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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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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일월 한 오 년 만에 군고구마가 먹고 싶었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지는 며칠이 지났지만 오늘 아침에야 오븐에 넣고 구워 먹었다. 알루미늄 포일로 감싸서 낮은 온도로 40분 초벌구이(는 어제 해뒀다), 센 그릴모드로 돌려가며 30분을 더 구웠다. 고구마 하나 익히는데 쓰는 에너지가 너무 많다. 그래도 먹고 싶었던 것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은 삶의 낙 중 하나다. 아침에 고구마를 구웠더니 온 집안에 향긋한 군고구마향이 지금까지 풍기고 있다. 역시 굽기를 잘했다. 정말 맛있었다.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고구마는 전분보다는 섬유질이 더 두드러지는 빨간 속살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고구마에 비해 당도가 떨어지는데 구웠을 때 향은 못지않게 좋고, 목 막히는 느낌이 덜하고, 원래 너무 단 것은 별로인 ..
갖고 싶은 것? 주 4일제요. 금요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휴일이었다. 왜 기다리고 기다렸냐, 마땅히 휴일이어야 할(!) 크리스마스와 1월 1일이 주말이었기 때문이다. 힘든 연말을 견뎌왔는데 고작 주말만 쉬고 다시 주 4~5일 일을 해야 해서 억울했다. 슬픈 소식은 내년 1월 6일은 토요일이어서 또다시 빼앗긴 공휴일이 된다. 이 날은 다른 주는 공휴일이 아니기도 하므로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아야지. 아무튼 의지와 본성에 반하여 지속하고 있는 회사원의 삶은 공휴일을 목 빠지게 기다릴 수밖에 없다. 권력이 사람을 조종하는데 쓰는 여러 가지 툴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법정휴가와 공휴일. 나는 이미 그것을 며칠이라도 늘려준다면 그걸 약속하는 사람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부터 설렌 롱위켄이었고, 뭔가 계획을 해볼까 싶어서 ..
이제 어디로 가지? 해가 또 바뀌었다. 나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사회적 인정 욕구를 가진 면조 덕분에 올 연말은 정말이지 굉장히 북적거렸다. 약간 문명과 떨어진 위치에 살다 보니 평소에는 고요하게 보낼 때가 많은데, 이렇게 만남과 모임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헬스를 하면서 체력을 올려두지 않았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다. 술도 많이 마시고, 음식도 굉장히 여러 가지를 많이 해 먹고 사 먹고 얻어먹었다.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며 받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많이 받아 충전했다. 나 혼자 있을 때만 충전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고갈되었다 싶을 때쯤 적절히 새해가 와주었다. 이번주는 주말에도 가급적 아무 약속 없이 혼자서 밀린 집안일과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들을 하나씩 하면서 조용히 보내고 싶다. 소셜미..
올 해는 정말 많은 실패를 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우울감에 빠져있던 올초까지와는 달리 못하는 많은 것에 도전했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실패)를 통해 많이 배웠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반복함을 통해서 배운 점이 많다. 첫 번째는 어떤 시도를 한 번에 성공하면 배우는 게 너무 적다는 것이다. 실패를 하면 한 번 더 시도할 이유가 생기고, 다음 시도는 더 괜찮길 바라니까 지난 과정을 분석하게 된다. 실제로 사워도우 빵 같은 경우는 여태껏 네 번의 실패를 거치는 동안 점점 나은 결과물이 되어왔다. 지금 다섯 번째 반죽을 하고 있는데 이 것도 완전한 성공은 어렵겠지만 지난 네 번째보다는 분명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되게 어려웠던 라미네이팅이나 프리쉐이핑 기술이 많이 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기술은 분명히 조금..
아침형은 못되지만 새해를 기점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12월쯤이 그런 결심을 할 마음이 설렁설렁 드는 시기인 것 같다. 여름-가을 동안 외부 활동도 많이 하고, 성찰 같은 것을 할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았다면 날이 추워진지 한 달 정도 된 이 시점에는 슬슬 몸과 머리가 심심해지는 거다. 다만 뭔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서, 그걸 바로 실행에 옮기기에는 연말이라 약속도 많고 바쁘다 보니 다들 1월 이후로 미루고, 그래서 1월부터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숫자와 함께 뭔가 시작하는 기분을 즐기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뭘 시작하고 싶냐면, 몇 번째 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체질, 유전자, 그동안의 습관, 커피를 즐기는 식성 ..
Stutz, 블랙프라이데이, 마스토돈 그리고 보디빌딩 Stutz 넷플릭스 발 작품으로, 인상 깊게 본 영화 '머니볼'을 감독한 조나 힐이 자신의 상담심리사인 필 스투츠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최근에 역시나 넷플릭스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1970년대 초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흑백으로 찍은 영화를 인상 깊게 봤는데, 이 다큐멘터리도 커버가 흑백이길래 무심코 틀었던 것 같다. 조나 힐 감독과 그의 테라피스트인 필이 나와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머니볼이 저렇게 어린 감독이 찍은 영화였구나 생각하다가, 필이 파킨슨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환자가 자신의 상담심리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는다는 컨셉에서 선한 의지력을 느꼈고, 그렇게 끝까지 홀린 듯이 다 봤다. 다 보고 나서는 경외의 마음에 저절로 기립박수를 (...) 혼자 있는 방에서 쳤다. 영화의 ..
연말까지 바쁘게 굴러가는 11월 휴가를 다녀온 뒤로 면접을 하나 봤고, 주 3회 정도 헬스를 다니고 있고, 백신 맞으러 사무실도 다녀왔고, 주말마다 여기저기 놀러 다니거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운동을 시작한 덕분에 내 기준에서는 꽤 바쁜 일정들을 군말 없이 소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주는 특히 바쁘다. 바쁜 한 주를 위한 마음다짐이라도 필요한 것 같아서 일기라도 써보려 한다. 사실 이 정도 일정은 한국에서 살던 때에 비하면 오히려 한가한 축에 속하는데도 이번 주에는 세 번이나 나를 평가받아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어서 더 마음의 부담이 큰 것 같다. 월요일에는 2차 면접을 봤고 3차도 보게 되어서 포트폴리오 발표 준비를 업무 전후 틈틈이 해야 한다. 화요일인 오늘은 새로운 부서장이 마침 독일에 방문 중이라 만나서 얼굴도장 찍으러 가..
독일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캄파냐 지역까지 간 11간의 로드트립 이 글은 단순한 일기일 뿐 여행기나 정보를 제공하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10월 첫 2주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요약하고 싶다.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총 4000km가 몇 미터 모자라게 운전을 했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 도착해서 전부터 보고 싶었던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하나 보고, 베네치아 근처에서 하룻밤을 잤다. 하루 만에 거의 900km를 운전했으니 첫날 운전을 가장 많이 했다. 물론 운전은 면조가 한 70% 이상 했고, 고속도로나 지루한 길을 운전해도 졸리지 않는 내가 피곤한 시간만 담당했다. 이탈리아 시내운전은 마치 서울의 복잡한 도심과 비슷한 느낌인데 독일에서만 운전하며 살다 보니 적응이 잘 안 되어서 어지간하면 면조가 운전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