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1704)
가을엔 여행을 한다. 나는 가을에 여행을 떠난다. 벌써 수년째 그러고 있다. 휴가라고 부를 수 없는 길고 피로한 여행을 주로 가을에 간다. 여름휴가에서 모두 돌아왔을 때, 나 하나쯤 쉬어도 많은 사람들이 업무에 익숙해져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때, 수많은 여행지가 비수기로 접어들었을 때, 아직은 낮에 해가 따뜻할 때 나는 여행을 한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 토론토, 몬트리올, 뉴욕, 도쿄, 오사카, 교토, 고베, 아와지 섬, 대만 곳곳, 방콕, 제주도 그리고 서울. 가을의 풍경으로 기억에 남은 수많은 여행지가 떠오른다. 올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여행을 해서는 안되는 가을이다. 하지만 아픈 엄마와 한 번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미루기엔 기약이 없고 엄마와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많은 고민 끝에 결..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것들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된 이후로는 다음 달에도 내가 숨 쉬고 걸어 다니며 살아있는 것을 확실시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졌다. 계약한 회사에서 주 40시간 일하기,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잘 챙겨서 내기, 체력과 컨디션 유지를 위해 운동과 위생관리 하기, 기타 등등. 그 외에 의식 있는 시민으로서 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공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하는 행위들도 있다. 외국어 연습하기, 세계 주요 뉴스 업데이트 하기, 매력적인 외모를 갖추기 위해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하기, 환경에 덜 해를 끼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실천하기, 소셜 모임에 참석하기 등. 사실 이런 것들만 해도 하루하루가 굉장히 바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굳이 내게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
웨딩 그리고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더 소셜 딜레마'를 봤다. 유저의 관심을 계속 잡아두고, 더 많은 시간을 해당 플랫폼에서 보내기 위해 짜인 알고리즘과 그로 인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깊어가는 사회의 분극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사이언스 픽션처럼 만든 재연극과 각종 소셜미디어 플랫폼 제공 회사를 위해 일하거나 일했던 사람들, 그리고 몇몇 전문가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좋은 영화였다. 나 역시도 이미 중학교에 가서부터 피씨통신을 통해 동호회 활동을 했고,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스마트폰이 나오고, 내가 어딜 가든 인터넷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은 성인이 되어 겪었지만 지금 내 상태를 보면 어려서 스마트폰을 접한 아이에 비해..
고요함의 모습을 한 행복 한 달이 넘게 일기를 쓰지 않았다. 토막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일기장 앞에 고요하게 앉아서 생각을 다듬어 써내려 갈 기회가 없었다. 아무래도 면조가 방학을 해서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적어졌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그만큼 더 게을러졌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지진 않았다. 풀타임 근무 후 저녁식사를 위해 요리해서 치우고 나면 더이상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뭔가를 생각 할 두뇌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을 가까스로 하고, 나머지 시간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흘려보낸다. 8월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별 일이 없었다. 평일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장을 보거나 필요한 외출을 하고, 혹시 약속이 있으면 사람을..
게임에서는 쪼렙, 현실에서는? 요즘 신나게 젤다 야생의 숨결을 플레이하고 있다. 아직 매우 초반이기 때문에 링크도 아주 약하고 아이템도 별로 없고, 또 쓰리디 게임을 오랜만에 플레이했더니 어찌나 어지러운지 몇 중고를 겪고 있는지 모른다. 재미는 있지만 괴로운 시기이다. 하지만 어떤 게임이든지 이 초심자 때의 막막함을 넘어서야 진짜 숨 막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으므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 다행히 게임이 정말 놀라운 완성도에 자유도를 가지고 있어서 풍경을 감상하거나 단순히 스토리를 따라가며 만나는 장소와 캐릭터의 디자인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초심자가 겪는 막막함을 겪고 있자니 가끔씩 게임에서 현실로 도피하고 싶어진다. 진짜 웃긴 현상이 아닌가? 보통은 현실이 따분하거나 답답해서 게임이 주는 즉각적 보상의 감각으로 도피를 하..
영화관에 가고 싶은 마음 독일에 와서는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영화관에 거의 가지 않았다. 라라 랜드, 어벤저스 두 편, 기생충 정도만 영화관에서 본 것 같다. 근방 도시 만하임에 멀티플렉스가 여러 개 있는데 그중 원어 상영을 하는 곳은 아주 제한적이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체념하게 되었다. 영화는 가급적 영화관에서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영화 감상률은 뚝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아주 작은 노트북 화면 아니면 오래된 빔 프로젝터를 고생고생 연결해서 봐야 하는데, 아주 재미있는 영화가 아닌 이상 그 수고를 잘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패드 프로를 샀을 때도 이것으로 영화나 드라마 감상이 쉬워지리라 예상했는데, 밥 먹을 때 틀어놓는 수준의 가벼운 영상물 외에는 잘 감상하지 않는다. 지난달 티비를 산 뒤로 나에게 있어 가장 ..
집정리를 한 휴가 3일 회사 일이 너무 하기 싫었다. 구매니저와의 끝나지 않은 악연이 매일의 일과를 정말 더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6월 초, 가장 바쁠 때 휴가를 간 동료의 일을 커버하느라 일더미에 깔려 3주가량을 보냈고, 그 뒤에는 그동안 제쳐 두었던 내 일을 하느라 바빴다. 떨어진 체력, 무기력함과 싸우고, 갑자기 닥친 판대믹 상황에 안절부절하면서 보낸 반년이었다. 후반부 시작하기 전에 휴가라도 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9월에 한국 가려고 아껴 두었던 것인데, 좀 떼어와서 3일 휴가를 썼다. 딱히 여행을 갈 상황도 아니고 계획 없이 쉬고 싶어서 쓴 휴가이기 때문에, 집에 머물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미루고만 있던 창고와 주방의 선반들, 그리고 옷 정리를 하기로 했다. 모티베이션을 얻기 위해 일을 하던 월, ..
티비와 함께 한 일주일 티비를 샀다. 중학생 때 즈음부터 티비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20여 년을 티비 없이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아니다, 사실은 2년 정도 캐나다에서 지낼 때 티비가 있었다. 하지만 정규방송이 나오도록 케이블을 연결하지 않은 일체형 dvd플레이어만 이용한 티비였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dvd플레이어에 화면이 달린 것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브라운관을 들여다보는 일은 별로 없었다. 나는 영화 보는 것을 많이 좋아하고 즐겼었고, 딱히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방송엔 관심이 없었다. 대학교 다닐 때 무한도전을 재밌게 보기는 했었지만, 티비로 본 적은 없다. 아무튼 티비는 나에게 있어 필수품도 아니었거니와 오히려 사고 싶지 않은 가전제품 중 하나였다. 일단 크고 검은 물체가 집안에 하루 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