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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개와 함께한 일주일

나름대로 같은 주에 사는 이웃이어서 친하게 지내고 있는 가족의 막내, 강아지 슈슈가 약 3주간 우리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고양이와는 십 년 넘게 살고 있지만 개를 키운 경험은 없는데 슈슈 탁견을 계기로 (의외로) 나는 개랑도 잘 지낸다는 것을 발견한 한 주였다.

견제하는 요를과 친해지고 싶은 슈슈

슈슈는 독립적이고 젠틀한 강아지여서 넘치는 에너지를 충분한 산책을 통해 잘 발산만 시켜주면 하루종일 집안에서는 느긋하게 보낸다. 내가 사는 곳은 거의 모든 집에서 개를 키울 만큼 개와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기에 좋은 곳이다. 슈슈 덕분에 나도 요즘 봄풍경을 만끽하며 하루에 한두 시간씩 산책을 하고 있다. 뛰는 것도 좋아해서 오랜만에 내 러닝화가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마침 내가 체력이 다시 좋아진 때에 우리 집에 온 덕분에 개도 나도 만족스러운 산책나날을 즐기는 것 같아 뿌듯하다. 나를 (희한하게) 잘 따라서 종종 까먹는데, 슈슈는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 일단 아이들을 엄청 무서워해서 집 옆에 초등학교가 끝나는 시각을 피해서 산책을 가야 한다. 2년 가까이 이 집에 살았는데 초등학교 수업이 대게 정오쯤 끝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슈슈는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남자 중에서도 머리숱이 적은 사람을(...) 대체로 안 좋아한다. 우리 동네에 유독 민머리 남자가 많았음을 이번 계기로 알 수 있었다. 결국엔 거니는 사람이 드문 와인밭을 산책한다. 개울이 흐르는 공원이며 같이 가면 좋을 곳들이 많은데 아쉽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움직일 수는 없는 체질이니 포기한다.

 

하루 한시간씩은 나가서 걷다 보니 인간이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건강하다. 무엇보다 한밤중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잘 자서 좋다. 다만 일도 하고 헬스도 하고 산책도 하려니 시간을 빠듯하게 계획해서 써야 한다. 슈슈가 무서워서 2층에서만 생활하는 고양이들을 함께 챙기느라 집사일이 훨씬 늘어나서 분주해진 감도 있다. 그래서 밤에 좀 일찍 잠든다. 그렇다고 더 일찍 일어나진 못한다. 아무튼 수면시간이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다. 또 동네 사람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혼자 걷고 있으면 아무도 말을 안 거는데 개와 산책 중인 다른 사람들이 슈슈와 나에게 종종 말을 건다. 어떤 대머리 아저씨가 보통은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구조한) 자기 개가 슈슈를 좋아하는데 이런 거 너무 드문 경우라며 혹시 티어슈츠(임시보호?)인지 물어봤고, 그냥 방문 중인 손님견이라고 했더니 아쉬워하셨다. 나도 아쉬웠다. 구조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면 좋은 사람일 것 같단 편견이 있는데 말이지.

 

개는 고양이와 다르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알 수 있다. 또한 관심과 기쁨, 실망의 표현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한다. 걸어다닐 때 또닥또닥 소리를 내다보니 좀 더 부지런한 것 같은 인상이 든다. 눈을 자주 마주치고 계속 쳐다봐도 화내지 않는다. 덩치에 비해 밥을 굉장히 조금 먹고, 대신 머리를 쓰거나 행동가짐이 좋을 때마다 간식을 종종 얻어먹는다. 귀가 덮인 형태인데도 소리를 잘 듣는 건 정말 신기하다. 코가 앞으로 쑤욱 튀어나와 있어서 옆모습이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고양이는 가끔 옆모습을 유심히 보다 보면 어린 사람아이의 옆모습 간다는 생각도 드는 것과는 다르다. 고양이만큼은 아녀도 잠을 많이 잔다. 몇 가지 차이점을 제외하고는 고양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진다. 슈슈가 특히 고양이적 성향을 가진 개라서 그럴 수도 있다.

 

또 한가지 신기했던 경험은 면조네 부모님과 우리 아빠 모두 개손님에 관심이 있고, 보여달라고도 하시고, 아무튼 우리 고양이들을 대하시는 태도와는 영 딴판이란 것이다. 난 평생 고양이인간이었어서 이런 차이점이 재밌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개를 훨씬 더 친근하게 여기시고 개와 함께 지냈던 경험을 통해 더 각별하게 여기시는 거겠지.

 

이 동네에 살면서 언젠가 나(또는 우리)도 개를 가족으로 맞이할 일이 있을까 문득문득 상상하기 시작했는데, 보통일은 아닌 것 같다. 매일 최소 두 시간여를 개를 위해 써야 하고, 가끔씩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집에 혼자 내버려두고 너무 긴 외출이나 외박을 하는 것도 어려우니까. 그래도 내가 뭐라고 나를 믿고 따라주고 좋아해 주고 그걸 또 한껏 표현하는 개의 사랑스러움이 그 모든 수고를 감수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번에 다시금 확실해진 것은 우리 고양이님들이 개를 안 좋아한다는 것. 고양이님들의 복지가 내 가장 큰 사명이므로 역시 개이모로 만족하며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