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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독일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캄파냐 지역까지 간 11간의 로드트립

섬에서 하루 잔 날, 숙소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이 글은 단순한 일기일 뿐 여행기나 정보를 제공하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10월 첫 2주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요약하고 싶다.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총 4000km가 몇 미터 모자라게 운전을 했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 도착해서 전부터 보고 싶었던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하나 보고, 베네치아 근처에서 하룻밤을 잤다. 하루 만에 거의 900km를 운전했으니 첫날 운전을 가장 많이 했다. 물론 운전은 면조가 한 70% 이상 했고, 고속도로나 지루한 길을 운전해도 졸리지 않는 내가 피곤한 시간만 담당했다. 이탈리아 시내운전은 마치 서울의 복잡한 도심과 비슷한 느낌인데 독일에서만 운전하며 살다 보니 적응이 잘 안 되어서 어지간하면 면조가 운전했다. 이렇게 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적도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고속도로 톨을 오랜만에 만난 것도 인상적이었다. 톨게이트, 갓길 보호대, 표지판, 중앙선 분리대 등의 도로 집기나 기구의 디자인이 한국의 그것과 비슷한 점도, 해가 쨍한 날은 시야가 좀 뿌연 점도, 도로를 달리면서 느슨한 산봉우리를 계속 보게 되는 점까지 한국의 풍경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성남시에 살 때 종종 차 끌고 출발해서 강원도에 다녀올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인제, 신남 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일 것만 같았다.

 

우리는 총 베네토, 에밀리아 로마냐, 토스카나, 라치오, 캄파니아 다섯개의 지역을 방문했고, 라치오의 섬마을 포함해서 크고 작은 도시를 여러 군데 방문했다. 그중에 이름난 도시는 베네치아, 볼로냐, 피렌체, 피사, 나폴리였고, 모두 지역이 꽤 떨어져 있는 만큼 하나같이 사이즈며 분위기가 정말 다른 특색 있는 도시들이었다. 최종 목적지라고 할 수 있는 아말피 해변가를 지나 좀 더 남쪽에 위치한 리조트 호텔에서 4박을 하며 좀 쉬려고 했으나, 나폴리의 피자맛을 못 잊고 다시 오르락내리락 신나게 돌아다녔다. 유명 관광지는 두 곳을 방문했을 뿐인데 그 이유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오로지 미식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가기로 결심한 이유도 그래서다. 방문했던 유적지는 폼페이와 카세르타궁전이다.

 

열흘 넘는 기간 동안 계속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자야 하는 휴가 계획을 들은 모든 독인 동료/친구들이 도대체 왜 그런 여행을 하냐고 그게 휴가냐고 했고, 한 동료는 너 되게 엄메리컨 같다고 ㅋㅋㅋㅋ 미국 사람들이 이탈리아 가면 그렇게들 여행하더라고 했다. 확실히 지척에 이탈리아를 둔 독일인이라면 굳이 이런 방식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번 기회가 지나가면 언제 다시 이탈리아를 방문할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못 가본 곳도 많고, 애초에 고양이랑 비용, 환경 걱정 등으로 인해 여행을 자주 또는 길게 가는 게 쉽지가 않다.) 평소에 너무 궁금했던 곳들을 꼭 방문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의 중심에는 나폴리의 피자가 놓여있었다. 여행 가기 전에 넷플릭스의 '셰프의 테이블'을 보다가 나폴리에서 멀지 않은 도시에 있는 프랑코 페페의 혁신적인 피자를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일정에 맞는 비어있는 예약시간대가 없어서 거의 포기할 뻔했다. 그런데 면조가 운전하는 중에 심심하기도 하고, 이탈리아의 음식을 먹을수록 점점 더 궁금증이 더해지기도 해서 계속해서 혹시 빈자리가 나지 않을까 시도해봤는데...! 누군가 취소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갈 수 있는 시간대에 한 자리가 떠서 예약할 수 있었다. 약간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사건이었는데, 피자의 맛이 진짜 충격적일 만큼 새로운 레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독일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을까? 심지어 좋아하던 가게도 있는데, 그 가게의 피자의 단점이 갑자기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했다.

