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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감각

시디피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대충 바닥에 놓여 있다.

시디 더미를 바라보며 지금 듣고 싶은 음악이 뭔지 생각한다. 신중하게 시디 케이스 하나를 골라 든다. 이미 플레이 한 시디들 더미 위로 가져가서 얹어놓는다. 시디플레이어 뚜껑을 열어 들어있는 시디를 확인하다. 엄지손가락과 중지 손가락을 이용해서 원반의 가장자리 양 끝을 단단히 잡고, 검지 손가락으로 중앙의 홀 근처를 살짝 눌러서 반동을 이용해 찰칵 시디를 꺼낸다. 손에 든 시디와 짝인 케이스를 찾아서 다시 반듯하게 조립해 닫아둔다. 방금 새로 꺼내온 시디 케이스를 열어 그 안의 시디를 뚜껑이 열려 있는 씨디피 안에 찰칵 집어넣는다. 뚜껑을 닫히면서 다시 걸쇠가 내는 찰칵 소리와 진동을 느낀다. 스피커의 스위치를 켜고,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챠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시디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음악이 시작하기 몇 초 전, 시디만 돌아가고 있는 소리를 듣는다.

 

이 일련의 과정이 그리웠다. 내게는 이 것도 음악 감상 경험의 큰 일부분이었으니까. 그래서 시디플레이어를 하나 구입했다. 이제는 내가 알던 유명한 제조사에서는 더 이상 씨디피를 생산해서 팔지는 않고 있었다. 소니의 붐박스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였는데 덩치가 좀 있어서 어디에 두고 감상해야 할지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포터블 씨디피를 제조해서 팔고 있는 회사들의 홈페이지를 하나씩 들어가 봤다. 몇 개 없어서 얼마 안 걸려서  사야 할지 정할 수 있었다. 꽤 오랫동안 오디오 기기를 제조해서 팔고 있는 스위스의 lenca라는 곳에서 만든 제품을 아마존을 통해 구입했다. 가장 최신 모델을 샀는데, 블루투스가 되는 모델이어서 집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와 쓰기에 좋을 것 같았다. 막상 몇 번 사용해보니 블루투스 신호가 불안정해서 그냥 aux선으로 연결해서 듣고 있다. 덕분에 저렇게 살짝 너저분하게 바닥에 나란히 놓여있다. 정리 해결책을 찾고 있다.

 

예전에는 포터블 플레이어는 반드시 헤드폰으로만 들었다. 그리고 내 방에는 미니 컴포넌트라고 불리는 기기가 있었다. 시디, 카세트 플레이어 그리고 라디오가 나오는 제법 덩치가 큰 음향기기였다. 스피커도 플레이어 양 쪽에 큰 것이 두 개나 있었다. 옷 서랍장 위 공간을 가득 차지했었다. 태광전자라는 곳에서 만든 그 기계를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내 애용했다. 고장 나기 전까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도 하고, 주로 용돈을 모아 산 시디를 들었다, 고스트 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 방송의 영향으로 주로 록음악을 들었다. 디제이가 추천해주고 가끔 강의도 해주는 80년대 미국이나 영국 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기쁘게도 그런 음반들은 추억의 명반 같은 코너에서 싸게 파는 것들이 많았다. 당시엔 만원 이하로 시디 한 장을 살 수 있고, 그걸 가져와서 들었는데 음악이 좋기까지 하면 너무 기뻐서 잠도 안 자고 새벽까지 앨범을 반복해서 계속 들으며 얼마나 훌륭한 소비를 했는지 곱씹곤 했었다. 모아둔 시디가  되다 보니 나는 계속해서 씨디피로 음악을 들어왔다. 벅스뮤직이나 멜론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없다.

 

하지만 독일로 이주하면서 너무 많은 짐이 부담되어 대부분의 시디를 눈물을 머금고 처분했다. 아끼는 것들은 케이스만 버리고 재킷과 알맹이를 차곡차곡 쌓아서 박스 안에 넣어 시댁 창고에 보관 중이다.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조금씩 가져오긴 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시디가 그곳에 있다. 케이스가 없으니 확실히 불편하기도 하고, 자동차에서 말고는 시디를 들을 기기가 없다 보니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애플뮤직을 결제해서 듣고 있었고, 학생 할인 기간이 끝난 2년 전부터는 그냥 유튜브를 통해 그때그때 듣고 싶은 음악을 들었다. 결과적으로 음악을 많이 듣지 않게 되었다.

 

온라인 서비스로 음악을 듣는 것은 생각보다 피로한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그랬다. 왜냐하면 일단 선택지가 너무 넓었다. 세계의 수많은 음악들이 데이터베이스에 있고, 나는 이름을 검색하거나 아니면 서비스가 알아서 추천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것들, 취향이 비슷한 다른 사람의 플레이 리스트 등을 통해서 새로운 음악을 몇 개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음악을 골라 듣는 행위는 좀 더  스스로와 연결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시디가 눈앞에 놓여 있어 선택의 한계점을 만들어 주고, 재킷 디자인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시디를 사서 처음 뜯어서 듣던 당시의 감상을 아주 빠르게 기억해 내면서 훑다 보면 정확히 지금 뭘 들어야 할지 알 수 있게 된다. 지금 듣고 싶은 그것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뭘 원하는지가 어느 정도 정확히 떠오르게 되므로 다음에 사면되는 것이다. 스크린에 뜬 트렌디한 그래픽과 함께 무드별로 정리된 For you 추천목록이나 모든 앨범과 뮤지션명이 같은 폰트로 쓰인 XX뮤직 서비스로는 도저히 감이 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시디플레이어를 사고, 집에 있는 몇 가지 시디로 다시 음악을 듣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다. 지금으로써는 이미 가진 40여 장의 시디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음에 한국에 방문할 때 더 가지고 올 것을 한 해 동안 즐겁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미 가져온 것들은 왜 굳이 이 것을 다른 것들보다 앞서서 가져왔는지에 대한 이유가 더 확실하므로 정말 좋아하는 노래들의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좋아했던 음악을 이렇게 내 손안에 잡히는 물질로 가지고 있다니. 잊고 살던 삶의 사치이고, 이젠 좀 더 어렵게 노력해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