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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둘이 살기

산책 중에 찍은 그림자 사진. 내 손이 더 크다.

나의 룸메이트(a.k.a. 나그네/면조)와 같이 산 지 10년이 넘었고, 두 사람의 학교나 근무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2인 가구의 생활방식을 경험했다. 분당에 신혼집을 구해서 살던 첫 해엔 한 명은 재택근무자, 나는 서울로 출퇴근을 했고, 곧이어 둘 다 출퇴근을 하며 저녁에만 만나는 삶을 살다가, 둘 다 재택근무자가 되어 동네의 편리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삶을 즐기다가 독일로 이사를 왔다. 독일에서 한동안은 학교나 어학원을 다니느라 둘 다 바쁘게 지내다가 내가 졸업하고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는 직장을 구한 이후에는 나는 쭉 재택러로, 면조는 쭈욱 어딘가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3년 정도는 학교가 뮌헨 근처에 있는 면조의 기숙사를 따로 구해서 한 명은 펜들러(부주거지에서 지내다가 쉬는 날에는 주주거지로 오는 사람을 뜻하는 독일어)로 지내기도 했다. 지금은 꽤 오랜만에 둘이서 완전히 함께 사는 형태가 되었다. 물론 면조는 출퇴근을 하지만 직장이 가깝고, 근무 시간이 탄력적이어서 최근 들어 같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많아졌다. 하지만 역시 나도 주중에는 일과 이직활동을 하느라 스스로를 위해 깨어 있는 시간이 적기 때문에 결국 저녁식사 시간에야 둘이서 만나는 셈이다. 아무튼 저녁식사를 같이 할 사람이 거의 매일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 그래서인지 혼자 먹는 것이 익숙해졌을 때에 비해서 체중이 조금 늘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래도 십년이나 같이 살면서 손발을 맞춰온 파트너가 있는 것은 역시 좋다. 주말 오전에 함께 청소하거나 정원 정리를 할 때 정말 기분이 좋다. 빨리 끝내고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결과가 마음에 든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나는 계단과 화장실들과 주방을 맡을게, 바닥과 천가구 털 청소와 지하실은 누가 할래?' 이런 식으로 구역만 정하면 둘 다 만족할만한 기준으로 알아서 구역을 책임지고 깔끔한 상태로 돌려놓는다. 정원의 경우 둘이서 같이 공공의 적인 덩굴 잡초를 제거하다 보면 연대의식까지 생긴다. 식사는 장보기, 메뉴 정하기+요리, 차리기, 뒷정리하기를 항목별로 분담한다. 빨래는 딱히 정한 규칙은 없지만 알아서 번갈아가면서 잘 돌리고 널고 개고 옷장에 정리해 넣고 있다. 같이 사는 것의 아름다움은 가사일의 협동에서 나오는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최근에 이직처를 찾는 기준을 조금 넓혀서 큰 도시로 혼자 이사를 나가는 것까지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있다. 현실화 된다면 아무래도 우리의 삶이 또 크게 변하겠지. 사실 사는 지역에 뭐 있는 게 없어서 문명을 누리려면 차를 끌고 멀리 가야 한다는 것이 불편하기는 한데,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 사는 경험은 생각보다 더 환상적이고 마음에 들어서 이 상태가 바뀌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반 정도 있다. 나머지 절반은 아무래도 이 시골에 묻혀 살다 보면 내 커리어 성장이 제한된다는 것을 걱정하는 마음이다. 풀리모트가 가능한 포지션도 종종 있고 하니까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도시에 살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30% 정도는 있다. 주거 환경의 변화도 있겠지만 또다시 주말부부가 되는 것, 이번에는 내가 고양이와 가족이 있는 주주거지를 두고 유배(?)를 가야 한다는 점이 또 변수다. 지금으로선 일단 결정되고 나서, 일 해보고 나서, 살아보고 나서 결정하면 된다는 나이브한 마음이다. 뭐가 나에게 더 좋고, 맞다는 확신은 전혀 가질 수 없다. 고민할 것이 많아서 심심할 틈은 없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