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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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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이별하고, 지원하고, 면접보고, 가치 판단 어려워서 고민하느라 가버린 유월 벌써 칠월이 되어버렸네. 2022년 6월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너무나 바쁘고 시끌시끌했다. 6월 마지막 주는 면조의 졸업식과 함께 열린 프라이비어페스트가 장식한 멋진 피날레였다. 열심히 현생을 달리다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맛있다. 포지션을 바꿔서 이직을 하고 싶다고 결심한 후 4-5월 내내 이력서 업데이트, 커버 레터 쓰기, 포트폴리오 제작 및 프리젠테이션 정리를 했고, 6월엔 자격증 시험 보고, 총 6군데 회사에 지원을 했다. 오늘은 헤드헌터 통해서 지원한 한 곳과 2차 면접까지 봤다. 모든 게 준비되면 지원하는 것은 쉬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이게 가장 어렵다. 일단 공고를 자세히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requirements에 쓰여있는 한 줄 한 줄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 게 많았다. 그..
오월, 파칭코, 멘탈 헬스 데이 오월의 우리 집과 주변은 기똥차게 아름다웠다. 걷는 곳마다 꽃향기가 났고, 매일매일 새로운 꽃들이 폈다. 아직 이 정원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씩 밝혀지는 꽃봉오리와 식물의 정체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었다. 산책길 보리밭은 어느새 내 무릎 위까지 자란 청보리의 솟은 머리털이 바람에 쓸려 다니며 장관을 연출했다. 와인 밭도 어느새 초록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숨 가쁘게 느끼며 나는 이직 준비를 했다. 이력서와 커버레터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 한 달여를 보내고, 나그네가 한국에서 돌아온 5월 후반부에는 매 주말마다 꽉 찬 일정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보냈다. 책은 두 권을 다 읽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정세진의 '식탐 일기'였다. 1984는 줄거리와 명성만 숱하게 듣..
봄날은 간다, 드라이브 마이 카 어제와 오늘 '드라이브 마이카'란 영화를 반씩 나눠서 다 봤다. 좋아하게 된 감독이 찍은 영화이고, 늘 좋아했던 하루키의 소설이 원작이어서 많이 궁금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소설을 읽을 때보다 주인공에게 더 몰입하게 된 건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주인공 가후쿠를 연기해서일까. 남자 창작자를 마음 놓고 좋아하기 힘든 시절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다. 영화 속에 큰 줄기가 되는 소재인 체호프의 극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단순한 사람이 깊게 몰입해서 끄집어낸 감정을 표현해낸 것들이 대게 내게 큰 감동을 준다. 그런 집중력이 나에겐 없어서 좀 동경하게 된다. 요즘 내내 이직을 위해 힘쓰다보니 나를 좀 심하게 '직업인'으로서만 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오늘 저녁은 이력..
나는 과연 이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당연히 '할 수 있다'이다. 이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작년 초부터 했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정신적인 힘이 부족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우울감과 무기력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이해해주고 싶다. 작년 후반기부터 서서히 나아지기는 했다. 이사를 했고, 새 해가 되었고,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이 찾아왔고, 한국에 다녀왔다. 독일에 돌아와서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했다. 시간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 방향을 틀려는 의지를 가지고 노를 젓지 않으면 크고 센 물줄기만을 따라 흘러가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포지션은 과거의 내가 바랐던 것이다. 최선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직장이다. 이 곳에서 4년여를 일하면서 많은 ..
뒤늦은 올 해 다짐 원래 해가 바뀌었다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획적인 사람이 되지는 못하다.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언제든 시작할 마음이 들면 시작할 수 있다. 우선은 코로나 걸렸다 나은 것을 계기로 건강관리에 대한 다짐을 진정성 있게 다시 해본다. 아픈 것은 정말 별로다. 면역력을 기르는 방법 같은 거 이미 내가 실천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 계속해서 게으름 피우게 되는 근력운동이라든지 물 많이 마시기 같은 것들을 다시금 새롭게 맘먹고 해 보겠다. 체력이 없으면 하루를 더 짧게 보내게 된다. 그러니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내 정원을 마음에 들게 가꿀 수 있기 위해, 관심이 가는 취미 생활을 진득하게 해 보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 체력이 필요하다. 사람을 좀 많이 만나야겠다. 그동안 많..
써야 할 글이 많이 밀렸다 몸이 아프고 피로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힘든 시기가 있다. 2월 한국에서의 일정 부터 얻은 감기, 독일로 돌아와서 앓아 눕고, 회복좀 하니까 생일주간, 신나게 놀고 얻은 바이러스로 또다시 투병중인 요즘까지... 그 시기가 꽤 길게 이어졌다. 생존과 생활에 필요한 정도의 읽기와 쓰기만 하면서 살다가 이번 병가동안 책을 조금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쓰는 것이 영 안된다. 매일 짧막하게 쓰던 오년일기장은 한참 밀렸다. 지난달 글쓰기 모임의 과제도 결국 쓰지 못했다.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생각을 이어나갈 힘이 없었다. 아직 답장을 하지 못한 편지들이 많다. 그리고 이 블로그에도 글을 오랫동안 쓰지 못했다. 기운이 나지 않아서 그런데 좀 더 쉬면 괜찮아 질 수 있을까? 글을 오래 못..
인생과 죽음 엄마 기일 이틀 전에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인데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히 동창의 결혼식에서, 친했던 친구들과 만날 때 어쩌다가 함께 하기도 했었다. 대학교 다닐 때 사는 곳도 비슷해서 버스정류장이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적도 꽤 있다. 아이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도 작년 엄마 장례식에 먼 길을 와줘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가족의 장례식에 와준 사람은 기억하게 된다더니. 맞는 말이다. 슬픔이 너무 압도적일 때인데도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에 활기가 생긴다. 영정사진과 혼자 남게 되는 새벽시간에는 어쩔 수 없지만, 조문객들이 와서 만나주는 것은 사실 많은 도움이 된다. 그때 느꼈던 고마운 마음 덕분에 언젠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미니멀리즘체험, 마인드풀니스, 리추얼, … 집을 떠나서, 작은 방 한 칸에서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 열흘간 밖에 나가지 않고서 살아내는 체험은 사실 꽤나 귀중하다. 당연히 불편하고 많은 제약이 있지만, 평소에는 의식적으로 알아차릴 수 없던 것들을 관찰할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지내는 곳은 한국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도시이고, 온갖 인프라와 디지털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다. 덕분에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없고 오히려 독일 우리 집에 살고 있을 때보다 그때 그때 욕구에 따라 골라서 주문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넓다. 지금 지내는 공간의 크기는 독일에서 지내던 곳과 숫자로 비교하기도 민망할 만큼 작다. 내가 혼자서 작업실로 쓰고 있는 방 정도의 크기에 싱크대, 냉장고, 세탁기, 작은 욕실이 다 들어있다. 그러고 보면 평소에 내가 누리고 사는 것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