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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격리 삼일차

도트무늬 팬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고 있는 예쁜 내 고양이

비행기에서 본 조조래빗에 좁고 어두운 다락방에 갇혀 사는 소녀가 나온다. 이걸 지금 공감하고 있다. 다행히 여긴 어둡지 않고, 그 정도로 좁지는 않다. 배달 서비스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배가 고프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에서 영화 세 편을 봤는데 세 편 다 너무 재밌었다. 조조래빗, 작은 아씨들 그리고 프랑스 영화 러브 리와인드.

 

한국에 방문했다. 도착날 포함 15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오늘이 삼일째다. 공항에서부터 굉장히 철저한 검역을 여러 단계 통과했고, 에스코트받다시피 해서 내가 예약해 둔 작은 원룸형 숙소에 있다. 긴 여행을 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시설이라 작은 주방, 냉장고, 화장실이 한 방안에 갖춰진 그야말로 원룸이다. 평소에 지내던 공간보다 확연히 작은, 사실 처음에는 약간 충격도 받을 만큼 작은 공간이어서 갑갑함은 있지만 그래도 적응하고 있다. 오늘부터는 독일 현지 시간에 맞춰 근무를 할 것이다. 매번 시차를 계산하기가 혼란스러워서 시각이 이중으로 표시된 생활계획표를 그렸다. 오늘은 계획보다는 한 시간 정도 늦게 잠에서 깼지만, 새벽 배송을 두근거리며 기다리다 받느라 늦게 자기도 했으니까 차차 나아지겠지.

 

이렇게 낯선 공간에서 이렇게 오랜 기간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지내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벌써부터 눈에 띈다. 일단 먹을 것은 배달음식을 주문해야 하는데, 매 끼니 그렇게 먹기에는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쓰레기를 15일간 내다 버리러 나갈 수가 없다. 따라서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 오기 전에는 꿈에 부풀어 뭐든 맛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주문을 하려니까 참 어렵더라. 내가 먹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고, 몸이 아직 긴 비행 후유증을 겪는지 소화가 되지 않았다. 오늘 눈 뜨고는 좀 괜찮은 것을 보니 적응이 되고 있고, 또 어제 한 요가가 효과가 있나 보다. 먹고 탈 안 나고 잘 소화시키는 것이 큰일이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이 또 걱정이다. 이 작디작은 방에는 비교적 큰 침대가 놓여 있어서 남은 공간이 거의 없는데, 식사를 위한 낮은 밥상은 하나 있다. 여기에서 일을 해야 한다. 지금 일기도 그 위에서 쓰고 있기는 하다. 다행히 노트북 받침대를 챙겨와서 높이는 그럭저럭 너무 낮지 않은데 좌식 생활을 해본지가 오래되어서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일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한다. 중간중간 자주 일어나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면서 해야겠지. 아무튼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인지라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가 된다.

 

운동을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딱 내 한 몸이 길게 누울 수 있는 폭 40센치, 길이 180센치 정도의 침대 옆 바닥 공간이 있다. 어제 여기에서 수리야나마스까라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진행했는데 할 만했다. 요가 매트가 없어서 정 곤란하면 하나 사려고 했는데 별문제 없이 만족스럽게 땀을 흘리고 몸을 풀 수 있었다. 수리야나마스까라는 참 좋은 운동이다. 이걸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방에 에어컨도 있고 선풍기도 두개나 있다. 여름엔 많이 더운가 싶지만 지금은 다행히 날씨가 아주 좋다. 예약 당시 내가 선택한 가장 싼 방에 머물던 다른 사람이 연장을 원해서 나는 2층의 방으로 대신 배정을 받았는데, 지층이 아니라 2층이다 보니 해도 훨씬 잘 들고 더 좋은 것 같다. 여행객들이 쓰는 시설이고, 관리 상태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예상보다 돈도 아꼈고, 각종 신문물 서비스가 시범운영을 다 하는 지역에 있다 보니 그런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매번 느끼지만 한국은 정말 편리한 도시고, 편리를 위해 많은 것을 기꺼이 희생한다.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선 너무 힘들었어서 도망쳤는데, 가끔 와서 즐기는 것은 좋기만 하다. 나 같은 간사한 사람들로 인해 이 경제가 돌아가고 있겠지.

 

으 약 15분 정도 앉아서 일기를 쓴 것 같은데 양반다리로 앉은 한쪽 발이 저리다. 생각보다 더 자주 스트레칭을 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