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시골 한복판과 도시 한복판의 생활

길 한복판이지만 옷을 갈아입을 수도 있는거구나

런던은 재미있는 도시다. 빅토리아시대가 얼마나 번영했는지는 몰라도 당대에 지어진 많은 건물에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고, 현대적(모던하다)이라 불리는 건물이나 인프라스트럭처는 세계대전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인데 그럭저럭 잘 쓰고 사는 것처럼 보인다. 도로가 굉장히 좁은데도 양방향 차선이 존재해서 버스조차 반대방향에서 오는 차와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도심 한복판에는 비싼 비용을 내야만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그리고 크고 작은 공원들이 정말 많다. 커뮤니티가 운영하는 정원, 동물원 등이 있어 이곳에 살면 누구나 신청하고 대기해서 가드닝도 할 수 있다. 건축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물과 주변환경을 지키기 위해 거주민들이 단결해서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거나 하는 걸 소송을 통해 막는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도시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 역사와 함께 켜켜이 쌓여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19세기에는 아마도 한 가족이 하인과 함께 살았을 좁은 면적에 여러 층을 쌓아 올린 타운하우스들이 이제는 한 층씩, 때로는 그조차 쪼개서 플랫으로 팔리고 있다. 오래되고 관리상태도 아리송한 건물인데 렌트비가 사악하다. 이곳에는 세입자 보호 정책은 독일만큼 잘 되어 있지 않은 걸까. 도심의 어떤 부동산 광고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얼마나 렌트비가 사악한지 월단위가 아니라 주단위로 표기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주세는 내가 독일 시골에서 내던 56평방미터 아파트에 내던 월세보다 하나같이 다 높았다. 집만 놓고 봤을 때 주거환경은 독일의 집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떨어지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그 부분에 대해 어느정도 개의치 않기로 한 것 같다. 예를 들어 렌트비가 조금 쌀 지하층에 사는 경우 약 20센티정도 높이의 창문이 천장 가까이에 있을 뿐이다. 그 창문가를 꾸며놓은 집이 많았다. 주로 장식품을 이것저것 배치해서 꾸며놨다. 어떤 이는 멋진 찻잔 세트를, 어떤 이는 마블영화의 피겨 컬렉션을 '전시'해놨다. 어차피 채광과 환기에 용이하지 않은 창문이고, 도보로 걷는 사람들이 내 창문 안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당돌하다. 어떤 사람들은 땅 위에 지어진 집을 포기하고 보트를 사서 정박료를 내고 보트에서만 생활한다. 템즈강에 보트정박하는 곳은 그런 주거용 보트들의 줄이 끝이 없다. 내부가 궁금했는데 Museum of home에 가서 어떤 가족이 사는 보트의 내부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되게 좋았다. 벽난로가 있는 거실공간도 꾸며두고 제법 안락해 보였다. 날씨가 좋을 때는 보트를 타고 템즈강을 항해하며 천장에 앉아 와인을 마신다. 압도적으로 불편할 테지만 멋은 챙겼다. 이민자도 많고, 건물이 지어진 시기와 양식도 다양하다 보니 삶의 모습이 정말 다양하다. 이곳에서도 부촌과 빈촌이 있겠지만 서로 맞붙어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 표면층에서 은근슬쩍 일어나는 융합의 멋이 있어 보인다. 일주일차 방문자의 시선이다.

 

이 곳의 삶이, 독일시골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내 삶과 너무 딴판으로 달라서 재미있다. 나의 행동과 마음도 달라지는 것을 관찰했다. 길거리를 걸어도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군중의 익명성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자유로움을 느낀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나갈 때마다 최소 10킬로씩은 걷고 있다. 사실 이 정도의 도보거리 안에 볼 것, 경험할 것, 먹을 것들이 넘치게 있다. 너무 멀리 걸어버렸을 경우 어디서든 버스나 지하철을 찾아 타고 돌아올 수 있다. 어딜 가든 좋은 커피와 좋은 맥주를 마실 수 있고, 레스토랑은 셀 수도 없이 많다. 다른 유럽 도시에서는 좀 불편했던 식당의 브레이크타임 제도도 별로 없어 보인다. 밥을 때맞춰 먹지 않고 사람이 적은 시간에, 내가 배고플 때 먹고 싶은 나에게 최고의 조건이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명랑하다.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고 살려다 보니 다 같이 표면적으로 친절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다들 영어를 쓰는 점도 너무 편하다. 열거한 좋은 점들 덕분에 집 밖에 나가는 것이 즐겁다. 공간적인 의미로 외향적인 내 모습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환경이다. 그래서일까, 사람을 만나는 것도 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독일 변두리에선 누군갈 만나려면 쌍방이 오로지 상대방을 만나려는 목적만으로 외출을 하게 된다. 그 외에 곁다리로 즐길 콘텐츠는 자연정도? ㅋㅋㅋ 그래서 우리 만남의 시간을 오롯이 대화라는 콘텐츠로 채워야 하는 부담이 있다. 여기서는 함께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음식, 길거리 지나가며 보이는 여러 가지 것들,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전시 등 새로운 것들이 차려져 있다. 혼자 있을 때도 같은 이유로 심심할 틈이 없다. 별다른 계획을 많이 하고 온 것도 아닌데 걸음걸음 만나는 것들이 계속해서 다음에는 뭘 더 체크하고 싶다는 영감을 준다. 참으로 멋진 여행지다.

 

한 편으로는 슬슬 내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이 그립기도 하다. 한 번 나갔다 오면 어마어마한 동시다발적인 자극에 노출되었다보니 한 30분 정도 멍하게 있는 시간이 필요할 만큼 정신이 달아있다. 길거리의 소음과 복잡한 환경 때문인지 해가 진 이후의 시간을 차분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보내는 감각은 없어졌다. 이곳에서는 '쉼'을 정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쉼을 취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서울에서만, 도시에서만 살던 나는 알지 못했을 것들을 시골생활에 젖어 있는 나는 알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래선지 주중이 돌아왔음이 조금 덜 괴롭다. 일하는 시간동안은 알던 자극만 받으면 되고, 받을 피로양이 예측이 되니까 마음이 편하다.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없다. 주말 동안 고생했으니 오늘은 업무 마치고 뭐 하려고 하지 말고 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