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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끝이 없는 진로 고민

네이버 국어사전에 '진로'란 단어를 입력하니 여러 가지 뜻이 나온다.

진로 1 進路 - noun  앞으로 나아갈 길.

진로 2 塵勞 - noun  불교용어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진로 振鷺 - 1. noun  북한어 백로가 훨훨 나는 모양. 2. noun  북한어 결백한 현인(賢人)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나를 괴롭히는 것은 첫 번째 진로일까 두 번째 진로일까.

 

헛갈리는 이유는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고민에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욕망이나 망념이 자꾸 끼어 들어서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는 것부터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욕망이 종종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는 휘몰아치는 바람 속의 갈대처럼 온갖 방향으로 몸이 흔들린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 자신이 나를 너무 피로하게 한다. 성취에 대한 욕망, 안빈낙도에 대한 욕망, 소속에 대한 욕망, 자유에 대한 욕망,... 모든 것을 한 번에 채울 수는 없고 스펙트럼을 잘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대한 나의 해석도 진로를 결정하는 것에 큰 변수가 되니까 어렵다. 현재 세상이 변하는 방향이 난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이게 시대적 감성일 수도 내 세대들이 공유하는 어떤 시기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요즘의 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지독하게 염세적인 시각을 통해 판단을 하고 있다. 낙관적인 해석도 읽어보고 나름대로 이 순환을 탈출해보려고는 하는데 그게 안된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인간들은 자신의 욕심을 절대 포기하지 않아서 다 같이 망할 거다. 업계가 변해가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대규모 언어 처리 모델이 현재는 일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고, 오토메이션을 최적화하기 위한 디자인 시스템 등의 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했는데 이런 건 거시적으로 나 같은 디자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줄여나가려는 움직임이다. 또한 하루 8시간 넘게 회사를 위해 일해봐야 나에겐 월급 이상의 보상이 없다. 월급은 삶을 유지하는데 너무 중요한 자원이지만 이 정도 자원을 위해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처럼 일이 풀리는 적은 거의 없고, 거시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뉴스가 하나도 없다.

 

사는 곳에 대한 해답도 나오지 않았다. 내게는 이민 생활의 좋은점과 나쁜 점이 공평한 분량으로 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 자국민으로 사는 것을 압도적으로 원하는 나그네의 욕망과 충돌한다. 이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할 때가 곧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3국을 원하지만 그건 나그네가 모르는 세계라 경험도 없이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내 수명이 얼마만큼 남았는지 안다면 결정이 더 쉬울까?

 

아무튼 가을이라 생각이 많은건지 그러한 시기인 건지 요즘 내가 활동하는 소셜미디어에서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다들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고 있는 거겠지. 답이 단번에 찾아질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흐르는 생각의 속도를 좀 더 늦추고 눈으로 확인 가능하게 기록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