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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계절이 바뀌고 휴가를 앞둔 나날

카쎌에 있는 그림벨트 뮤지엄에서

9월이 되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벌써 구월이 다 지나갔다. 집이 너무 추워서 난방을 켠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난방을 안 켠 거실은 실내온도가 17-19도 정도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실내에서 입는 겉옷을 두 겹 겹쳐 입어야 그나마 덜 춥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샤워실도 너무 추워서 샤워 전에는 꼭 유산소 운동을 한다. 한 번도 스스로 산 적 없던 전기장판을 하나 샀다. 가격이 싸지도 않은데 너무나 싸구려 같은 재질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열선으로 덥히는 기능이 있는 깔개가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구대륙에서의 삶이다.

 

계절이 바뀌면 체크리스트처럼 하나씩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있다. 지난 주말은 아마도 8월 이후 처음으로 약속 없이 보낸 주말이었는데, 덕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정원에 무성하게 자란 식물들을 정리하고,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고, 시들해진 장미줄기들을 잘라냈다. 작년에는 날이 따뜻한 편이었어서 10월 말까지 장미가 계속 계속 폈는데, 올해도 아직 한 라운드는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비료를 골고루 줬다. 집 안에서도 할 일은 많다. 면조가 유리창을 닦을 동안 욕실 청소를 했고, 소파 깔개, 쿠션 커버들을 모두 벗겨다 빨았다. 이번 주말에 손님맞이를 위해 이불과 시트커버들도 다 빨아야 한다. 여름 동안 바깥 일정이 많아서 신경을 덜 쓴 주방도 구석구석 점검했다. 계단 청소를 하면서 벽과 천장을 살펴보고 집세를 내지도 않으면서 내 집안에 자기 집을 지어둔 거미들의 방을 싹 뺐다. 지하실도 청소해야 하는데 너무 피로해서 미뤄뒀다. 이번 주에 해야지.

 

모처럼 약속 없이 조용히 보낸 주말을 집안일만 하고 보내기엔 아쉬워서 봄에 사둔 클레이로 이것 저것 만들고 놀았다. 오래간만에 손으로 실물을 만들어 내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생각보다 매끈하게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아서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다시 버추얼 라이프가 그리워져서 오버쿡드 시즌 패키지를 전부 다 사서 열심히 저녁마다 돌파해 나가고 있다.

 

회사에서도 이번주는 정말 바쁘다. 다음 주에 휴가를 가야 하는데, 지난주까지 휴가 간 사람들 일을 대신해주느라 내 일을 거의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발팀 일정에 맞춰서 무사히 피쳐를 론칭하려면 이번 주 내로 핸드오프를 완전히 마무리해야 한다. 가능할지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히 한 명은 휴가 중, 두 명은 병가 중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대신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그 와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생겨서 그걸 할 때가 아닌데도 야근까지 무릅쓰고 프로토 타입을 만들었다. 또, 재밌어 보이는 no-code 앱 개발 서비스를 가지고 놀다가 오늘은 무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달려 들어서 오전 내내 가계부 앱을 하나 만들었다. -_- 바빠 죽겠는데 딴짓이 재밌는 건 어른이 되고 회사원이 되어서도 여전하다니.

 

휴가지 마지막 일정에 묵을 숙소도 예약해야 하고, 고양이들 돌봐줄 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도 생각해야 하고, ...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서인지 더 마음이 바쁘다. 휴가 가서는 머리 비우고 쉴 수 있으려나? 워낙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라 어떨지 모르겠다. 저 귀엽고 디멘딩한 고양이들을 두고 맘 편히 다녀올 수 있을지... 아무튼 이번 주말 손님맞이부터. 원스텝 애프터 언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