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Journal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었다.

마침 이번주에 알디에서 알배추를 세일해서 팔고 있다. 장을 봐와서 김치볶음밥을 먹기까지 대략 3주 정도 소요 될 예정이다. 한 번 그 여정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사워도우 빵을 굽다 보니 시간을 오래 들여 음식을 만드는 것이 더 이상 번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빵 굽는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것들이 삶에 매우 도움이 되는 부수효과 같다.

 

배추절이기부터 시작

김치볶음밥은 대단히 럭셔리한 음식이다. 어마어마한 슬로푸드인 김치가 주 재료인 찌개, 볶음, 찜 등이 다 그렇다. 나는 신 맛이 나지 않는 김치는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 김치는 마땅히 시어야 한다. 아시아 식료품점에 가면 김치를 구할 수는 있는데, 대략적으로 100그람에 1유로가 약간 넘으니 가격이 엄청 비싸진 않다. 그런데 내 입에 맛있게 신 김치를 찾기도 어렵고, 직접 만드는 것이 되게 어려운 건 또 아니다. 묵은지까지는 내가 만들 수 없어도, 김치는 직접 내 입맛에 맞춰서 만드는 것이 역시 좋다.

 

나는 김치명인 이하연 님의 유튜브 채널을 주로 참고해서 김치를 만든다. 참고한다고 해도 모든 재료를 잘 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배추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단맛이 나는 재료를 가감해서 내 나름대로 조절해야 한다. 재료 구하기가 훨씬 간편하고 맛도 좋기 때문에 비건김치인 소금지를 주로 담근다. 이번에 쓴 재료도 단순하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믹싱볼에 들어가는 정도의 양만 만들기 위해 배추는 230g을 썼고, 배추의 무게를 기준으로 이하연명인의 레시피를 환산해서 무채, 사과채, 쪽파를 추가했다. 천일염 25g, 다시마물 200ml 정도, 찹쌀풀 120g, 고춧가루 75g, 마늘 65g, 생강 10g, 간장 한 큰 술(이건 간 보다가 내 맘대로 추가)만으로 양념을 만들어 버무렸다.

 

하루나 이틀밤 정도 상온에 뒀다가 냉장고에 넣고 3주쯤 더 기다렸다가 뚜껑을 연다. 그전에 못 참고 열어버릴지도 모르니까 6:4 정도로 양을 배분해서 두 통에 나눠 담았다. 배추를 절이고, 채소를 썰고, 간을 맞추기 위해 여러 번 계량을 하고, 잘 버무려 통에 공기가 안들어가게 꼭꼭 눌러 담아뒀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시간이 맛있게 익혀 줄 것이다. 할 일이 완전히 끝난건 아니다. 김치 만드는 날은 뒷정리가 유독 귀찮다. 주방에 진동하는 마늘과 파의 쎈 냄새도 여러번 환기시켜 빼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 포함해서 총 8시간 정도 걸렸다.

 

아침에 눈 쓸고 장 봐오고 김치를 만드니까 토요일이 휙 지나가 버렸다. 대신 아주 드물게 하루에 일기를 두 개나 썼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장작난로를 피웠는데, 그 앞에서 하루종일 아이패드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가 오래전에 쓴 일기들을 몇 개 읽었다.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이 세상에서 날 이해하는 건 과거의 나뿐이란 생각이 들어.

아무튼 김치를 만드는 것은 자주 있는 업적이 아니므로 굳이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