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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격리의 격리의 격리

지난번에 한국에 다녀가며 자가격리 체험을 해 본 지 채 4개월이 되지 못하여 다시 한국에 왔고, 다시 자가격리 중이다. 중간에 장례를 위해 임시 격리 해제 시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독일에서부터 쭈욱 격리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14일간은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지 못하고, 배달음식의 은혜를 받고 있고, 또 오늘까지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겨우내 휴가를 쓰지 않고 크리스마스만 보며 버텼었다. 1월에도 일을 열심히 했다. 일 밖에 할 것이 없었다. 그 일을 안 하고 있으니 몸은 편하지만 솔직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일을 안하면 하루가 정말 길다. 그렇다고 다른 많은 것을 하기엔 모자라다. 뭐든 다 그렇다. 돈을 꽤 많이 모았으니까 이제 슬슬 ㅁㅁ라도 사볼까 싶으면 내가 가진 돈은 ㅁㅁ를 사기엔 부족하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엄마 입원 소식을 듣고 비행기 티켓을 사고 다음날이 되기를 기다리던 때,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그저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싶어서 유튜브에서 가끔 보던 일본 주부들의 모닝 루틴 영상을 모아둔 것들을 하염없이 봤다. 5시에서 6시 사이에 다들 기상해서 15분보다 더 쪼개진 단위로 착착착 할 일을 고요히 해나가는 일본의 주부들. 하는 일들은 다 비슷하다. 블라인드를 걷고, 차나 물을 한 잔 마시고, 간단히 먼지 청소를 하고, 세수하면서 세면대를 닦고, 가족들의 도시락과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촬영을 위해서 따로 생각을 해둔 것도 있긴 하겠지만 동선과 동작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분명 아침에 이 정도는 해둬야 한다는 오랜 삶의 기준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스트를 구워 아침을 먹는 것을 보고 묘하게 위안을 받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까지 치른 지금, 그 불안한 마음은 사라졌다. 이미 현실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자리를 슬픔과 지루함이 채우고 있다. 빈소에서 밤을 새는 동안 자동으로 시차 적응이 되어버렸는지 밤이 되면 졸리고 8시간을 자고 나면 아침에 눈이 떠진다. 한국에 와서부터 안 먹던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계속 계속 배가 고프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식사를 챙겨 먹는 것도 시간을 보낼 방안 중 하나다. 시간이 많다 보니 멀티태스킹을 하지 않고 접시와 컵만 보면서 아침식사를 한다. 덕분에 그럴 때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사색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앞으로도 밥은 다른 걸 하지 않으면서 먹도록 해봐야지. 특별히 더 빨리 먹어치우게 되거나 하는 것도 아니더라.

 

나름의 루틴도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적막함을 견디지 못하고 음악을 튼다. 스포티파이에서 아무 플레이리스트를 트는데, 주로 카페 음악을 튼다. 지금 지내고 있는 숙소가 현대적이고 카페 분위기로 꾸며져 있어서 잘어울린다. 그리고 카페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니까 그 느낌만이라도 방안에 가져올 수 있으니 좋다. 곡 하나하나가 좋은 편이다. 저 아티스트들은 이렇게 자신의 피스가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음악을 틀고, 믹스커피를 4분의 1 정도만 아주 연하게 타서 식는 것을 기다리면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서 연한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앉아서 일기를 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글을 주로 아침에 쓴다. 일은 저녁에 더 잘되는데 글은 아침에야 겨우 써지는 게 신기하다. 아무래도 익숙해진 작업은 작은 반복 노동들의 집합체와도 같으니까 머리를 그다지 쓸 일이 없나 보다. 아침엔 다소 산만하지만 그래도 머리가 잘 돌아간다. 언어를 찾아내서 하고 싶었던 마음을 표현하기에 아침시간이 더 적절하다. 이후에는 식빵을 구워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방 정리나 청소를 한다. 점심을 먹게 될 시간까지 말 그대로 시간을 때운다. 요 며칠간은 바둑을 알려주는 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p5.js 에디터로 코드를 써 내려가며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는 영상을 보고 실습을 해봤다. 한두 시간 훌쩍 흘려보내기 좋은 방법들이다. 감정을 건드는 영화나 드라마는 보고 싶지 않아서, 코미디나 시트콤 정도만 몇 개 봤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대강 정해진 시간에 아침, 점심, 저녁을 먹어야 하고, 졸리지도 않은데 잠자리에 들었다가 지옥같은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불만이었던 때가 있었다. 판데믹을 겪으며 많은 것이 무너진 지금, 그 일종의 관성으로 정해진 기준이 참고가 되고 도움이 되고 있다. 식사 시간이 되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오늘은 소화가 잘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나름의 관찰 기준도 되었다. 어른이 되어 내부보단 외부에 신경 쓸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이 정도 기준은 나에게 꼭 맞지 않아도 따르는 편이 편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어른이 된 것은 좋기도 하고 여전히 버겁기도 하다.

 

내일부터는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적어도 밥때까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은 안 해도 돼서 좋다. 갑작스러운 부재를 기꺼이 장려해주고 내 몫의 일을 나눠서 해 준 동료들에게 고맙단 인사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은 하루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