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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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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코로나 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세 번째인가? 오미크론류인 것 같다. 목이 칼칼하다가 엄청 따끔대며 아파지고 열이 나서 일단 오후 병가를 쓰고 누웠다. 다음날도 병가로 쉬면서 나그네에게 부탁해서 검사키트를 사다가 검사해 보니 시약이 퍼져나감과 거의 동시에 선명하게 두 줄이 떴다. 검사를 수도 없이 해봤지만 진짜 걸렸을 때는 이토록 의심의 여지없이 두 줄이 뜨는구나. 오늘은 어차피 오후에 팀 전체 종무식 비슷한 버추얼 미팅이 있어서 병가를 쓰지 않았다. 이틀 쉬었고 다들 내가 코로나 걸려서 오래 쉴 것을 예상하니 일이 별로 없다. 슬렁슬렁 존재하지 않는 척하며 보내야지. 걸린 원인은 자명하다. 지난 주말에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많아서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가 반나절을 보내버린 그 유명한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
차 바꾼다! 올 연말은 들떠있다. 연말이라서가 아니라 차를 바꾸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지금 타고 있는 차는 2018년 말에 중고로 구입해서 5년간 너무너무 잘 타고 다녔다. 외모에 홀딱 반해서 샀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성능과 내구도를 가진 명차였다. 우리 오드리와 함께 이탈리아도 구석구석 쑤시고 다녔고, 덴마크도 다녀왔고, 수많은 주변 독어권 나라를 여행했다. 원래는 회사가 멀어서 장거리 출퇴근을 위해 산 가볍고 힘 좋은(그래서 연비가 좋은) 차인데 판데믹이 오고, 완전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출퇴근보단 여행에 많이 썼다. 독일은 땅이 크니까 비교적 가까이 사는 지인만 방문해도 왕복 2-300킬로미터는 우습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좀 더 여행과 장거리 운행에 편리한 차로 바꾸기로 했다. 사실 이미 마음에 드는 ..
돌아오는 계절들을 반복해서 준비하는 삶 남이 쓴 여행기를 재밌게 읽지 못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여행기는 재미있다. 여행을 대하는 자세나 깜냥이 비슷해서일 것이라 생각한다. 왜 내가 감히 스스로를 초유명한 작가랑 같은 여행깜냥을 가졌냐고 하는지는 여행기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아저씨는 나 못지않게 게으른 편이다. 그래서 한 여행에 한 가지 이상의 테마를 잘 설정하지 않는 듯하다. 나도 예를 들어 피자를 먹으러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선 어지간하면 피자만 먹는다든지, 뉴욕에서도 내내 피자만 먹고 다녔다든지, 맥주 마시러 떠난 여행에선 양조장만 죽어라 가고 밥은 대충 때운다든지 한다. 도무지 한 가지 이상의 목표 이상은 세우기도 달성하기도 어렵다. 피자랑 맥주를 그렇게까지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안 그래도 낯선 환경에서 오..
지겨움을 참고 그냥 하기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일이 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본심이니 어쩔 수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보자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일이 하기 싫다. 일 자체는 좋아한다. 집안일도 좋고 정원일도 좋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의 일은 목적이 너무나 아득하다. 하나하나의 타스크를 살펴보면 내가 즐기고 잘하는 일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이, 회사에게 더 큰 수익을 가져다주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방식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거시적인 목표는 프로덕 개발 프로세스조차 자동화를 많이 시켜서 중단기적으로 나 같은 개발팀원의 수를 줄여나가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들어갈 무덤을 스스로 정성스럽게 파고 있는 것이다. 매 달의 월급을 위하여. 언젠가 레이오..
목욕이 너무 좋아 한국에 오면 꼭 하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판데믹 시절에 목욕탕들이 영업을 안 해서 작년에야 처음으로 갈 수 있었다. 올 해도 한국에 오면 하고 싶은 것 목록을 작성하며 잊지 않고 '목욕탕 가기(가능하면 세신 도전)'을 써놨었다. 독일에도 사우나가 있지만 한국의 목욕탕과는 좀 다른 맛이다. 따뜻한 온탕물에 들어가 앉아있다가, 냉탕물에서 몸을 빠르게 식히고, 다시 온탕물에 들어가서 짜르르하게 온기가 몸에 스며드는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시설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앉은뱅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거칠거칠한 타월로 온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내는 행위는 아무래도 서양국에선 하지 못하겠지. 목욕탕에 가는 것은 추운날이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찬바람 쐬고 목욕탕까지 걸어가서 ..
끝이 없는 진로 고민 네이버 국어사전에 '진로'란 단어를 입력하니 여러 가지 뜻이 나온다. 진로 1 進路 - noun 앞으로 나아갈 길. 진로 2 塵勞 - noun 불교용어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진로 振鷺 - 1. noun 북한어 백로가 훨훨 나는 모양. 2. noun 북한어 결백한 현인(賢人)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를 괴롭히는 것은 첫 번째 진로일까 두 번째 진로일까. 헛갈리는 이유는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욕망이나 망념이 자꾸 끼어 들어서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는 것부터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욕망이 종종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의 갈대처럼 온갖 방향으로..
근황과 잡생각 계절성 우울증이 찾아오는 시기이기 때문에 매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헬스를 시작한 지 일 년을 슬쩍 넘겼는데 요즘 매우 게을리하고 있다. 주 2회 정도 가서 예전의 70% 정도만 하고 온다. 작년 이맘때는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있거나 준비 중인 시점이려나. 아무튼 지금보다는 훨씬 더 활기차게 보냈던 것 같다. 요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귀찮다. 이제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조차 없다. 쉬어야 내일 또 일하지, 생업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게 어디냐 싶은 수준이다. 괴로운 노동의 나날을 버티게 해주는 이야기가 담긴 책, 영화, 드라마나 기타 관심사에 푹 빠져있을 정신적 체력도 바닥이다. 그냥 누워서 봤던 만화책을 또 읽거나 주제가 너무 무겁지 않은 영화를 보는 정도가..
책 - Design for a better world 돈 노먼 선생님의 신간 Design for a better world를 지난달쯤부터 읽고 있는데 중간에 아프고 그래서 아직 3분의 1 정도 읽었다. 읽다 보니 문득 나의 전공 -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경영학 - 두 개가 굉장한 연관성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경영학 수업들 전부 다 흥미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흥미롭던 수업이 business psychology와 거시경제학이었고 여기서 다룬 행동경제학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평소에 안 하던 연관도서를 찾아 읽는 행위까지 했었다. 돈 노먼 선생도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행동경제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드러낸 초유명작 Design of everyday things를 쓰셨으니 이 분의 책이나 강연에 내가 관심이 지대한 것이 설명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