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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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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냄새가 빠지고 아픔에는 냄새가 있다. 모든 아픔마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이 가져오는 냄새가 있다. 내 경우는 감기가 걸릴 것 같으면 코 안쪽 깊숙한 곳에서 평소와 다른 냄새가 감지된다. 그걸 나는 멋대로 감기 냄새라고 불렀다. 엄마의 병에도 냄새가 있었다. 엄마의 경우는 감기 냄새처럼 구체적인 병의 냄새는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감기 냄새는 당사자인 나만 맡을 수 있는 것이었으니 엄마도 뭔가를 맡으셨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으로서 맡을 수 있는 냄새는 아니었다. 그보다 오랜 병환과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던 엄마가 병으로 사회활동이 제한됨에 따라 하나씩 생기는 냄새가 있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고, 한 때는 부끄럽기도 했던 냄새는 지층 집의 곰팡이 냄새였다. 살던 동네가 재개발을 하게 되어 전셋집을 전전했었는데, ..
우리아빠 아빠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를 잃었지만 아빠는 삼십 년을 넘게 함께한 삶의 파트너를 잃으셨다. 그 슬픔을 나는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아빠는 마지막까지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셨다. 주변에 우리 사정을 아는 모두가 우러러보았고, 엄마의 엄마와 자매들 모두 아빠에게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만을 표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가족으로서 나눠져야 할 짐이 있었을 텐데도 외국에 나가 살고 있기 때문에, 학업 때문에, 직장일이 바쁘기 때문에 등 여러 가지 핑계로 무거운 짐을 아빠에게만 들게 했다는 죄책감이 있다. 여러 사람 몫의 짐을 내팽개치긴커녕 겸허하게 받아들이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기를 격려하시면서도 엄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아빠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크다. 2015년에 진단을..
엄마의 말뚝(을 읽기 전에) 아빠가 추천한 알릴레오라는 프로그램을 유투브에서 몇 개 봤다. 책을 소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상 깊었던 내용을 언급하면서 토론하는 구성이어서 내가 굳이 그 책의 독자가 아니어도 보는 재미가 더 있길래 몇 편 골라봤다. 그중에 박완서 작가의 엄마의 말뚝을 두 편에 걸쳐서 다룬 것을 보고 어제와 그제 한 편씩 봤다. 박완서 작가님이 타계한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방송국 채널에서 유투브에 오래전 인터뷰나 티비 출연 방송분을 편집해서 올렸길래 몇 개 재미있게 보기도 했다. 엄마의 말뚝이 자전적인 소설이고 개성 근처에서 서울로 굳이 나와서 딸을 교육시켰던 이상하고 대단한 엄마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읽어봐야지 했는데 알릴레오에서 다룬 것을 보고 당장 결제해서 전자책으로 다운로드하였다. 토론..
옥상 구경하기 눈이 온다. 지금 있는 곳은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망이 좋다. 큰 창으로 날씨와 시각의 변화를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서북향이어서 해질녘 따뜻한 햇빛이 저녁까지 머문다. 강 넘어 바라보는 노을도 근사하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점은 여러 건물들의 옥상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기를 다 보낸 오래 살았던 엄마아빠의 첫 아파트는 15층에 있었다. 바로 위에는 옥상이었다. 당시에는 옥상 문을 잠궈두지 않아서 옥상을 통해서 옆 동의 친구집에 간편하게 놀러 갈 수도 있었다. 난 옥상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의 장녀답게 집에서 가장 작은 현관옆 방이 내 방이었는데, 넓은 옥상에는 늘 나 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자유로웠다. 그래서 난 옥상이 정말 좋다. 면조랑 사귀게 되었을 때..
격리의 격리의 격리 지난번에 한국에 다녀가며 자가격리 체험을 해 본 지 채 4개월이 되지 못하여 다시 한국에 왔고, 다시 자가격리 중이다. 중간에 장례를 위해 임시 격리 해제 시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독일에서부터 쭈욱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14일간은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지 못하고, 배달음식의 은혜를 받고 있고, 또 오늘까지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겨우내 휴가를 쓰지 않고 크리스마스만 보며 버텼었다. 1월에도 일을 열심히 했다. 일 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 일을 안 하고 있으니 몸은 편하지만 솔직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일을 안하면 하루가 정말 길다. 그렇다고 다른 많은 것을 하기엔 모자라다. 뭐든 다 그렇다. 돈을 꽤 많이 모았으니까 이제 슬슬 ㅁㅁ라도 사볼까 싶으면 내가 가진 돈은 ㅁ..
구내염이 다 나았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엄마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십이분의 일 한 해의 십이 분의 일이 지나갔다. 일 년을 열두 등분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오묘한 숫자다. 2와 3과 4와 6의 공배수. 12분의 1을 큰 소득 없이 흘려보내버린 이 시점에서 부랴부랴 2021년 첫 쿼터의 계획을 생각해본다. 몇 가지 떠오르는 계획들이 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큰 지장은 없는 일들이다. 정체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있으니까 하긴 할 거다. 그렇지만 1분기로 생각하자니 마음속 데드라인이 훅 늘어나버려서 2월과 3월이 남았으니까 아직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마음은 다시금 느긋해진다. 역시 봄이 와야 새로운 시작의 느낌이 나지, 겨울기간에는 조금 더 노곤함을 즐겨보자. 그래도 1월엔 두 번이나 눈을 봤다. 한 번은 쌓일만큼 와서 몇 년 만인지 모르게 눈길을 뽀득뽀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