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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책 - Design for a better world

돈 노먼 선생님의 신간 Design for a better world를 지난달쯤부터 읽고 있는데 중간에 아프고 그래서 아직 3분의 1 정도 읽었다. 읽다 보니 문득 나의 전공 -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과 경영학 - 두 개가 굉장한 연관성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경영학 수업들 전부 다 흥미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흥미롭던 수업이 business psychology와 거시경제학이었고 여기서 다룬 행동경제학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평소에 안 하던 연관도서를 찾아 읽는 행위까지 했었다. 돈 노먼 선생도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행동경제학에 대한 깊은 조예를 드러낸 초유명작 Design of everyday things를 쓰셨으니 이 분의 책이나 강연에 내가 관심이 지대한 것이 설명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디자이너의 소명에 대해 이 책을 읽는 계기를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다.

내 커리어의 흐름 중에 UX란 이름의 페노메논이 끼어들면서 실질적으로는 같은 일을 하지만 - 좋은 경험을 디자인한다, 이용자가 이해하기 쉽고 사용하기 쉬운 서비스를 디자인한다 - 다루는 툴이나 생산물의 모습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그래서 어제는 툭하면 '컴퓨터가 없으면 디자이너는 쓸모없다'라고 말하는 전직 그래픽디자이너 면조와 말다툼을 했다. 요즈음의 나는 책상 위에 A3용지들을 깔아 두고 얽힌 개념들을 스케치하고 데이터의 관계를 도식화/시각화하려 노력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고, 이를 어떻게 언어로서 이용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할지 등을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포토샵은 안 켠 지 오래되었고 맥락이 같은 툴인 피그마를 이용한다고는 하지만 피그마를 통해 나오는 아웃풋은 내가 만들어내는 것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나는 전공명 그대로 시스템과 사용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디자인하는 일을 매일매일 하고 있다.

디자인이란 직무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늘 사회에서 디자이너를 취급하는 방식에 불만을 가져왔다. 내가 믿고 실천하고 있는 디자인일은 다른 모든 직군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부터 시작해서 결과물을 상상해 내는 방식의 하나인데, 단순히 시각적으로 결과물을 다듬어 완성해 내는 것에 그치는 사람인 것처럼 그래픽 툴을 잘 쓰는 창작자로서 취급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내가 받은 교육도 그렇고 실제로 일을 하면서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현상과 문화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 또 제품을 사용하거나 만들어내거나 회사에서 의사결정을 하거나 하는 내가 설득해 내야 하는 대중과 소통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센스 있게 잡아나가기 위해 굉장히 포괄적인 능력이 사용된다. 더불어 많은 연습을 해야만 숙련도가 올라가는 그래픽툴들을 자유자재로 다루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제 이 능력을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쓰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이건 비단 디자이너만의 문제는 아니겠지.

디자이너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해보는 챕터를 지나서 이제 지속가능성 챕터로 막 넘어왔다. 계속 읽으며 까먹기 전에 책을 읽으며 이어진 생각들을 기록해놔야겠다 싶어서 짧게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