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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십이분의 일

어느 눈오는 날의 풍경

한 해의 십이 분의 일이 지나갔다. 일 년을 열두 등분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오묘한 숫자다. 2와 3과 4와 6의 공배수. 12분의 1을 큰 소득 없이 흘려보내버린 이 시점에서 부랴부랴 2021년 첫 쿼터의 계획을 생각해본다. 몇 가지 떠오르는 계획들이 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큰 지장은 없는 일들이다. 정체된 삶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있으니까 하긴 할 거다. 그렇지만 1분기로 생각하자니 마음속 데드라인이 훅 늘어나버려서 2월과 3월이 남았으니까 아직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마음은 다시금 느긋해진다. 역시 봄이 와야 새로운 시작의 느낌이 나지, 겨울기간에는 조금 더 노곤함을 즐겨보자.

 

그래도 1월엔 두 번이나 눈을 봤다. 한 번은 쌓일만큼 와서 몇 년 만인지 모르게 눈길을 뽀득뽀득 밟으며 산책도 해보고 눈 고양이도 만들어봤다. 두 번째 온 눈은 바닥에 닿으니 녹아버렸지만 그래도 펑펑 온다는 형용사가 어울릴 만큼 탐스럽게 쏟아졌다. 오래간만에 눈 구경을 하는 아홉 살 고양이 노르망디는 아기 때 눈송이를 잡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던 것과 달리 차분하고 즐겁게 창밖을 감상했다. 내 아기 고양이에게 연륜이 느껴져서 조금 슬프기도 했다.

 

회사일을 그럭저럭 열심히 했고, 그림을 다시 그려보려고 시도를 했다. 업무 계획이랑 리서치한 내용을 어지럽게 붙여 넣기만 해 두던 노션 계정을 정리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업무와 인생에 대한 계획을 적어보기도 했다. 책은 조금 읽었고, 녹차 탐미라는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녹차를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영화를 몇 편 보았고, 드라마도 봤다. 빵은 두 번 구웠다. 말일에는 거주하는 지역의 확진자수가 10만 명당 200명 이하로 내려가서 15km 이동제한이 풀렸다. 덕분에 떨어진 쌀을 보충하러 한인마트에도 다녀왔다. 한 달 동안 의식적으로 절약을 했고, 가계부 정산 후 뿌듯한 결과를 봤다. 눈물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슬픈 때도 있었고, 대부분 고양이들 덕분이지만 웃은 적도 많았다. 주 1회 이상 하지 않던 산책을 조금 더 자주 나가기로 마음먹었고, 평균적으로 주 2회 정도로는 늘린 것 같다. 그렇지만 산책 다녀온 날에는 따로 운동을 하지 않고 넘어가기도 해서 전체적인 운동량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나가지도 뒷걸음질 치지도 않은 한 달이었다는 감상이다. 잘 자고 내일은 조금 일찍 일어나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