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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불안을 다스려야 하는 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굳이 테라스에 나와서 바람을 쐬겠다는 고양이들. 귀여워.

우울은 겨울 탓, 불안은 봄 탓을 해본다. 해가 바뀐 지 벌써 3개월이 흘렀고 나무와 풀들은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 봄을 알리는 수선화, 크로커스, 체리, 자두, 앵두꽃들이 예쁘게 피었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마음이 들어서 조급해지는 것일까, 난 봄이 오면 불안하다. 해 단위로 성과를 낼 필요가 있는 삶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럴까? 주어진 일만 잘 해내고, 느긋하게 일 년 휴가 계획이나 짜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불안한 마음이 날 어떻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속되면 무서운 통증처럼, 이 불안한 기분도 지속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일하다가 하늘을 봤더니 너무 파랗길래, 반품 택배도 접수 할 겸 우체국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걷는 길에 팟캐스트나 들을까 싶어 보다 보니 구독 중인 여둘톡에 '불안을 다스리는 법'이 새로운 에피소드로 올라왔더라. 오, 설마 봄이 정말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나? 재생을 했고,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유독 봄에 불안한지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불안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공유해 준 팁들이 괜찮았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메모장에 적어보기. 형체가 없어서 더 무서운 불안을 한 줄 한 줄 글로 써서 형체를 주는 방법이다. 나도 네 줄 정도 적어보았다. 적다 보니 전부 커리어에 관련된 불안이었다. 이제 한 포인트씩 공략해서 그렇다면 이 불안을 제거할 궁극적인 자기 계발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시간과 리소스 투자도 해야 할 터이다.

나는 아마도 끊임없이 내 주변에서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 버릇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특히 요즘엔 늘 혜택을 받는 증거가 보이는 특정 인종 특정 성별이 너무 부럽다 못해서 아니꼽다. 같은 말을 해도 나보단 그 사람이 해야 다들 잘 듣는다. 하지만 이건 내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문화는 아니다. 나는 나만 잘하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잘해야 할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할 의지는 남아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알지 못한다. 사실 늘 그랬다. 유독 요즘 이 포인트가 날 불안하게 만드는 거다. 인사나 구조가 계속 바뀌는 회사의 환경 문제도 있다. 열심히 한 일이 의미 없어지는 경험을 수 차례 했다. 그 과정에서 공로를 인정받는 건 결과물을 만들려고 애쓴 나와 개발팀이 아니다. 결과물을 통해 얻게 된 효과가 본인들이 기획된 결과라고 썰을 푸는 사람들이다. 작년에는 나도 그 썰 푸는 사람이 한 번 되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시장에서는 '어딜 감히' 싶은 반응으로 디자인 포지션 외에서는 날 관심 있어하지 않았다.

 

내가 내 불안을 다스리는 요즘의 방법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일단 헬스장에 가서 휴대폰도 로커에 넣어버리고 땀을 흘리며 운동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별 생각도 들지 않고 마음이 편한하다. 또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몸을 움직이는데 집중해서 다른 생각을 할 프로세서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차단해 버린 결과는, 오롯이 나에게 돌아온다. 건강한 몸, 깨끗한 집. 물론 내가 걱정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ㅎㅎㅎ 이 것은 일종의 도피반응일 텐데, 이런 도피를 통해 뇌 속 에너지를 좀 확보해 놔야 나중에 걱정에 정면으로 대응해서 고민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는 건 정말 피로하다. 언젠가 뉴스에서였나 4월에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는 통계를 봤었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또 4월을 버텨내면 그다음부터는 이런 생각도 별로 하지 않게 되는 축제의 계절이 온다. 그렇다고 내가 하던 걱정을 내려놓고 무턱대고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인건 아니지만, 그래도 'having a good time'하나 만으로 의미 있는 날들로 주말과 휴일을 채워나가다 보면 또 그럭저럭 사람이 느긋하고 긍정적으로 바뀌더라.

 

오늘은 토요일 집안에서 늘어져 보내기 싫은 기분이어서 약속을 잡았다. 늦잠을 자서 기차를 타고 가기엔 이미 늦어서 오랜만에 긴 드라이브를 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