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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책읽기에 대한 생애주기적 변화, 2021년에 읽은 책들

책 읽기 좋은 창가. 하이쭝 옆이라 따뜻하고, 읽다가 정원을 바라보며 눈을 쉴 수도 있다. 음악을 바꾸고 싶으면 바로 씨디를 바꿀 수도 있다.

 

아주 어릴 때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 내가 눈이 나빠진 원인이 자야 할 때 안 자고 스탠드를 켜놓고 어두운 상태로 책을 봐서라는 엄마의 주장이 떠오른다. 내 침대 옆에 긴 책장이 있었는데 거기에 빽빽이 꽂힌 책들을 다 읽고, 좋아하는 건 종이가 닳을 만큼 읽고 또 읽었다. 걸어서 30분을 넘게 가야 하고 산꼭대기에 있었지만 도서관에 가는 것도 참 좋아했고, 대여점이 동네마다 생긴 뒤로는 만화책과 장르소설도 많이 빌려봤다. 그런데 입시를 하게 되면서부터 책을 안 읽게 되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커다란 도서관이 수업하는 곳 가까이 있다 보니 종종 전공과 관련된 책을 빌리는 김에 소설도 한두 권씩 빌려봤던 것 같다. 사서 보기엔 부담스러운 판타지 전집 등을 이때 많이 봤고 하루키에 푹 빠져 살았다. 회사에 다니게 되고부터는 다시 책을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영화관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다른 미디어로 이야기를 접하기가 쉽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 읽게 된 것 같다. 한동안 책을 아예 읽지 않고 지내는 기간을 가지다가 언제부턴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하나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그 작가의 것을 (엄청나게 많더라) 하나씩 독파하게 되었다. 그것이 일종의 워밍업이 되었던지 이후로 내가 기억하는 최소 6-7년간은 책을 한 번에 한 권씩 꾸준하게 사서 읽고 있다. 읽는 속도도 워낙 느리고 매일 읽지도 않기 때문에 잊어버린 내용을 복습하러 다시 돌아가기도 해서 엄청나게 더디다. 한 권을 사면 어지간해서는 그걸 다 읽고서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른다.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편은 아니어서 다음 볼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간혹 다음에 읽고 싶은 책을 고르기 어려울 경우 한동안 아무것도 읽지 않기도 한다. 작년에 읽은 책들에 대한 짧은 감상을 적어둔 기록을 보니 요즘에는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고 있다. 기록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완전히 다 읽은 책에 대해서만 하고 있지만 예외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전공분야에 대해 팔로 업하기 위해 읽은 책은 거의 포함시키지 않는다. 오디오북은 종이에 비해 제약이 많아서 선호하지 않지만 일 년에 한 권 정도는 오디오북으로 듣기도 한다. 올 해는 작년보다 좀 더 많이 읽고 싶다. 책을 읽으면 작가와 깊은 대화를 하는 기분이어서 좋다. 가끔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입력되는 수많은 파편의 정보로부터 뇌를 피신시켜서 고요한 곳에서 신뢰하는 사람과 퀄리티 타임을 가지는 것 같은 휴식의 느낌마저 든다.

 

2021년에 읽은 

 

1

  •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현실적인 환상소설. 심시선씨는 히어로 같았다. 표현력이 탁월해서 읽는 내내 개운했다.

2

  • 다정한 구원 - 임경선
    리스본 여행기에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사색과 감정을 버무려  에세이. 선배로부터 조언을 조금 얻어감.
  • 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너무 재미있었다. SF 단편집. 환경에 대한 애정과 염려가 가득 담긴 심지 굳은 세계관이 멋있다. 인물들간의 관계가 담백하면서 마음을 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3

  • 내일의  1, 2 - 조던 김장섭
    부동산은 서울에 재개발 가치 있는  아님 투자가 의미 없음. 미국주식 시가 총액 1 사고 나스닥이 -3% 한달에네  찍으면 공황이니까  빼도 미국채권으로 돌리라 . 중미전쟁 지금 한창이니 중국화 뚝뚝 떨어지면 지켜보라함. 근데... 정말?

4

  • 고양이를 버리다 - 무라카미 하루키
    돌아가시고 없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뒤늦게 써내려간 심경에 공감한다. 역사를 되짚어 가다 깨닫는 현실의 아슬아슬함에도 공감했다. 나는 엄마에 대해서 이런 문장을   있을까?
  •  위에 씌어진 - 최승자 시인
    시집을 통채로  읽어본 경험은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최초적 감각이었다. 그리고 시인이랑너무 긴밀하게 교감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정신병동에서  시들이라던데. 이해와 공감을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인의 대상을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동시에 존재하는 아슬아슬한 기분이 느껴졌다.

5

  • Escape from the rat race - downshifting to a richer life - Nicholas Corder
    그냥 나를 묘사해둔 책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나 추구하는 바에 대해서는.

6

  • 미드 센추리 모던 - 프랜시스 엠블러
  • 일인칭 단수 -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헛갈리는 단편 소설집. 환상적인 부분을 걷어내면 그동안 작가의 다른 에세이에서   이야기도 섞여있고  지어낸 거짓말 모음집 같다. 그런데 에세이도 사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 된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소설이 아닐까.

7

  • 우울할  뇌과학 - 앨릭스 코브
    도움 되는 정보가 너무나 많다. 집중 안될 땐 뇌과학이란 책은 어디 없을까.

10

  • 춥고 더운 우리집 - 공선옥
    소탈하고 정직한 수필들. 가난하게 살아온 한국인의 가슴속에 깝깝하게 응어리진 심정을 글로 풀면 이렇구나.
  • 찾을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어슐러 K. 르귄 (중간에 서너 작품에 대한 비평은 건너뜀)
    솔직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대가의 비평, 너무 멋짐. 또한 마지막에 글쓰기 숙박을 하며 적은 읽기가 너무 재밌었다.

11

  • 타임머신 - H. G. 웰스
    1800
    년대의 소설이라니 너무나 화들짝 놀랐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관계를 풍자하는 것은 여전히 공감이 되었고, 너무너무 멋진 상상력이다.

12

  • 모래알만  진실이라도 - 박완서
     어마어마하게 솔직한,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너무도 거침없이  여자의 수필들. 너무 개운하고 낯뜨겁고 그러면서도 되게 타당한 까발림을 스스로를 향해, 스스로를 위해   있다니. 대작가는 역시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