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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두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

수국을 한 줄기 사서 유리병에 꽂아봤다.

6월엔 일기도 거의 못썼는데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그네라는 별칭에 충실하게도 면조(이 역시 본명이 아님)가 대학이 있는 도시의 기숙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통에 나까지 같이 바빴다. 나그네가 없이 나 혼자 고양이 둘과 지내는 시간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6:4 정도로 섞인 나날을 보냈다.

 

나도 기숙사가 있는 바이에른 남부에 놀러갔다 오기도 했다. 결혼기념일 즈음에는 늘 같이 여행을 가는데, 이번 9주년(!!)에는 독일에 있는 알프스 줄기를 산행했다. 독일에도 알프스가 있고 그 은혜로운 경치를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다. 그 외에는 세금 신고에 따른 증빙서류를 챙겨 보내느라 바빴고, 몇 가지 부동산 매물을 보고 연락하고, 혼자서 방문하기도 했다. 이제는 아파트 매매는 완전히 포기하고(공증 등에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 우리는 5년쯤 후 팔게 될 가능성이 높기에 더더욱) 렌트 위주로 보고 있다. 지난주에는 백신을 맞기 위해 다시 집을 찾은 나그네와 한주 내내 같이 지냈고, 내가 혼자 지내는 동안 내 마음대로 집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잔소리를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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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침실이 하나 거실이 하나 있고, 그 사이에 좁은 주방이 있다. 크긴 하지만 방이 하나밖에 없는 63㎡ 짜리 우리집이 둘이 살기에는 좀 아쉽다고 꽤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다. 사실 한국에서 신혼초에 살던 집은 더 작았는데, 작은 방이 둘, 좀 더 큰 거실 겸 다이닝룸 겸 주방으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침실과 분리된 작업공간이 따로 있느냐의 차이점도 있고, 예전과 달리 홈오피스/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24시간 내내 집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쉬어야 하다 보니 상대방이 내는 소음에 더 민감해진 탓도 있다. 그래서 나는 내 방을 가지고 싶다고 오래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그네가 기숙사에 가서 사는 동안에 나는 거실을 일과 작업, 식사의 공간으로 쓰고, 하루의 일과를 다 마감한 뒤에는 침실로 가서 티비를 보며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쉰다. 이렇게 혼자서 공간을 다 쓰다 보니 공간의 분리가 정말 중요하단 것을 깨달았다. 둘이서 살 때는 사용하는 공간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분리가 묘하게 안되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었다. 나그네가 티비를 볼 때 나는 일하는 공간이었던 거실로 나와서 운동을 해야 한다거나, 나그네가 거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내가 뭔가 다른 것을 (가령, 소음을 낸다든지 하는) 하고 싶을 경우 책상이 없는 침실이나 발코니로 가야만 한다. 같이 거실에 있어도 되기는 하지만 자꾸 서로한테 말을 걸어서 집중을 깨는 것도 싫고, 원래 사람은 딱히 대단한 의미가 없더라도 은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내 경우는 일기를 쓰거나 요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거나 할 때는 다른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하고 싶다.

 

독일에서는 거주자 등록을 위해 공용공간을 제외한 개인이 최소한으로 가져야 하는 공간을 12.2㎡로 잡는다. 따라서 24㎡보다 작은 집은 두 명의 성인이 거주자로 등록할 수 없다. 부동산 매물을 보다보면 35㎡짜리 원룸이나 1베드룸 플랫도 커플은 안된다고 쓰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100㎡ 언저리의 집들은 설명에 '젊은 커플 또는 작은 가족에게 딱 맞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한국보다는 확실히 두당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 인식이 너그러운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 도시라서 좀 더 그럴 수도 있다. 독일 젊은 커플들의 주거난에 대해 르포 형식으로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보니 집을 구하는 고객들은 두당 35~50㎡정도의 너비를 선호한다고 한다. 두 사람이 살 경우 70~100㎡이 된다.

 

우리도 계속해서 집매물을 보다 보니, 집을 보는 기준이 점점 올라가고, 예산도 올리고 올려서 지금은 꽤 큰 공간을 찾고 있다. 너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방이 3개 이상인 곳을 구하려고 한다. 독일은 거실도 방 하나로 쳐서 계산하므로 여기서는 4룸 아파트를 찾고 있다. 이쯤 되면 공간도 100㎡ 이 대부분 넘고 월세도 상당히 비싸다. 적어도 지금 사는 집의 두배는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집에 있는 시간이 월등히 많고,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일과 생활에 따른 공간의 분리를 원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또 고양이들을 위해 지금 집의 공간이 부족해서 두지 못한 추가 모래 화장실과 캣타워도 두고 싶다. 방이 3개가 된다면 각각 우리 침실, 내 작업실, 미디어룸 겸 게스트룸으로 계획하고 있다. 나는 미디어룸에 티비와 게임기를 두고, 다이닝룸과 함께 있는 거실에는 책장과 오디오를 두고 싶은데 나그네는 일단 별 카운터 아규먼트도 없는 채로 반대만 하고 있다. 하지만 나그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가 쉽고 단정한 수납과 넓은 주방이므로 설득은 가능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매물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 머릿속으로 꿈만 오래 꾸다 보니 점점 욕심이 많아 지는 것도 같다. 지금은 나름대로 검소하게 잘 살고 있고, 덕분에 여유자금이 있어서 여행이나 쇼핑할 때 돈 걱정을 덜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역시 아무래도 아직 열어보지 못한 문에 대한 호기심이 크고, 그런 생활을 한 번쯤 해본다면 지금이 제법 적기라는 생각도 든다. 일단 이사 갈 수 있는 집을 얼른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