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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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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고 휴가를 앞둔 나날 9월이 되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벌써 구월이 다 지나갔다. 집이 너무 추워서 난방을 켠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난방을 안 켠 거실은 실내온도가 17-19도 정도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실내에서 입는 겉옷을 두 겹 겹쳐 입어야 그나마 덜 춥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샤워실도 너무 추워서 샤워 전에는 꼭 유산소 운동을 한다. 한 번도 스스로 산 적 없던 전기장판을 하나 샀다. 가격이 싸지도 않은데 너무나 싸구려 같은 재질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열선으로 덥히는 기능이 있는 깔개가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구대륙에서의 삶이다. 계절이 바뀌면 체크리스트처럼 하나씩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있다. 지난 주말은 아마도 8월 이후 처음으로 약속 없이 보낸 주말이었는데, 덕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죽음을 택하는 이유 며칠 동안에 두 유명인의 서로 연관되지 않은 죽음을 미디어를 통해 접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 영국의 여왕은 본인만큼 장수중인 군주제의 보호 하에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장 뤽 고다르의 죽음은 (91세라는 적지 않은 향년을 생각하더라도) 뜻밖이었다. 그 방식이 스스로 선택한 associated suicide 이기 때문이다. 또 마침 타이밍이 고다르의 부고 기사를 접하기 바로 전에 오마이뉴스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대한 짧막한 글을 읽은 뒤였다. 고다르가 죽기로 결심한 이유는 '지쳐서'라고 했다. 이 말이 맘에 묵직하게 남았다.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멋진 삶이었길래 91세가 되도록 지치지 않았을까, 지칠 만큼 지치고 주도적인 죽음을 택할 의지는 남아 있는 ..
삶은 요를처럼 오늘은 요를레이의 열 번째 생일이다. 요를과 함께 산지 벌써 십 년이 가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감격스럽다. 내 삶 20대 중반에 만나서 내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는 아마도 요를일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 전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만나서 나랑 살게 된 이 녀석 덕분에 그동안 상상도 못 했던 여러 가지 삶의 단면들을 겪고 배울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요를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는지 모른다. 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보다 깊은 자괴감과 책임에 대한 무거움을 느낀 사건이 있었나 싶다. 다행히 이유를 모른 채로 아팠던 요를은 이유를 모른 채로 나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면서 내 뒤에서 고래고래 짖고 있다. ..
온사이트 워크샵 어제 회사에서 진행해야 하는 워크샵을 위해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사무실에 다녀왔다. 아마도 이사오고서 처음으로 다녀왔으니까 일 년 넘게 사무실에 간 적이 없다. 그래도 다행히 몸이 회사에 가는 길,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45분 정도 고속도로를 때려 밟아서 가는데, 오랜만에 팟캐스트 들으면서 운전하니까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편리한 커피머신, 탄산의 단계가 조절되는 정수기, 최신 모니터에 높이 조절 책상 등 좋은 환경에서 오랜만에 일하니까 아 나도 회사원이었지 싶은 기분이 들더라. 하지만 역시 동료들의 잡담과 전화 회의 소리를 견디면서 일하는 것은 좋아할 수 없었다. 기름값이 지금처럼 무섭지 않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올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한 워크샵은 내가 하..
둘이 살기 나의 룸메이트(a.k.a. 나그네/면조)와 같이 산 지 10년이 넘었고, 두 사람의 학교나 근무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2인 가구의 생활방식을 경험했다. 분당에 신혼집을 구해서 살던 첫 해엔 한 명은 재택근무자, 나는 서울로 출퇴근을 했고, 곧이어 둘 다 출퇴근을 하며 저녁에만 만나는 삶을 살다가, 둘 다 재택근무자가 되어 동네의 편리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삶을 즐기다가 독일로 이사를 왔다. 독일에서 한동안은 학교나 어학원을 다니느라 둘 다 바쁘게 지내다가 내가 졸업하고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는 직장을 구한 이후에는 나는 쭉 재택러로, 면조는 쭈욱 어딘가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3년 정도는 학교가 뮌헨 근처에 있는 면조의 기숙사를 따로 구해서 한 명은 펜들러(부주거지..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어가는 이유 1. 정원 이사 온 후 뒷마당 정원만 열심히 관리했고 아침에만 잠깐 해가 들고 하루 종일 그늘이 진 앞마당은 많이 소홀했는데, 수국도 하나도 피지 않고, 통로 건너편 장미랑 나무들도 다 죽어가는 것을 보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둘 다 약속 없는 토요일을 맞아 오전 중청소 후, OBI에 가서 바닥에 덮을 나무 조각들이며 필요한 물건을 잔뜩 사 가지고 왔다. 꽃나무들이 심긴 땅의 수분 보호를 위해 나무 조각들을 깔고, 장미랑 사철나무를 뒤덮은 덩굴 잡초들을 싹 제거하느라 일요일 오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했다. 정원 관리는 정말이지 힘이 많이 들고, 온갖 참신한 벌레들을 만나야 해서 고달프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되게 뿌듯하다. 생활의 행복에 기여가 큰 취미 중 하나라니까 내가..
집중력 장애랑 살아가기 내 집중력 장애 문제를 인식한 것은 엄청 오래전이다.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산만하다'라는 표현이 생활기록부에 종종 등장할 만큼 산만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진득하게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잘했던 시기는 입시미술 이후로 없었던 것 같다. 입시미술은 4시간 만에 주어진 과제를 완성된 그림으로 그려내야 해서 최소한 4시간은 연속해서 집중해야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시시때때로 전화가 오거나 동료가 질문을 해서 흐름이 끊기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내 집중력이 문제라고 인식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다시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와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유명한 뽀모도로 타이머를 이용해서 25분 집중, 5분 휴식 같은 방법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25분을 한 곳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어..
폭염이 지나간 여름 이사 온 집에서 처음 맞는 여름은 정말로 뜨거웠다. 유럽 대륙을 바싹 구워버린 폭염 때문이었다. 모두가 더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내용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들렸지만 막상 나는 작년이나 재작년 여름보다 수월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은 간간이 쏟아지던 스콜 때문에 습해서 힘들었고, 재작년 여름은 뜨겁고 또 뜨거웠다. 43도란 숫자를 봤던 것도 같다. 올 해는 내가 겪은 최고 기온이 41도였다. 아무튼 40도가 넘는 더위라니 심각한 기후위기가 체험된다. 매 년 가속화되는 기후위기와 더불어 올 해는 전쟁이 진행 중이고, 에너지 크라이스가 심각하고, 식량위기도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어서 물가가 실시간으로 오르는 것도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운 여름이다. 반면 내 집에서는 비교적 안락하게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