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은 들떠있다. 연말이라서가 아니라 차를 바꾸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지금 타고 있는 차는 2018년 말에 중고로 구입해서 5년간 너무너무 잘 타고 다녔다. 외모에 홀딱 반해서 샀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성능과 내구도를 가진 명차였다. 우리 오드리와 함께 이탈리아도 구석구석 쑤시고 다녔고, 덴마크도 다녀왔고, 수많은 주변 독어권 나라를 여행했다. 원래는 회사가 멀어서 장거리 출퇴근을 위해 산 가볍고 힘 좋은(그래서 연비가 좋은) 차인데 판데믹이 오고, 완전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출퇴근보단 여행에 많이 썼다. 독일은 땅이 크니까 비교적 가까이 사는 지인만 방문해도 왕복 2-300킬로미터는 우습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좀 더 여행과 장거리 운행에 편리한 차로 바꾸기로 했다.
사실 이미 마음에 드는 모델을 오랫동안 리서치했고, 그러다가 ebay kleinanzeige에서 직거래 매물을 하나 보고 감이 딱 와서 연락을 했고, 지난주에 보러 다녀오면서 구매하기로 예약도 했다. 하도 중고매물을 눈팅하며 살다 보니 괜찮아 보이는 것은 감이 바로 오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공식보증기간이 남아있는 차여야 했고, 그래서 공식 핸들러에게 사게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간혹 이렇게 공식 보증기간을 연장한 직거래 매물이 있기에 희망을 버리지 않던 중 바바를(벌써 이름 지음) 만났다. 직거래의 단점은 굳이 내가 짚지 않아도 모두가 상상할 수 있지만, 장점은 역시 가격이다. 아무래도 공식핸들러를 끼면 가격자체도 높고 부가세에 핸들링 비용도 추가로 내야 할 수 있다. 하지만 직거래는 오로지 나의 노력과 상대방의 신뢰, 협조 등을 담보로 서로에게 금전적인 이득을 보장한다. 타국에서 이렇게 비싼 물건을 직거래라니. 참 간도 크다. 하지만 다 잘 될 것이다. 촘촘하게 체크리스트를 짚으며 알아봤고, 운도 좀 도와주는 것 같으니까.
차를 사는 과정을 비교적 심플했다. 지금 타는 차는 전문 중고차 판매상에게 샀는데 이 때보다는 물론 몇 가지 절차가 추가되었다. 그중 가장 귀찮은 것이 역시 현금거래다. 유로화를 쓰는 독일은 SEPA 협정 지역이라 갖가지 안전장치적 법률로 인해 은행이체가 꼭 하루 이상 걸린다. 따라서 타인과 직거래를 할 경우 계좌 이체로는 거래하기가 어렵다. 돈을 받고 상대가 쭐라숭을 주지 않을 수도 있고, 입금했다는 확인만 믿고 차키를 줬다가는 돈을 보내는 쪽의 실수나 고의로 입금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와 거래하는 상대방은 연배가 높으시기도 하고 현재로서는 가장 수월한 방법이 현금거래여서 현금인출의 리스크를 져야만 한다. 큰 금액을 인출하려면 영업일 3일 전에 지점으로 연락해서 인출금액을 알리고 예약을 잡고서 직접 지점을 방문해야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 주거래 은행의 지점이 우리 시에서 철수해 버렸다. 가장 가까운 창구 거래가 가능한 지점은 27킬로가 떨어져 있었다. ㅋㅋㅋㅋ 차를 사기 위해선 차가 꼭 필요한 이 상황. 다행히 보험과 자동차 등록 업무는 판데믹 이후 완전히 온라인에서만 다 처리가 가능하게 되었다. 자동차 등록은 직접 주민센터에 가서 하는 것보다 심지어 수수료도 싸다! 등록 처리 후 스티커나 확인 서류는 우편으로 온다고 한다. 보험은 현재 사용 중인 보험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웹/모바일 서비스가 훨씬 잘 되어 있는 새로운 곳으로 등록했다.
새 차의 등록 절차를 마무리하고 나면, 우리 오드리를 깨끗하게 정비해서 팔고, 내 자전거를 팔고(아예 안 탐), 기타 등등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새 차로 다닐 멋진 여행지들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이런 소일거리들이 생활에 활력을 주는 것도 있어서 요즘 활기가 넘친다. 좋은 일이다. 주차장에서 볼 때마다 너무 반가운 우리 예쁜 오드리를 팔아야 하다니 그건 슬프다. 하지만 차 두대를 굴리는 것은 우리 형편에 사치지. 바바가 바통을 넘겨받아서 여러 좋은 곳들에 안전하게 데려다줄 것이다. 바바의 이름은 어릴 때 너무 좋아한 애니 '시간탐험대'의 램프의 바바에서 따왔다. 웃음소리가 인상적인 그분. 크고 빠르고 호탕한 그 분. 약간 멍청했던 거 같기도 한데 그 건 기억 안 나는 걸로.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