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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죽음을 택하는 이유

침대에서 기분좋게 뒹구는 노릉의 턱을 긁어주는 모습

며칠 동안에 두 유명인의 서로 연관되지 않은 죽음을 미디어를 통해 접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 영국의 여왕은 본인만큼 장수중인 군주제의 보호 하에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장 뤽 고다르의 죽음은 (91세라는 적지 않은 향년을 생각하더라도) 뜻밖이었다. 그 방식이 스스로 선택한 associated suicide 이기 때문이다. 또 마침 타이밍이 고다르의 부고 기사를 접하기 바로 전에 오마이뉴스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대한 짧막한 글을 읽은 뒤였다.

 

고다르가 죽기로 결심한 이유는 '지쳐서'라고 했다. 이 말이 맘에 묵직하게 남았다.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멋진 삶이었길래 91세가 되도록 지치지 않았을까, 지칠 만큼 지치고 주도적인 죽음을 택할 의지는 남아 있는 91세의 노인이 그려졌다. 그의 영화도 몇 편 본 게 없고, 그의 삶도 잘 안다고 할 수 없지만 부러웠다. 생각해보니 '지쳐서'는 비단 삶의 종속 유무를 결정하는 이유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관계를 이어 나가지 않을 결심도 대게는 이런 이유로 하게 된다. 아직 지치지 않은 관계엔 희망이 있다.

 

엊그제 병가를 내고 하루 종일 잠을 잔 탓인지 어제 밤에는 몇 시간 못 자고 결국 새벽에 깼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내 머리맡에서 맛있게 꿀잠을 자고 있는 노릉이를 만졌다. 따끈하고 말랑말랑했다. 이 아름다운 생명도 언젠가 끝이 나겠지. 부디 그 끝까지 내가 곁에서 최대한 긴 시간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곱씹으며 음미하는 순간은 또 흔하지 않다.

나도 오랫동안 내 삶의 마지막날은 내가 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상향을 정말 멋지게 그려낸 드라마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베이브의 마지막 파티 에피소드가 이상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 에피소드를 통해 그런 멋진 죽음은 아무한테나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상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파티에 대한 에피소드였지만 베이브란 사람이 얼마나 활기차고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 역사의 과거를 돌아보면 나 역시 궁금한 것을 알아가기 위해, 옳다고 믿는 것만 행하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레퍼런스가 없었던 일들을 '남들이 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 봤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계속해서 바뀌는 가치관과 그에 따라 바뀌는 이상과 희망, 불안 등에 잘 적응하고 있는 걸까? 벌써 약간 지친 기분이 드는데 이걸 어쩌면 좋을지 당황하고 있는 것 같다. 91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오랫동안 완전히 지쳐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글을 쓰는 동안 밖이 서서히 밝아지고 사물의 윤곽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7시가 되어서야 이렇게 되는 동절기가 되어버렸구나. 오늘은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요가도 하고 타이밍 봐서 낮잠도 잠깐 자고 몸을 좀 돌봐줘야지. 엊그제 하루 아파보니까 다시금 건강한 몸상태를 당연시 여기지 말고 잘 관리해야겠다는 맘이 든다. 물론 작심 하루나 갈까 싶은게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