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얻어가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막상 먼 길을 떠나오기 전에는 내키지 않는 무거운 마음이 더 큰데, 오고 나면 다시금 깨닫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 쌓여 있는 정을 느낀다. 내 이십 대 어드매의 삶의 배경음악과도 같았던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란 노래 초입부 가사가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라고 시작하는데, 하얀 태양이 독일에는 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끔 길을 잃는다. 한국에 와서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을 만나고, 비슷비슷한 듯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몸이 태양의 온기 같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다시 또 돌아가서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태양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것이다. 가끔 독일에서 살면서 끝이 없는 듯한 공허한 느낌이 들 때 이 노래를 들으며 막 울기도 했었는데, 한국에 와서 다시 들으니 이토록 다른 느낌이어서 그 차이를 기억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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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새로운 대륙에서 적응하고 살다보니 20대보다 40대가 더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한국에 오니 실감이 난다. 사십대로 접어든 친구도 몇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여서 그 숫자 자체가 어색했다. 물론 끼리끼리 노는 세상 이치대로 나잇값 못하는 나와 어울려 주는 친구들은 다 동안에 여전히 소년소녀의 그 나이브함이 언뜻언뜻 보이는 귀여운 사람들이다. 그래도 확실히 주변 공기가 바뀐 것은 느껴진다. 이번 서울 방문을 기점으로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않던 사십 대의 내 모습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수년 후의 내 건강 상태, 커리어, 관심사, 라이프스타일, 옷차림, 말투나 행동가짐, 등. 서서히 최소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것과, 애써서라도 이 정도는 하고 싶다는 기준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직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독일에서의 나와 한국에서의 나의 모습의 괴리다. 확실히 한국에 오면 한 다섯 살은 더 먹은 기분이 드니까. 이 갭의 의미가 뭔지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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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년부터 서울이 갑갑하고 부담되는 도시가 아닌, 아름답고 다채롭고 온갖 추억이 살고 있는 사랑하는 내 고향으로 느껴진다. 그 이전까지는 학생이었어서 여유가 없었는지, 아니면 올 때마다 기존에 하던 비즈니스가 미처 정리가 안된 상태였어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을 함께 받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단순히 내가 그릇이 좀 더 작았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이란 도시에 대한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올 해는 그저 좋다. 코로나를 겪고 나서 유럽에 좀 더 정나미가 떨어진 상태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내 집은 거기고, 내 일상을 다시 그곳에서 정갈하게 만들어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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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가족이 겪고 있는 시련이, 우리에겐 불행이 아니고, 우릴 좀 더 단단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얻어가는 에너지만큼 나도 아빠와 엄마와 동생에게 뭔가를 나눠주고 갈 수 있는 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