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일이 많다. 내게 주어지는 책임이 점점 늘어난다. 인정을 받는 건지 그냥 이 것 저 것 시키면 어떻게든 시간 맞춰 끝내니까 일단 이용하고 보자는 심리만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어찌 되었든 꾸준히 다른 자리도 알아봐야 하는데 요즘 너무 바쁘기도 하고, 정말 가고 싶은 자리 면접 본 후로 거기가 되었으면 싶은 마음에 더 안 찾아보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좀 찾아봐야지.
회사일이 바쁘다 보니 하루종일 정말 길고 긴 시간을 앉아서 보낸다. 저녁에 헬스장을 안 가는 날은 산책이라도 하려고 한다. 한동안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자세가 많이 좋아졌는데 다시 컴퓨터 앞에서 집중해서 일하다 보니까 또 구부정해진다. 퇴근하고 나면 어깨랑 뒷목이 많이 뭉쳐있다. 어렵게 교정해 놔도 순식간에 되돌아와서 통증이 생기다니 너무 야속해. 어릴 때 체육을 해서 기본적인 골격이랑 근력이 탄탄하게 자리 잡은 사람들이 요즘 너무 부럽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약속이 없는 토요일이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밖 일을 했다. 오전에는 집안 중청소를 하고, 정오 전후에 울타리 역할로 심은 나무를 잘랐다. 잘라야 하는 시기를 훨씬 지난 시점이라 이웃들에게 되게 미안하던 참이었다. 나무가 자라서 인도를 약 20센티는 침범해 있었다. 사다리에 올라가도 키가 크지 않으면 윗면의 끝까지 자를 수 없어서 면조가 사다리를 옮기면서 나무를 자르고 나는 떨어진 가지들을 모아서 콤포스트 구역에 가져다 쌓고 바닥을 청소했다. 환경미화 전문가가 작업한 수준으로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목표여서 열심히 했지만 날도 덥고 원래 잔꽤가 많아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깨끗한 구역을 빠르게 넓히는 방식을 연구하며 했다. 나를 관찰하던 면조가 마치 로봇청소기 같은 움직임이더라고 나중에 알려줬다. 둘이서 안 쉬고 한 덕분에 두 시간 좀 넘게만에 다 끝났다. 원래는 안뜰의 가지치기와 잡초 뽑기도 하고 싶었는데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샤워하고 짜파게티 끓여 먹고 맥주 두 병 나눠마시고 낮잠을 잤다. 육체노동이 주는 피로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만 일할 때와 달리 풀리는 속도가 빠르고 그 과정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저녁에는 근처 큰 도시에 있는 아시아마트가 문을 닫기 전에 가서 떨어진 소면과 장류를 사 와야 했다. 여전히 피곤했지만 나간 김에 저녁도 외식으로 해결하고 오자는 생각으로 향했다. 아시아마트에서 장을 보고 즐겨 가는 정통 터키식 그릴집에서 엄청 만족스럽게 식사를 했다. 아시아마트를 가면 늘 어마어마한 지출을 하고 오지만 그래도 희망을 함께 사 온다. 내일은 유부초밥을 만들어 먹을 거고, 여차하면 열무김치로 김치말이 국수도 만들 수 있다. 떡볶이 떡과 사각어묵도 보충했으니 언제 떡볶이가 당길지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면조가 짜장면을 또 해 줄 예정이라 야끼소바면도 샀다. 끓는 물을 부어 사발면처럼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하는 아지노모토사의 인스턴트 미소라멘도 샀다. 채식을 하면서도 단백질 섭취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템페와 에다마메도 독일마트보다 아시아마트가 싸게 판다. 사둔 거 또 열심히 먹어 없애면서 칠월을 잘 보내봐야지.
다음 주에 상반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내가 15분이나 우리 팀을 대표해서 발표해야 한다. 매니저가 나에 대한 신뢰를 보여준 건 고마운데 좀 부담이다. 그래도 열심히 잘해봐야지. 요즘 일의 범위가 늘어나서 새로운 동료를 많이 만나서 같이 일하다 보니 나를 아는 사람, 즉 나의 네트워크가 자산이고, 사람들이 나랑 만나고 함께 일하는 걸 좋아하게 만드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필요성 때문에 기존의 나와 좀 달리 발랄하고 친근한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그래도 덕분에 점점 새로운 사람들 만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은 덜 느끼게 되었다. 영어실력이 는 것은 아닌데 말도 더 잘하게 된 것 같고. 아무튼 기회가 올 때마다 거절하지 않은 덕분에 머리와 몸은 피곤하지만 얻는 건 확실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