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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1711)
모동숲 일주일 스위치 사고 나서 현생과 동숲 안에서 바쁘게 살았다. 회사 동료 J의 휴가 동안 그 동료가 하던 일을 떠맡아하며 내 일까지 하다가 완전 번아웃이 온 뒤로 동숲이 좋은 도피처가 되어 준 것 같다.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무릉도원을 뛰어다니며 나비를 잡고, 잉어를 낚고, 여러 종류의 과일과 꽃을 심고 가꾸는 삶. 참 행복했다. 현실에서는 코로나 크라이스 이후로 더 바빠진 회사 일, 마음에 안드는 미국 동료들과의 실랑이, 휴가 간 동료의 빈자리, 그 와중에 내 프로젝트를 언제까지고 뒤로 미룰 수 없어 꾸역꾸역 진행하기 위해 아무도 알아주지도 보상해 주지도 않는 오버타임까지 너무 바빴다. 그리고 외주와 집안일까지. 피곤하고 또 피곤했다. 열심히 사는데 손에 잡히는 보상은 미미해서 많이 지친다. 좀 쉬어가는 ..
가택연금과 2020년 Q2 미뤄뒀던 가계부 정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1월 부터 3월까지의 일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가 쓰는 돈이 내 행적을 이야기 해 주는 시대였다. 3월초에 파리 여행에서 돌아오고 부터 지금까지 회사에 안나가고 장을 몰아서 보는 이른바 가택연금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1, 2월의 지출내역과 3월의 지출내역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 도시나 조금 먼 곳으로의 여행, 공연이나 영화를 보는 등의 문화생활, 외식은 완전히 없어졌고, 회사에 나가지 않으니 매주 탱크를 채우던 주유비도 대폭 줄었다. 장보는 가격은 물가상승 때문인지 아니면 몰아서 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약간 올랐다. 아무래도 1, 2월에는 면조와 내가 따로 살았었으니 각자 있는 곳에서 장봐다 해먹는 것은 덜 신나기..
발코니 농사 시작 올 해도 발코니에 두는 화분에 이것저것 재배해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심어 보았다. 씨앗은 다 얻거나, 작년에 키운 시금치, 고수에서 받은 것들로 썼다. 흙도 기존 흙에서 이끼 끼고 지저분한 윗부분 흙은 버리고, 기존 작물의 뿌리들이 어지렆게 뒤엉킨 부분을 털어내어 버리고 남은 흙을 재활용했다. 작년에 사서 쓰고 남은 흙으로 위를 덮으니 작고 큰 7개의 화분을 다 채울 수 있었다. 한 푼도 쓰지 않고 작물을 심어서 되게 뿌듯한 토, 일, 월요일이었다. 삼일에 걸쳐서 심은 것은 루꼴라, 고수, 청경채, 상추, 깻잎, 바질 그리고 파슬리다. 주말을 이렇게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어서 기쁘다. 그런데 오늘 월요일 아침에는 뭔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너무 고된 노동과 대낮에 산책을 한 뒤로 ..
그림은 엉망이지만 오늘 하루도 괜찮았어. 그나저나 근본없는 색깔, 브러시 선택이 가장 문제인 것 같다. 사실 이번에는 엊그제보다 더 딱딱한 구획을 나눠 그려보고자 한건데 오히려 더 중구난방의 느낌이다. 다음엔 좀 더 계획적으로 그려봐야지.
예전과 같은 일상, 다른 일상 그림일기를 그려보았다. 글씨를 너무 못썼다. 화면이 미끄러워서 더 잘 쓰기 어려운 것 같다. 알아볼 수 있게만을 목적으로 썼다. 아이패드도 발열이 꽤 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앱이 무거운 걸까. 여러 미디어에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없는 세계라고 한다. 다만 아무도 이전의 어떤 풍요로움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있고, 이후의 다름이 어떤 방향일지 묘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전문가가 설명한 이전과 같은 일상이 저가항공 덕분에 일 년에도 수차례씩 비행기 타고 휴가를 다니고, 대중교통을 타고 매일 출퇴근을 하고, 외식을 하고, 남은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 싸와서 냉장고 안에 처박아 두었다가 상해서 통째로 버려버리고, 하는 어떤 월급 노동자 뫄뫄 씨의 일상인지,..
아빠와 레슬리 나는 우리 아빠가 젊었을 때 매우 미남이었고, 여자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는 자화자찬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빠는 그냥 아빠고, 매일 보는 사람이고, 나랑 비슷하게 둥근 얼굴을 가진 아저씨일 뿐이었으니까. 난 내 얼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아빠 얼굴도 잘생긴 얼굴이라고 인정이 되지 않았다. 난 오히려 우리처럼 둥글지 않은, 샤프한 얼굴과 날렵한 이목구비를 잘생긴 얼굴이라고 믿었다. 장국영을 처음 본 것은 더 예전일 수도 있지만 내가 그를 그로 인식하고 본 것은 중학생 때 친구들과 함께 한 친구의 집에서 몰래 패왕별희를 봤을 때이다. 이후로 그가 나오는 영화라면 (영웅본색, 아비정전,...) 일단 기회가 되는 대로 봤던 것 같다. 장국영을 보고 처음으로 아 둥근 얼굴도 잘생겼다..
나태함 또는 불안감 오늘은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스카이프를 켜 놓고 수다를 떨면서(독일어라서 사실상 나는 거의 듣기만 하면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니 사실 나는 배고파서 미리 국수 한 사발을 한 상태여서 디저트를 먹으면서 노닥거렸다. 덕분에 아이가 있는 집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내내 초등학생 아들을 둔 동료의 배경 소리가 아이가 뛰어다니며 뭔가를 부수고 엎고 소리 지르고 노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ㅠㅠ 보다 더 어린아이와 갓난아기가 있는 다른 동료는 애들을 재워두고 뒤늦게 조인했다가 이 소중한 조용한 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며 빨래를 걷으며 ㅋㅋㅋㅋ 콜을 했다. 우리 사람 둘과 고양이 둘은 너무 외롭지도 않으면서 비교적 평화롭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 요즘에 아무래도 이..
매일매일은 못 할 지라도 루틴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조한다. 특히 요즘처럼 집 안에서만 몇 날 며칠이고 보내면서 일도 생활도 집 안에서만 하는 경우에는 더욱 중요시되는 것 같다. 나는 사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7-8년 차 칩거 전문가들과 살고 있다. 우리 요를레이와 노르망디. 얘네는 나름대로 바쁘고 알차게 하루를 보내며 그 미모는 매일매일 눈이 부시다. 내가 잘 관찰해보니 얘네는 24시간을 주기로 루틴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어느 날은 온몸 대 그루밍을 안 하고 잠만 자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우다다를 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것도 일정 사이클을 두고 반복된다. 몸이 필요로 할 때 해야 할 것을 하는 듯하다. 나는 얘들 같은 지혜와 내 몸의 상태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본능이 없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