 

방문했던 레스토랑 중에는 신중을 가해서 선정한 레스토랑도 있었고, 산을 넘다가 배가 너무 고프고 목적지까진 아직 많이 남아서 그냥 근처에 괜찮아 보이는 곳을 들어가는 식으로 방문한 곳도 여럿 있다. 놀라운 점은 하나같이 (독일에서 내가 가본 대부분의 레스토랑과는) 식재료나 요리를 대하는 태도가 아예 다른 결과물을 배달받았다는 것이다. 과연 이 정도는 되어야 맛국이구나. 재료 설명에 DOP(특정 지역에서만 수급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한 상급의 재료) 마크가 붙은 재료를 나열한 경우가 꽤 흔했고, 같은 요리라도 요리사에 따라 표현해내는 방식이 달라서 재밌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는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식사에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다. 보통 유럽의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는 3-4일에 한 번씩은 아시아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단 한 번도 이탈리아 음식 외의 것을 먹고 싶었던 적이 없는 점도 신기했다.

 

딱 하나 아쉬웠던 점은 맛있는 맥주를 찾는 것이 쉽지가 않아서 주로 와인을 마시면서 다녔다. 재미있는 것은 레드보다 화이트 와인을 즐기는 나로서는 내가 사는 라인 헤쎈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보다 향이나 맛이 좋은 와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레드와인은 괜히 더 신중하게 골랐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다 훌륭했다. 특히 토스카나 지방의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은 식사의 경험을 끌어올리는 멋있는 맛이었다. 이탈리아의 식전주 문화를 배웠는데, 사람들이 많이 마시는 아페롤 스프리츠를 딱 한 번 마셔봤다. 한 번만 마신 이유는 원래 내가 즐기는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마셔 봤을 때는 감기 시럽 같은 맛에 색깔만 예쁜 음료수 같았는데, 내가 갔던 바의 평생을 거기서 보내신 듯한 바텐더 할아버지의 내공 덕분인지 몰라도 이탈리아에서 마신 것은 훨씬 더 오렌지의 향미가 살아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리몬첼로도 스프리츠류도, 단 술을 싫어하는 나에겐 한 번 이상 찾게 되지 않는 류의 음료였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침(단 빵 하나, 커피), 점심과 저녁을 다 먹었고, 심지어 레스토랑들이 저녁 장사를 보통 저녁 7시 반부터 자정까지 하기에 늦게까지 뭔가를 먹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집의 체중계의 건전지가 다 떨어진 지 오래되어서 전과 후의 체중을 재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둘 다 체감상 그리고 외관상 3-5kg은 쪄서 돌아오지 않았나 예상한다. 마지막 날 밤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에 위치한 알고이의 작은 마을에서 잤는데, 8시 30분밖에 안되었는데 대부분의 레스토랑이 영업을 안 하거나 주방을 마감해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어쩜 이렇게 멀지도 않은 나라끼리 커다란 차이가 있는지! 겨우 찾아 들어간 식당의 음식은 당연히 맛이 없었다. 여행 내내 조금 그리워했던 맥주조차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아서 그 점도 아쉬웠다.

 

이렇게 지도를 축소해서 국가의 지형을 보면서 띄엄띄엄 핀을 찍고 여행한 경험은 2015년에 일본의 관서지방을 여행한 이후로 매우 오랜만이다. 이 때도 면조와 온갖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해서 어마어마한 거리를 이동했었다. 정해진 미래의 일정이 없고, 현재 이 순간에만 충실하면 되는 로드트립의 크나큰 장점을 누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마 이런 것이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보다는 훨씬 많이 계획과 루틴을 좋아하는 면조가 중간중간 길을 잃지 않게 질문을 해준 덕분에 무사히 끝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일상이 바로 다시 시작된 이번 주는 휴가, 병가, 집안 사정 등으로 자리를 비운 동료가 많아서 일이 정말 많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운동하고 다시 루틴을 수행할 에너지와 햇빛! 을 많이 받고 와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