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기일 이틀 전에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들었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나온 친구인데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간간히 동창의 결혼식에서, 친했던 친구들과 만날 때 어쩌다가 함께 하기도 했었다. 대학교 다닐 때 사는 곳도 비슷해서 버스정류장이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적도 꽤 있다. 아이 낳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도 작년 엄마 장례식에 먼 길을 와줘서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가족의 장례식에 와준 사람은 기억하게 된다더니. 맞는 말이다. 슬픔이 너무 압도적일 때인데도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에 활기가 생긴다. 영정사진과 혼자 남게 되는 새벽시간에는 어쩔 수 없지만, 조문객들이 와서 만나주는 것은 사실 많은 도움이 된다. 그때 느꼈던 고마운 마음 덕분에 언젠가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가능한 한 가서 같이 있어주자는 가르침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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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엄마의 기일이었다. 시차적응을 아직 못해서 업무 후 잠을 청하던 새벽 3시쯤에야 겨우 잠들었는데, 6시에 깼다. 작년과 똑같았다. 엄마가 위독하시단 아빠 연락을 받고 바로 다음날 비행기로 한국에 왔었다. 자가격리를 하는 도중에 새벽에 온 전화를 받고서 마음이 철렁하고 너무 무서웠다. 그때도 6시경이었다. 굉장히 피곤했는데 세 시간도 채 못 자고 왜 벌써 잠이 깼을까 생각했다가 작년과 같은 시각임을 깨닫고 잠시 어지럼증을 느끼며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이유가 있는 걸까. 아빠도 지금 깨어 계실까?
한 시간여를 좀 더 자고 결국 일어나서 체크아웃할 준비를 했다. 잠을 설치고 피곤해서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인지 데리러 와준 동생에게 약속 시간보다 너무 빨리 왔다면 조금 짜증을 냈다. 동생은 아빠가 가자고 해서 온 거지 약속 시각은 모르고 있었는데, 억울하지만 참는 표정을 보고 미안해졌다. 엄마 납골당까지 동생이 운전했는데 워낙 길눈이 좋은 아이지만 네비 없이 척척 가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아빠는 지난 일 년간 거의 매주 엄마를 보러 가고 꽃을 붙여놓고 하셨다. 종종 동생도 함께 갔었으니까 당연히 길을 잘 알겠지. 내가 없는 시간을 지켜주는 동생의 존재가 고마웠다.
납골당을 다녀와서 아빠랑 장을 보고 월드컵공원 산책을 했다. 아빠가 엄마를 휠체어에 태우고 지나가던 길을 알려주셨다. 월드컵공원 관리팀에 일할 때 매점에서 퇴근길에 매점 노상 테이블에서 무조건 생맥주를 드셨다는 얘기도 해주셨다. 더운 날엔 일하다가도 마셨다고한다. 키오스크 있는 공원에서 일하는 것 꽤 좋을 것 같다. 근데 이제는 더 이상 생맥주를 팔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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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면조의 생일이기도 하다. 참 기막힌 우연들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날이 남편의 생일이라니. 그래서 우린 도어투도어 16시간여 거리를 떨어져 이 날을 보낸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둘이서 같이 올 수 있다면 좋겠다. 늘 번갈아 가면서 왔으니 마지막으로 둘이서 같이 한국에 있었던 적도 벌써 되게 오래전이다. 둘이 오면 만나야 할 사람이 훨씬 더 늘어나서 되게 바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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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엄마와 있던 일화를 하나 더 말씀해 주셨다. 남동생이 태어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아빠가 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들은 내가 겪었던 엄마에 대한 기억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엄마를 좀 무서워했고 나랑 잘 안 맞는다 생각했기 때문에 살면서 엄마의 좋은 점을 많이 못 봤던 것 같다. 그래도 아빠는 그렇게 싸워놓고도 좋은 점을 많이 기억하고 계신다. 같은 시절을 살아온 또래로서 반평생을 곁에서 지켜봐 온 인생 파트너의 쓸모랄까. 아무튼 대충의 내용은 엄마가 성심성의(오지랖)껏 도와준 집 나온 아주머니가 사실 바람난 애인이 있던 거였고, 남겨두고 간 두 자식도 엄마가 맨날 챙겨다 나랑 같이 학원 다니게 하고 나 밥 줄 때 같이 밥 챙겨 먹이고 했는데, 그 남편이 엄마를 엄청 욕하고 원망했다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스토리였지만 열심히 엄마 편을 들었다.
오늘 새벽 6시에 깨서 엄마 임종일을 생각했다 했더니, 그 날의 일을 다시 얘기해주셨다. 작년에는 엄마의 상태 변화 위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오늘은 그때 아빠가 자고 있었고, 간호사가 네시쯤 깨웠고, 침대를 어디로 옮겼고 등등 주변과 아빠에게 있던 일을 중심으로 묘사하셨다.
엄마는 늘 본인의 사주상 초중장년에 고생을 많이 하다가 말년에 다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희망차게 말씀하셨었다. 그 얘기를 하고 둘이서 한숨을 팍팍 쉬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하다가 아빠 집 근처에 잡은 에어비엔비 방으로 자러 왔다.
문득 어제 추운날 힘들게 발인을 끝내고 혼자서 슬퍼하고 있을 친구가 떠올라 연락을 했다.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서 안쓰러웠다. 겪지 않으면 몰랐을 거야. 근데 너도 벌써 알았네. 그래도 기억을 끄집어내고 말을 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으니까 친구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 감히 조언도 얹었다. 뭐 다 생각한다는 뜻이지.
내 인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죽음은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까? 정말 알 수가 없어서 상상밖에 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