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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또 코로나

하얀 벽 앞 하얀 쇼파 등받이 위에 올라가 있는 보호색 고양이

 

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세 번째인가? 오미크론류인 것 같다. 목이 칼칼하다가 엄청 따끔대며 아파지고 열이 나서 일단 오후 병가를 쓰고 누웠다. 다음날도 병가로 쉬면서 나그네에게 부탁해서 검사키트를 사다가 검사해 보니 시약이 퍼져나감과 거의 동시에 선명하게 두 줄이 떴다. 검사를 수도 없이 해봤지만 진짜 걸렸을 때는 이토록 의심의 여지없이 두 줄이 뜨는구나. 오늘은 어차피 오후에 팀 전체 종무식 비슷한 버추얼 미팅이 있어서 병가를 쓰지 않았다. 이틀 쉬었고 다들 내가 코로나 걸려서 오래 쉴 것을 예상하니 일이 별로 없다. 슬렁슬렁 존재하지 않는 척하며 보내야지.

 

걸린 원인은 자명하다. 지난 주말에 어마어마하게 사람이 많아서 인파에 휩쓸려 다니다가 반나절을 보내버린 그 유명한 스트라스부르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다녀왔다. 마스크를 할 생각을 전혀 안했다니 이렇게 사람이 안일해질 수가. 뭐 거리에 마스크 낀 사람이 한 명도 안보이긴 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있었던 것. 같이 다녀온 사람들이 나까지 총 여섯 명이었는데 나만 걸렸다. 아무래도 면역력이 문제인가.

 

지난 주말은 런던에 유학 가 있는 대학교 후배가 놀러와서 같이 크리스마스 마켓도 가고 주말에 관광 다니며 놀기로 했었다. 다 잘 놀고 와서 잠복기를 지나 일하는 날에 걸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 후배는 우연한 계기로 유학 오기 전에도 연락이 재개되었는데 그래서 더 반가웠다. 비슷한 비주류적 취향을 의외의 상대에게서 발견하면 놀라움이 추가되어 더 즐거운데 그러한 상대 중 한 명이었다. ㅋㅋㅋ 당연히 나그네랑도 잘 아는 사이고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잠시 한국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만 살던 지인과 유럽에게 당해서(?) 돌아올 수 없는 멘탈적 강을 건넌 사람에게는 대화에서 보이지 않는 의식의 벽을 느낀다. 그래서 가급적 이방인의 삶을 경험해 본 지인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것이 평소 소망인데 이렇게 +1 된 것을 보니 또 기쁘기도 했다. 아 이건 절대 '너도 당해봐라'하는 심보는 아니다. 왜냐하면 난 좋은 점이 더 많다고 느끼니까. 이방인으로서 살아보게 되면 소위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한국인의 종특을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관계성을 떠나 오롯이 선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는 계기가 된다. 이런 주제에 대해, 한국에서의 나와 현지에서의 나의 차이점에 대해, 각자가 발견하고 느낀 점을 말하며 수다 떠는 것만으로도 재밌다. 한국에서의 삶은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게 된다면 또 그런 비슷한 삶을 살 것이다. 사회가 좀 그렇게 하도록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으니까. 물론 그 삶이 안락하고 좋다는 것은 안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화의 재미는 압도적으로 없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의 덕질 대상, 부동산, 재테크, 해결에 동참할 생각 없는 사회 문제, 연예인,... 차라리 농담 따먹기나 회사일 얘기를 하는 편을 선호한다.

 

코로나에 걸려버린 바람에 담 주말 약속을 취소했다. 너무나 고대하던 프랑크푸르트 가서 일식 사먹을 기회였는데! 후각이 사라진 지금은 온갖 리스크를 짊어지고 강행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얼른 후각이 돌아오길 ㅠㅜ 후각 문제인지는 사실 아직 모른다. 코가 꽉 막혀서 어차피 물리적으로 냄새를 못 맡고 있다. 그 와중에도 지난번에 산 타임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깜짝 놀랐던 차의 타임 향은 좀 난다. 지독하기는. 코가 막힌 틈에 다 마셔버려야겠다. 감기차가 왜 맛이 없는지 알 것 같다. 맛보다는 효능에 중점을 둔 비율로 배합을 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