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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집중력 장애랑 살아가기

산책과 러닝을 하는 동네 와인밭 풍경

내 집중력 장애 문제를 인식한 것은 엄청 오래전이다.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산만하다'라는 표현이 생활기록부에 종종 등장할 만큼 산만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진득하게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잘했던 시기는 입시미술 이후로 없었던 것 같다. 입시미술은 4시간 만에 주어진 과제를 완성된 그림으로 그려내야 해서 최소한 4시간은 연속해서 집중해야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시시때때로 전화가 오거나 동료가 질문을 해서 흐름이 끊기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내 집중력이 문제라고 인식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다시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와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유명한 뽀모도로 타이머를 이용해서 25분 집중, 5분 휴식 같은 방법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25분을 한 곳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그리고 5분 휴식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지나 궁금할 만큼 1분 미만만 쉬어도 마음이 조급해져서 다시 시작하게 되거나, 아니면 아예 25분 보다 더 길게 쉬어버리거나 한다. 몰입의 흐름이 끊어졌을 때 다시 집중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때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느 날 컨디션이 좋고 몰입이 잘 되는 때를 만나면 몇 시간이고 매달려서 일을 끝내버리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북목, 골반과 허리 문제, 터널 증후군 같은 신체장애까지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완전 점입가경이다.

 

이 것이 더 심해졌다고 느낀 것은 판데믹이 시작되고서다. 록다운 시기에는 정말 현관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보내는 주가 흔했을 만큼 외출을 하지 않았다. 집 안이나 발코니에서 운동도 하고 바깥공기도 쐬기는 했지만, 자주 나가지 않다 보니 양말과 신발을 찾아 신는 것부터가 귀찮은 한 과정으로 느껴질 만큼 외출을 기피하게 되었다. 엄마의 병세가 심해지고 심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우울감이 찾아왔고, 여러 가지 내가 가진 미묘했던 문제들이 진짜 문제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였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전 아파트에서 무서운 사건을 경험하면서 대인기피가 더 심해졌고, 우울감과 무기력감은 특별할 것 없는 내 모습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환경도 노력해서 많이 바꿨고, 운동이나 산책 등 의식적으로 나아지려는 노력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집중력 문제는 여전하다. 심지어 코로나에 걸리고 나은 후 한동안 지속되었던 일명 브레인 포그 증상 - 멍하고, 집중을 못하고, 자꾸 사소한 것들을 까먹거나 뭘 하려고 했는지 까먹는 증상 - 마저 겪으면서 집중력 장애조차 완전히 나와 혼연일체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하이퍼 포커스와 흡사한 몰입 모드가 발동되지 않을 때의 나는 20분 이상 집중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오랜 관찰을 통해 배웠다. 그래서 회의도, 독서도, 산책도, 달리기도, 요가도 2-30분 정도로 계획을 잡아둔다. 물론 독서는 20분을 채워서 집중해서 한 적이 별로 없다. 자꾸 주의를 분산시키는 소셜미디어를 차단해보는 것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내가 하는 소셜미디어가 워낙 많아서 모든 것을 차단할 수는 없었고, 한 곳에서의 중독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예: 트위터 -> 링크드인) 현상만 경험했다. 결국 어차피 길게 집중 못할 거, 한 텀에 할 일의 목표치를 적게 잡는 수밖에 없었고 이 방법으로 겨우겨우 회사와 일상생활의 타스크들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아, 자주 까먹는 기억력을 보조하기 위해 시간 단위로 하루를 계획할 수 있는 플래너와 더불어 포스트잇을 애용하고 있다. 포스트잇 한 장 당 오늘 안에 반드시 끝내야 할 작은 단위의 일 하나를 써두고, 그 아래 좀 더 세분화 한 행위 단위의 투두 리스트를 써둔다. 부작용이 있다면, 오늘 당장 해야 하는 급한 일이 없는 날은 포스트잇이 없고, 따라서 하루 종일 우왕좌왕 초산만 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 조차 되지 않는 시기도 당연히 많다. 몸이 피곤하거나, 한동안 대충 먹는 식생활을 했거나, 감정적 소모가 많은 때를 지났거나 하면 이 모든게 더 어려워진다. 그럴 때는 사실 잘 쉬고 잘 먹고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무기력한 내가 스스로 챙기는 것이 어렵다. 그나마 에너지를 덜 쓰고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은 산책, 외식 정도여서 이 것을 (귀찮지만) 일상에 끼워 넣으려고 노력한다. 또한 예전에는 운동 프로그램을 30분 전후로 찾아서 따라 하는 것에 그쳤다면, 지난 두어 달간은 주 2회 정도 강도 있는 운동을 할 때 땀방울이 흐를 만큼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이 아니지만 여름의 도움을 받아서 그럭저럭 매주 할당량인 2회는 달성중이다. 30분 이상 운동을 하기 싫은 나로서는 땀방울을 위해 강도를 높이게 되고, 혹시나 30분 안에 결판이 나지 않을 경우 집중력 지속시간을 좀 더 늘릴 수 있는 효과도 있어서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땀 흘리는 운동을 하고 난 뒤엔 오히려 활력이 생기는데 그래서 요리나 다른 더 귀찮은 것도 할 마음이 들고, 실행이 가능해짐을 발견했다.

 

사계절 내내 기분과 컨디션을 주의깊게 살피고 관리하는 노력에 쓰이는 에너지가 해가 갈수록 많이 요구된다. 하지만 원래 이런 거고, 그동안은 젊은 세포들의 도움으로 날로 먹었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덜 억울하다. 오늘은 서늘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어제 달리기를 했으니 오늘은 굳이 안 해도 되지만 뭔가 강도 높은 다른 운동을 하고 싶어지는 날씨다. 그리고 저녁에는 떡볶이 해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