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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삶은 요를처럼

발코니에서 해 쬐며 하품 하는 요를레이

오늘은 요를레이의 열 번째 생일이다. 요를과 함께 산지 벌써 십 년이 가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감격스럽다. 내 삶 20대 중반에 만나서 내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는 아마도 요를일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 전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만나서 나랑 살게 된 이 녀석 덕분에 그동안 상상도 못 했던 여러 가지 삶의 단면들을 겪고 배울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요를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는지 모른다. 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보다 깊은 자괴감과 책임에 대한 무거움을 느낀 사건이 있었나 싶다. 다행히 이유를 모른 채로 아팠던 요를은 이유를 모른 채로 나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면서 내 뒤에서 고래고래 짖고 있다. 요를은 하얀 털에 파란 눈을 가진 선천성 난청 유전자를 가진 아인데, 그 사실도 1-2주 지나서야 깨달았다. 처음 데려 오는 날 큰 소리로 음악 트는 카페에 잠깐 들른 적 있었는데, 그때 아기에겐 너무 큰 소리를 들어서 귀가 먼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아니고 그냥 원래 못 듣는 아이다. 귀도 쪼글쪼글 접혀 있어서 어디 아픈 걸까 걱정했는데 그냥 혼혈이라 그런 것 같다. 정말이지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얘를 맡게 되었구나. 하지만 요를은 그 어떤 생명체보다 당당하고 고귀하고 자연스럽게 나와 면조를 집사로 키웠다. 아마도 묘생 1회 차는 아닐 것이다. 집사 고르는 안목도 꽤 좋은 놈 같다.

 

살면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 곤란함을 겪었던 적이 많은데, 왜냐하면 인간마다 존경하는 부분도 있고 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데 어느 한 명을 집어서 존경한다고 대답하기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십 년간 나는 마음 깊이 요를의 모든 면을 존경해왔다. '가장 존경하는 존재'라고 물으면 고민 없이 요를레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닮고 싶은 세 가지 포인트를 써보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 철저한 위생관념, 부지런한 털 관리

요를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굉장히 규칙적이다. 아기 때부터 청소년 시기를 거쳐 성묘에서 노묘로 넘어가는 시기인 지금까지도 하루의 대부분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에 드러누워서 보낸다. 그러나 털 관리만큼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식사나 간식 후 반드시 혀로 몸의 구석구석을 싹싹 빗고 핥아 몸단장을 하는데, 모든 고양이가 그런 줄 알았지만 요를 만큼 부지런하고 철저하게 하는 고양이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화장실도 이용 후 야무지게 묻는다. 화장실 청소를 하루라도 게을리하면 엄청난 호통을 듣는다. 산들바람이 부는 날 일광욕하는 것을 좋아해서, 오늘처럼 날씨가 좋은 날에는 발코니로 나가는 문을 열라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명령한다. 햇빛 샤워를 마친 요를 에게선 햇빛에 널어 말린 빨래 같은 좋은 냄새가 난다. 또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늑대도 아닌데 밤에 엄청 시끄럽게 소리 지르고 다닌다. 이 것도 나름대로 얘의 규칙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꾸준한 관리와 규칙적인 생활은 동물을 건강하게 하니까 좋다고 본다. 요를은 식욕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지 않는데, 물이나 음식을 주면 유심히 냄새를 맡고서 먹을지 말지 판단한다. 신선도에 엄청 까다롭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나도 이 것을 본받아 모든 음식의 냄새를 먼저 유심히 맡고 먹을지 말지 판단하는데, 배앓이를 자주 하던 나에게 아주 도움이 되는 습관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남 신경 안 쓰고 자기 자신의 욕구와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

물론 고양이니까 자기 멋대로 막 행동해도 예쁜 거겠지만, 내 경우는 그럴 필요 없을 때조차도 타인과 있을 때는 남을 위주로 행동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행위의 결과, 즉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냐 아니었냐 와는 관계없이, 타인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엄청 지친다. 가령 누군가와 함께 산책을 할 경우 산책로의 자연과 바람, 운동의 상쾌함 등은 10%도 즐기지 못하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느끼거나 생각할지 등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때로는 여행이나 문화 활동을 할 때 혼자 하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요를도 고양이답게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다른 고양이나 사람이 접근하지 않아야 하는 곳으로 숨어버리는데, 그렇지 않을 때에도 굉장히 이완되어 있다. 같은 공간 안에 사람이 몇 명이 있건 거실 한복판에 드러눕고 싶으면 발라당 누워버린다. 그 상태로 아무도 건들지 않으면 쿨쿨 잠도 잘 잔다. 대중교통 안에서 잠드는 것조차 남이 신경 쓰여서 못하는 나로서는 정말 닮고 싶은 무던함이다.

인사성이 바르다

내가 요를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요를에 대해서 소개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얘는 인사성 바른 깡패예요." 처음 보는 사람을 경계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편이고, 그 사람이 고양이에게 친숙해서 손가락 냄새를 맡게 해 주거나 눈인사를 할 경우 인사도 잘 받아준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자기 판단과 그때의 기분에 따라 갑자기 버럭 화를 내거나 때리기도 한다. 요를한테 하도 깨물리고 맞아서 내 손등과 팔에는 늘 상처가 있다. 다혈질이고 폭력을 좋아한다. 하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땡그란 눈으로 눈인사는 늘 깜빡 깜빡이며 잘해준다. 다른 공간에 한동안 있다가 다시 만날 경우 소리 내서 반겨준다. 하지만 건드는 건 조심해야 한다. 절대 얕잡아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다가가기 어렵지 않은 열린 자세. 인사성 바르고 당당한 모습을 닮고 싶다.

 

나그네는 종종 우리 집엔 고양이가 세 마리 산다고 말한다. 요를이 있는 곳에 나와 노릉이 가서 함께 드러누워 있는 적이 많기 때문이다. 아마 노릉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요를이 가서 있고 싶어 하는 곳에 나도 함께 가서 앉아있으면 그때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를 만큼 멋진 고양이는 세상에 많다는 걸 알지만, 내게 있어 최고로 멋지고 우러러 보이는 존재는 앞으로도 쭉 요를레이일 것이다. 사랑과 존경을 담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