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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가는길이 즐거울 수 있게

올 여름도 멋진 색색의 장미들이 피었다.

어제 앞으로의 재정관리에 대해 나그네와 말다툼하다가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르게 삶의 구획마다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걸 이루는 게 삶의 원동력이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목표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것이 목표였던 적은 없다. 그보다는 그 목표를 바라보며 가는 길이 즐거우면 된다. 고생을 하기 싫다는 말은 아니다. 즐겁게 느껴지는 고생도 있다. 독일에 오기로 결심하고 그걸 준비하고, 실행하고, 여기서 정착하기까지가 그랬다. 처음 해보는 유럽, 독일에서의 생활은 새로운 것 투성이었고, 상상과는 모두 다 달랐으며, 과정마다 경악스럽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자괴감에 괴로운 적도 있었지만 통합적으로는 즐거웠다. 그리고 살다 보니 독일에 오기 전 세워뒀던 목표를 전부 다 이뤘다.

 

이제는 우리 둘 다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시기가 지났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몸이 근질근질해져서 이직처를 알아보거나, 다음에는 어떤 성취를 할 수 있으려나 두리번거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만히 쉬면서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애써서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갖추어 놓고는 또다시 다른 것에 욕심을 내고, 현재의 것을 즐길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희생하려 하는지 우습다. 머물러 있으면 지체된다는 기분 때문에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조급함이 날 종종 찾아오기 때문인 것 같다.

 

독일로 이주하고 나서 알아챈,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공식이 있다. 영어로는 한마디로 표현가능한 단어가 있는데, trade-off다.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해석을 해보자면, 둘 또는 그 이상의 선택지에서 하나만 골라야 할 때, 선택지 모두가 서로 다르게, 하지만 비슷한 정도로 매력적이어서 뭘 선택한들 결론적으론 공평해지는 그런 상황에서 쓰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연속성을 지닌 채로 다른 방향을 모색하는 삶과 독일로 이주해서 리셋하고 다시 시작하는 삶은 둘 다 장단점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때려 칠 용기를 이미 냈다는 점에서, 그 이후에 대안으로 내세운 두 선택지는 어느 하나도 더 쉽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나는 지금의 일상이 좋고, 좀 더 즐기고 싶고, 그러면서도 업계에서 이름난 다른 일터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이 것은 완벽한 트레이드오프적 갈림길로, 현재의 일상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후자의 소망은 이룰 수 없다. 후자의 소망은 무엇을 위한 소망일까? 결과적으로 몸값을 높이고, 더욱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인가? 많은 돈을 벌어서 뭘 할건가? 내 사업? 무엇을 위해서 스스로 출자를 내어 사업을 벌이려는가? 생각을 이어 나가다 보니 결국 지금 이 상태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벌리기엔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으며, 당분간 일개미모드로 열심히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임시적 결론에 도달한다. 반복적인 일상을 견뎌내려면 일상이 즐겁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일상은, 주 40시간이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꾸준한 불만이지만, 충분히 여유롭고 멋지다. 이걸 포기해 버리고 조금 더 돈을 주거나 조금 더 업계에서 이름난 곳에서 커리어를 쌓는 선택도 할 수도 있겠지만, 그쪽을 포기하는 편이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마음대로 살거면서 남들 또는 평균치와 비교는 왜 하고 고민은 왜 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어제 나그네가 돈이 너무 안 모인다며 독일세금을 다른 데랑 비교하고, 우리보다 어린데도 돈을 더 많이 모은 다른 사람들 얘기를 해서 그랬던 거 같다. 근데 이건 비교를 일삼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비교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최대한 적은 빈도로 만나야지. 내 '가는 길의 즐거움' 취지에 방해만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