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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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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한 일상 다시 믿을 수 없이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너무나 극명한 차이가 있어서 나도 놀랍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상태인 독일 생활. 마침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독일 전역이 록다운에 돌입한 때였다. 슈퍼마켓, 생필품, 약 등을 파는 가게 말고는 문을 대부분 닫았다는 이야기.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포장만 가능하다. 내가 한국에 있던 타이밍이 마침 거리두기 1단계로 가장 사람들이 활발히 생활하던 때였어서 더더욱 차이점이 와 닿는다. 돌아온 주에는 휴가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서 일주일 가량을 집안일만 조금씩 하면서 푹 쉬었다. 한 해의 마지막 휴가기 때문에 '할 것 없음'을 만끽하고자 노력했다. 판대믹으로 인해 집 안에서만 쉬면서 시간을 보내는 휴가를 누릴 수 있음은 사치스럽게 ..
삶을 위한 서울 여행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얻어가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막상 먼 길을 떠나오기 전에는 내키지 않는 무거운 마음이 더 큰데, 오고 나면 다시금 깨닫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 쌓여 있는 정을 느낀다. 내 이십 대 어드매의 삶의 배경음악과도 같았던 이상은의 '삶은 여행'이란 노래 초입부 가사가 '의미를 모를 땐 하얀 태양 바라봐 얼었던 영혼이 녹으리'라고 시작하는데, 하얀 태양이 독일에는 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끔 길을 잃는다. 한국에 와서 나를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을 만나고, 비슷비슷한 듯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몸이 태양의 온기 같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다시 또 돌아가서 '혼자 비바람 속을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태양 에너지가 충전이 되는 것이다. 가끔 독일에..
자가격리가 너무 좋다 격리 12일 차. 며칠 안 남았다. 그리고 격리가 끝나는 것이 아쉬울 만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격리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준 것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볼까 싶어서 일기장을 열었다. 드라마 진정령 듣던 대로 미친 드라마고, 심각하게 재밌었다. 출연진들의 저세상 미모가 초반의 알쏭달쏭함과 지루함을 버티게 해 준 계기가 되긴 했지만, 스토리와 극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어지간하면 추천하고 싶다. 가끔 특수효과 후처리가 너무 뜬금없을 만큼 촬영분의 퀄리티를 깎아먹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긴 하다. 단순히 퀄리티가 낮은 합성을 했다는 의미가 아닌, 누끼가 제대로 안 따여 있다던지, 크로마키가 인물의 일부를 먹었다던지... 그래도 이건 그냥 산업형 병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노력했다...
격리 삼일차 비행기에서 본 조조래빗에 좁고 어두운 다락방에 갇혀 사는 소녀가 나온다. 이걸 지금 공감하고 있다. 다행히 여긴 어둡지 않고, 그 정도로 좁지는 않다. 배달 서비스의 눈부신 발전 덕분에 배가 고프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에서 영화 세 편을 봤는데 세 편 다 너무 재밌었다. 조조래빗, 작은 아씨들 그리고 프랑스 영화 러브 리와인드. 한국에 방문했다. 도착날 포함 15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오늘이 삼일째다. 공항에서부터 굉장히 철저한 검역을 여러 단계 통과했고, 에스코트받다시피 해서 내가 예약해 둔 작은 원룸형 숙소에 있다. 긴 여행을 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시설이라 작은 주방, 냉장고, 화장실이 한 방안에 갖춰진 그야말로 원룸이다. 평소에 지내던 공간보다 확연히 작은, 사실 처음에는 약..
가을엔 여행을 한다. 나는 가을에 여행을 떠난다. 벌써 수년째 그러고 있다. 휴가라고 부를 수 없는 길고 피로한 여행을 주로 가을에 간다. 여름휴가에서 모두 돌아왔을 때, 나 하나쯤 쉬어도 많은 사람들이 업무에 익숙해져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때, 수많은 여행지가 비수기로 접어들었을 때, 아직은 낮에 해가 따뜻할 때 나는 여행을 한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 토론토, 몬트리올, 뉴욕, 도쿄, 오사카, 교토, 고베, 아와지 섬, 대만 곳곳, 방콕, 제주도 그리고 서울. 가을의 풍경으로 기억에 남은 수많은 여행지가 떠오른다. 올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여행을 해서는 안되는 가을이다. 하지만 아픈 엄마와 한 번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미루기엔 기약이 없고 엄마와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 많은 고민 끝에 결..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것들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어른이 된 이후로는 다음 달에도 내가 숨 쉬고 걸어 다니며 살아있는 것을 확실시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졌다. 계약한 회사에서 주 40시간 일하기, 집세와 각종 공과금을 잘 챙겨서 내기, 체력과 컨디션 유지를 위해 운동과 위생관리 하기, 기타 등등. 그 외에 의식 있는 시민으로서 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공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하는 행위들도 있다. 외국어 연습하기, 세계 주요 뉴스 업데이트 하기, 매력적인 외모를 갖추기 위해 방법을 연구하고 노력하기, 환경에 덜 해를 끼치는 방법을 찾아보고 실천하기, 소셜 모임에 참석하기 등. 사실 이런 것들만 해도 하루하루가 굉장히 바쁘기 때문에 그 이상의 무언가를 굳이 내게 기대하지 않아도 좋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
웨딩 그리고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더 소셜 딜레마'를 봤다. 유저의 관심을 계속 잡아두고, 더 많은 시간을 해당 플랫폼에서 보내기 위해 짜인 알고리즘과 그로 인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깊어가는 사회의 분극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였다. 사이언스 픽션처럼 만든 재연극과 각종 소셜미디어 플랫폼 제공 회사를 위해 일하거나 일했던 사람들, 그리고 몇몇 전문가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진 재미있고 자극적이고 좋은 영화였다. 나 역시도 이미 중학교에 가서부터 피씨통신을 통해 동호회 활동을 했고,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다행스럽게도 스마트폰이 나오고, 내가 어딜 가든 인터넷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은 성인이 되어 겪었지만 지금 내 상태를 보면 어려서 스마트폰을 접한 아이에 비해..
고요함의 모습을 한 행복 한 달이 넘게 일기를 쓰지 않았다. 토막글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 일기장 앞에 고요하게 앉아서 생각을 다듬어 써내려 갈 기회가 없었다. 아무래도 면조가 방학을 해서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적어졌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해도 그만큼 더 게을러졌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지진 않았다. 풀타임 근무 후 저녁식사를 위해 요리해서 치우고 나면 더이상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뭔가를 생각 할 두뇌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 그래서 운동을 가까스로 하고, 나머지 시간엔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흘려보낸다. 8월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행히 별 일이 없었다. 평일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외출도 하지 않는다. 주말에는 장을 보거나 필요한 외출을 하고, 혹시 약속이 있으면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