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1704)
올 해는 정말 많은 실패를 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우울감에 빠져있던 올초까지와는 달리 못하는 많은 것에 도전했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실패)를 통해 많이 배웠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반복함을 통해서 배운 점이 많다. 첫 번째는 어떤 시도를 한 번에 성공하면 배우는 게 너무 적다는 것이다. 실패를 하면 한 번 더 시도할 이유가 생기고, 다음 시도는 더 괜찮길 바라니까 지난 과정을 분석하게 된다. 실제로 사워도우 빵 같은 경우는 여태껏 네 번의 실패를 거치는 동안 점점 나은 결과물이 되어왔다. 지금 다섯 번째 반죽을 하고 있는데 이 것도 완전한 성공은 어렵겠지만 지난 네 번째보다는 분명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되게 어려웠던 라미네이팅이나 프리쉐이핑 기술이 많이 늘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 기술은 분명히 조금..
아침형은 못되지만 새해를 기점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내 생각에는 12월쯤이 그런 결심을 할 마음이 설렁설렁 드는 시기인 것 같다. 여름-가을 동안 외부 활동도 많이 하고, 성찰 같은 것을 할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았다면 날이 추워진지 한 달 정도 된 이 시점에는 슬슬 몸과 머리가 심심해지는 거다. 다만 뭔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서, 그걸 바로 실행에 옮기기에는 연말이라 약속도 많고 바쁘다 보니 다들 1월 이후로 미루고, 그래서 1월부터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숫자와 함께 뭔가 시작하는 기분을 즐기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뭘 시작하고 싶냐면, 몇 번째 시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고 싶다. 아무래도 나는 체질, 유전자, 그동안의 습관, 커피를 즐기는 식성 ..
Stutz, 블랙프라이데이, 마스토돈 그리고 보디빌딩 Stutz 넷플릭스 발 작품으로, 인상 깊게 본 영화 '머니볼'을 감독한 조나 힐이 자신의 상담심리사인 필 스투츠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최근에 역시나 넷플릭스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1970년대 초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흑백으로 찍은 영화를 인상 깊게 봤는데, 이 다큐멘터리도 커버가 흑백이길래 무심코 틀었던 것 같다. 조나 힐 감독과 그의 테라피스트인 필이 나와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머니볼이 저렇게 어린 감독이 찍은 영화였구나 생각하다가, 필이 파킨슨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환자가 자신의 상담심리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는다는 컨셉에서 선한 의지력을 느꼈고, 그렇게 끝까지 홀린 듯이 다 봤다. 다 보고 나서는 경외의 마음에 저절로 기립박수를 (...) 혼자 있는 방에서 쳤다. 영화의 ..
연말까지 바쁘게 굴러가는 11월 휴가를 다녀온 뒤로 면접을 하나 봤고, 주 3회 정도 헬스를 다니고 있고, 백신 맞으러 사무실도 다녀왔고, 주말마다 여기저기 놀러 다니거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운동을 시작한 덕분에 내 기준에서는 꽤 바쁜 일정들을 군말 없이 소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주는 특히 바쁘다. 바쁜 한 주를 위한 마음다짐이라도 필요한 것 같아서 일기라도 써보려 한다. 사실 이 정도 일정은 한국에서 살던 때에 비하면 오히려 한가한 축에 속하는데도 이번 주에는 세 번이나 나를 평가받아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어서 더 마음의 부담이 큰 것 같다. 월요일에는 2차 면접을 봤고 3차도 보게 되어서 포트폴리오 발표 준비를 업무 전후 틈틈이 해야 한다. 화요일인 오늘은 새로운 부서장이 마침 독일에 방문 중이라 만나서 얼굴도장 찍으러 가..
독일에서 출발해서 이탈리아 캄파냐 지역까지 간 11간의 로드트립 이 글은 단순한 일기일 뿐 여행기나 정보를 제공하는 글이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10월 첫 2주의 대부분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요약하고 싶다. 집에서부터 출발해서 총 4000km가 몇 미터 모자라게 운전을 했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 도착해서 전부터 보고 싶었던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을 하나 보고, 베네치아 근처에서 하룻밤을 잤다. 하루 만에 거의 900km를 운전했으니 첫날 운전을 가장 많이 했다. 물론 운전은 면조가 한 70% 이상 했고, 고속도로나 지루한 길을 운전해도 졸리지 않는 내가 피곤한 시간만 담당했다. 이탈리아 시내운전은 마치 서울의 복잡한 도심과 비슷한 느낌인데 독일에서만 운전하며 살다 보니 적응이 잘 안 되어서 어지간하면 면조가 운전했..
계절이 바뀌고 휴가를 앞둔 나날 9월이 되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벌써 구월이 다 지나갔다. 집이 너무 추워서 난방을 켠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난방을 안 켠 거실은 실내온도가 17-19도 정도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실내에서 입는 겉옷을 두 겹 겹쳐 입어야 그나마 덜 춥게 식사를 할 수 있다. 샤워실도 너무 추워서 샤워 전에는 꼭 유산소 운동을 한다. 한 번도 스스로 산 적 없던 전기장판을 하나 샀다. 가격이 싸지도 않은데 너무나 싸구려 같은 재질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열선으로 덥히는 기능이 있는 깔개가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것이 구대륙에서의 삶이다. 계절이 바뀌면 체크리스트처럼 하나씩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있다. 지난 주말은 아마도 8월 이후 처음으로 약속 없이 보낸 주말이었는데, 덕분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죽음을 택하는 이유 며칠 동안에 두 유명인의 서로 연관되지 않은 죽음을 미디어를 통해 접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 영국의 여왕은 본인만큼 장수중인 군주제의 보호 하에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장 뤽 고다르의 죽음은 (91세라는 적지 않은 향년을 생각하더라도) 뜻밖이었다. 그 방식이 스스로 선택한 associated suicide 이기 때문이다. 또 마침 타이밍이 고다르의 부고 기사를 접하기 바로 전에 오마이뉴스의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대한 짧막한 글을 읽은 뒤였다. 고다르가 죽기로 결심한 이유는 '지쳐서'라고 했다. 이 말이 맘에 묵직하게 남았다.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멋진 삶이었길래 91세가 되도록 지치지 않았을까, 지칠 만큼 지치고 주도적인 죽음을 택할 의지는 남아 있는 ..
삶은 요를처럼 오늘은 요를레이의 열 번째 생일이다. 요를과 함께 산지 벌써 십 년이 가까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감격스럽다. 내 삶 20대 중반에 만나서 내 가치관과 삶에 대한 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존재는 아마도 요를일 것이다. 반려동물에 대한 생각과 의견이 전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만나서 나랑 살게 된 이 녀석 덕분에 그동안 상상도 못 했던 여러 가지 삶의 단면들을 겪고 배울 수 있었다. 우리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요를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얼마나 자괴감에 빠졌는지 모른다. 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보다 깊은 자괴감과 책임에 대한 무거움을 느낀 사건이 있었나 싶다. 다행히 이유를 모른 채로 아팠던 요를은 이유를 모른 채로 나았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면서 내 뒤에서 고래고래 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