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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완벽하게 게으른 일요일 오전의 풍경

일요일 브런치 크레이프(팬케이크) 먹는 풍경

일요일이니까 잠은 해가 중천에 떴다는 표현이 들어맞을 때쯤 깨야 한다. 평소에는 스마트폰을 거실이나 티비 탁자에 두고 자지만, 오늘은 눈을 떠서도 한참 동안 이불속에 있을 예정이므로 어젯밤부터 스마트폰을 침대 근처에 두고 잤다.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침대 안에서 이불속 온기를 만끽해야 하므로 그동안 심심하면 안 되니까. 다행히 중간중간 노르망디도 다녀가고, 요를레이도 찾아와 줘서 심심할 틈은 없었다. 사실 요를레이가 침대에 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오전 식사를 끝내고 낮잠을 자려고 오는 것이다. 요를레이는 아주 규칙적인 고양이라서 매일 11시경~4시경 사이에 반드시 침대로 와서 나란히 위치한 두 베개 사이 틈에 몸을 끼우고 잔다. 이 말은 곧, 나는 이 규칙적인 고양이가 낮잠 잘 시각 즈음에 잠에서 깨버렸단 뜻이다. 이대로 좀 더 뒹굴대면 요를레이가 가볍게 그르렁 대는 소리에 다시 졸려져서 나 또한 낮잠을 자게 되어 버릴 것이다. 내키지 않지만 일어났다. 늦잠 자고 바로 다음 일과가 낮잠이 될 수는 없어.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꼭 팬케이크를 구워 먹고 싶었기도 했다. 팬케이크는 어쩐지 저녁에 먹을 기분이 드는 음식은 아니니까 반드시 해가 떠있을 때 구워 먹어야 한다. 이미 오전은 다 지나갔고, 기회는 지금밖에 없어서 굽기로 했다.

 

주중에 내내 비건으로만 먹었으니까 일요일 브런치 정도는 냉장고에 있는 각종 재료도 써버릴겸 버터도 계란도 쓴 레시피로 만들었다. 혼자 먹을 거니까 밀가루는 반 컵, 계란 한알, 오트유 한 컵 약간 안되게, 소금 한 꼬집 뭉치지 않게 잘 섞었고, 마지막으로 녹인 버터를 넣어 매끈한 반죽을 만들었다. 덮개를 덮고 반죽이 숙성되는 동안 어제 야식 먹고 그냥 내버려둔 그릇들을 설거지 하고, 크레이프와 함께 먹을 재료들을 다듬고, 커피 내릴 준비를 했다. 일요일이기도 하고 입고 잔 잠옷을 빨 예정이라 옷도 안 갈아입고, 앞치마도 생략한 잠옷 차림 그대로 느릿느릿 움직였다. 이럴 때 은근히 느껴지는 자유의 쾌감이 기분 좋다. 잠옷을 챙겨 입고 자고, 일어나서는 갈아입는 생활이 없었다면 느낄 수 없는 감각이겠지.

 

크레이프 총 네장을 구웠고, 모양은 좀 울퉁불퉁 하지만 그래도 반죽을 신경 써서 섞었더니 질감이 아주 좋게 익었다. 두 장은 짜게, 두장은 달게 먹을 계획으로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꺼냈다.

첫 장은 냉장고에서 꼬리꼬리 숙성되고 있는 빈쩌깨제랑 면조가 사놓고 잊어버린 것 같은 살라미, 양상추, 소금에 살짝 절여서 꼭 짜둔 오이 슬라이스, 메아레티쉬 스프레드를 발라먹었다. 꼬리꼬리 한 치즈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두 번째 장은 양상추, 사과 슬라이스, 프레시 치즈, 호두를 넣어 먹었다. 역시 실패 없는 맛있는 조합이다.

세 번째 장은 딸기잼만 살짝 발라 먹었는데, 이 맛을 위해 내가 오늘 낮잠도 안 자고 이걸 만들었구나 싶은 깊은 충족감과 달성 감을 주는 맛이었다. 그래서 네 번째 장도 그냥 딸기잼을 발라 먹었다.

 

천천히 먹고, 중간에 고양이들 싸우는 것도 구경하고 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남은 커피를 한잔 더 마시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곧 해가 져 버릴 예정인 마냥 밖은 어둡다. 흐리고 비 오는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일도 좀 하고 주방과 다용도실 선반 정리도 좀 하려고 했는데. 게으름 피우느라 시간이 많이 흘러버려서 둘 중 하나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뭐 남은 건 다음 주로 미루지 뭐. 오늘의 행복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