경이었다. 버스 타고 성당 가는 길에 큰 마켓이 열려 있길래 다시 호텔로 돌아기는 길에 중간에 마켓에 내려서 점심을 사 먹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어딘가 구경 갈까 그냥 호텔에서 쉴까 고민하다가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하면서 느긋하게 보내버렸다. 멋진 주말 휴양이었다.

 

리옹으로 돌아와서 나랑 저녁을 먹겠다고 파리에서부터 일부러 리옹으로 출장 겸 여행을 오신 정어리님도 만나고, 첫 주에 만났던 리옹 사시는 E님도 한 번 더 만나고, 오래간만에 일과 후 사람을 만나 외식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도시적인 삶을 살았다. 주말에는 지내는 곳 근처에 아주 크게 열리는 중고가구/잡화 시장이 있어서 거기도 구경했다. 사고 싶은 굉장히 맘에 드는 가구가 두 개 있었지만 가구를 사서 들고 가거나 배송시키거나 하는 정도까지는 원하지 않았는지 사지 않았다. 재미있는 구경이었다. 일도 쉬지 않고 갔던 여행이니만큼 욕심 때문에 스스로를 볶아치지 않고 산책하거나 맛있는 걸 사 먹는 것에 만족하는 마지막 토요일을 보냈다. 일요일엔 나 다음으로 바통을 이어받아 꺄하멜을 돌봐주실 리옹 사시는 분과 만나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기차를 타고 돌아왔다.

 

이번에 기차를 통해 여행을 한 덕분에 한국에서 사 와서 아직 시작 못하고 있던 하루키의 도시벽을 거의 다 읽었다. 이제 마지막 몇 장을 남겨두고 있는데, 이 책을 다 읽어버리면 한국책이 더 이상 없고, 내가 지난번에 한국에 전자책 단말기도 두고 와버려서 정말로 마지막 한국책인 바람에 아껴서 한 장 한 장 읽고 있다. 책을 읽기 위한 장거리 기차여행이 너무 좋은 경험이었어서 다음에도 한 번 기획하고 싶다.

 

오랜만에 일상을 벗어나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 속에서 지내다 오니 기분이 좀 전환되었다. 다시 열심히 일해서 준비 중인 사업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하고 오면 늘 나를 좀 더 좋아하게 된다. 아무래도 혼자서 다니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본능적으로 뭔가를 해 나가는 나를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