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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한 일상

독일색 - 지나가는 길에 찍은 황혼 사진. 어둑어둑해지는 하늘과 땅의 풍경색이 전형적인 독일의 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컬러팔레트를 만들어 보았다.

다시 믿을 수 없이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너무나 극명한 차이가 있어서 나도 놀랍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상태인 독일 생활. 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독일 전역이 록다운에 돌입한 때였다. 슈퍼마켓, 생필품, 약 등을 파는 가게 말고는 문을 대부분 닫았다는 이야기.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포장만 가능하다. 내가 한국에 있던 타이밍이 마침 거리두기 1단계로 가장 사람들이 활발히 생활하던 때였어서 더더욱 차이점이 와 닿는다.

 

돌아온 주에는 휴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서 일주일 가량을 집안일만 조금씩 하면서 푹 쉬었다. 한 해의 마지막 휴가기 때문에 '할 것 없음'을 만끽하고자 노력했다. 판대믹으로 인해 집 안에서만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 휴가를 누릴 수 있음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좋은 배추와 무가 장터에 있어서 김치도 무려 다섯 포기나 담그는 김장도 했다. 본격적으로 겨울날 준비를 조금씩 해나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다음 주, 그러니까 지난 한 주간은 3주간의 휴가 후 업무에 복귀한 첫 주였다. 이메일도 수백 통이 와 있고, 막 핸드오프 하고서 휴가를 떠났던 프로젝트가 한참 개발 중이어서 내가 확인하고 팔로 업해야 할 일이 많이 쌓여 있었다. 첫 이틀 정도는 정신없이 통화하고, 이메일 확인하고, 답장하고, 대응 마감시간이 촉박해져 오는 일들을 추려내서 처리했다. 그랬더니 수요일부터는 오히려 할 일을 다해버려서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었다.

휴가 가기 전에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디자이너들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웨비나를 신청해 뒀었는데 이제야 그 강의들을 하나씩 들을 시간이 났다. 물론 시간은 휴가 중이었던 전주에도 있었지만 이 때는 일과 자기 계발은 집어치우고 놀고만 싶었다. 다 놀고 나니 일하기 싫어 죽겠는 기분도 조금 나아졌고, 결과적으로 잘한 것 같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한국어로 진행되는 업무분야 토크를 들어서 좋았다. 아직 두 개밖에 못 봤는데 다음 주에 또 짬짬이 마저 다 봐야지. 새로 배우는 것도 있긴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업계 컨퍼런스의 토크는 80% 정도는 이미 알고있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것과 같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고 일하다가 해외에 나간 사람들이다보니 나와 닮은 점을 다른 컨퍼런스 스피커들에 비해 많이 찾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대답을 하지 않고 수다를 떠는 느낌으로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같은 주제에 대해서 발표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역시 80% 정도는 이 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표현만 바꿔서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면조가 같이 하고 싶다고 오버쿡드 2란 게임을 사서 스위치로 거의 매일 밤 같이 신나게 게임을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둘 다 너무 못하고, 못해서 스트레스받고, 그래서 깨려고 열심히 하다 보니 한두 시간 정도 하고 나면 너무 피곤했다. 지난 2주간은 덕분에 잠을 기절하다시피 자버렸다.

 

주말은 집안일을 하고 친구들을 거리두기 하며 만나서 잠깐씩 캐치업도 하고, 제법 바쁘게 보냈다. 업무에 복귀하고 나니 역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이제 크리스마스 때까지 휴가도 없고, 딱히 재미있는 일도 없다. 짬짬이 재밌는 걸 찾아서 하면서 이 춥고 어둡고 지루하고 고요한 독일의 겨울을 버텨봐야지. 주중에는 케이크나 파이를 구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