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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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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선물하는 가치라니 연말연시를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가 있고, 그래서 회사 일이 천천히 진행되고 있다. 중간중간 지루할 때마다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뭐 재미있는 것이 없나 기웃기웃 대게 된다. 창고에서 오래 잠자고 있는 dslr카메라를 꺼내서 배터리를 충전했다. 다 충전된 배터리를 끼우니 작동이 잘 된다. 오래간만에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재미있어서 집안 곳곳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동영상도 촬영해 봤는데 과연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보다 심도도 잘 표현되고 운치가 더해진 장면이 찍혔다. 찍은 사진을 큰 화면에서 보고 보정도 하고 싶어서 SD카드를 읽을 수 있는 머신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그럴 수 있는 머신이 이제 내 오래된 무려 올해 12살인 맥북프로밖에 없었다. 역시나 잠자고 있던 맥북을 깨워서 카메라..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감각 시디 더미를 바라보며 지금 듣고 싶은 음악이 뭔지 생각한다. 신중하게 시디 케이스 하나를 골라 든다. 이미 플레이 한 시디들 더미 위로 가져가서 얹어놓는다. 시디플레이어 뚜껑을 열어 들어있는 시디를 확인하다. 엄지손가락과 중지 손가락을 이용해서 원반의 가장자리 양 끝을 단단히 잡고, 검지 손가락으로 중앙의 홀 근처를 살짝 눌러서 반동을 이용해 찰칵 시디를 꺼낸다. 손에 든 시디와 짝인 케이스를 찾아서 다시 반듯하게 조립해 닫아둔다. 방금 새로 꺼내온 시디 케이스를 열어 그 안의 시디를 뚜껑이 열려 있는 씨디피 안에 찰칵 집어넣는다. 뚜껑을 닫히면서 다시 걸쇠가 내는 찰칵 소리와 진동을 느낀다. 스피커의 스위치를 켜고,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챠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시디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
아마도 유년기 이후로 집안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한 해 그 어느 때보다 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특별히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는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볼 때 특정 이벤트의 발생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떠올린다. 그리고 아무래도 일상을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기념할만한 이벤트들은 대부분 집을 떠나서 실행이 된다. 여행이나 소풍, 친구들과의 모임, 각종 경조사, 기타 등등. 집안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도 꽤 많지만 다른 평범한 나날들과 배경이 같다 보니 약간 덜 두드러지게 기억되는 듯하다. 올해는 여행이나 소풍같이 자진해서 떠난 휴가가 세 번 뿐이었다. 내 생일 즈음에 다녀온 파리 여행, 여름의 막바지에 1박 2일로 다녀온 숲 속 야생 캠핑, 그리고 가을에 다녀온 한국. 기억할 것이 적으면 그동안 흐른 시간도 짧게 느껴진다. 세 번만에 추억을 싹 리와인..
완벽하게 게으른 일요일 오전의 풍경 일요일이니까 잠은 해가 중천에 떴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때쯤 깨야 한다. 평소에는 스마트폰을 거실이나 티비 탁자에 두고 자지만, 오늘은 눈을 떠서도 한참 동안 이불속에 있을 예정이므로 어젯밤부터 스마트폰을 침대 근처에 두고 잤다.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침대 안에서 이불속 온기를 만끽해야 하므로 그동안 심심하면 안 되니까. 다행히 중간중간 노르망디도 다녀가고, 요를레이도 찾아와 줘서 심심할 틈은 없었다. 사실 요를레이가 침대에 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오전 식사를 끝내고 낮잠을 자려고 오는 것이다. 요를레이는 아주 규칙적인 고양이라서 매일 11시경~4시경 사이에 반드시 침대로 와서 나란히 위치한 두 베개 사이 틈에 몸을 끼우고 잔다. 이 말은 곧, 나는 이 규칙적인 고양이가 낮잠 잘 시각 즈음에 잠에서 ..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한 일상 다시 믿을 수 없이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너무나 극명한 차이가 있어서 나도 놀랍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상태인 독일 생활. 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독일 전역이 록다운에 돌입한 때였다. 슈퍼마켓, 생필품, 약 등을 파는 가게 말고는 문을 대부분 닫았다는 이야기.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포장만 가능하다. 내가 한국에 있던 타이밍이 마침 거리두기 1단계로 가장 사람들이 활발히 생활하던 때였어서 더더욱 차이점이 와 닿는다. 돌아온 주에는 휴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서 일주일 가량을 집안일만 조금씩 하면서 푹 쉬었다. 한 해의 마지막 휴가기 때문에 '할 것 없음'을 만끽하고자 노력했다. 판대믹으로 인해 집 안에서만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 휴가를 누릴 수 있음은 사치스럽게 ..
삶을 위한 서울 여행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얻어가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막상 먼 길을 떠나오기 전에는 내키지 않는 무거운 마음이 더 큰데, 오고 나면 다시금 깨닫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 쌓여 있는 정을 느낀다. 내 이십 대 어드매의 삶의 배경음악과도 같았던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란 노래 초입부 가사가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라고 시작하는데, 하얀 태양이 독일에는 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끔 길을 잃는다. 한국에 와서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을 만나고, 비슷비슷한 듯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몸이 태양의 온기 같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다시 또 돌아가서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태양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것이다. 가끔 독일에..
자가격리가 너무 좋다 격리 12일 차. 며칠 안 남았다. 그리고 격리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만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격리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준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볼까 싶어서 일기장을 열었다. 드라마 진정령 듣던 대로 미친 드라마고, 심각하게 재밌었다. 출연진들의 저세상 미모가 초반의 알쏭달쏭함과 지루함을 버티게 해 준 계기가 되긴 했지만, 스토리와 극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어지간하면 추천하고 싶다. 가끔 특수효과 후처리가 너무 뜬금없을 만큼 촬영분의 퀄리티를 깎아먹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긴 하다. 단순히 퀄리티가 낮은 합성을 했다는 의미가 아닌, 누끼가 제대로 안 따여 있다던지, 크로마키가 인물의 일부를 먹었다던지... 그래도 이건 그냥 산업형 병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노력했다...
격리 삼일차 비행기에서 본 조조래빗에 좁고 어두운 다락방에 갇혀 사는 소녀가 나온다. 이걸 지금 공감하고 있다. 다행히 여긴 어둡지 않고, 그 정도로 좁지는 않다. 배달 서비스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배가 고프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에서 영화 세 편을 봤는데 세 편 다 너무 재밌었다. 조조래빗, 작은 아씨들 그리고 프랑스 영화 러브 리와인드. 한국에 방문했다. 도착날 포함 15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오늘이 삼일째다. 공항에서부터 굉장히 철저한 검역을 여러 단계 통과했고, 에스코트받다시피 해서 내가 예약해 둔 작은 원룸형 숙소에 있다. 긴 여행을 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시설이라 작은 주방, 냉장고, 화장실이 한 방안에 갖춰진 그야말로 원룸이다. 평소에 지내던 공간보다 확연히 작은, 사실 처음에는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