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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사이트 워크샵 어제 회사에서 진행해야 하는 워크샵을 위해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사무실에 다녀왔다. 아마도 이사오고서 처음으로 다녀왔으니까 일 년 넘게 사무실에 간 적이 없다. 그래도 다행히 몸이 회사에 가는 길, 주차장에서 사무실까지 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45분 정도 고속도로를 때려 밟아서 가는데, 오랜만에 팟캐스트 들으면서 운전하니까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편리한 커피머신, 탄산의 단계가 조절되는 정수기, 최신 모니터에 높이 조절 책상 등 좋은 환경에서 오랜만에 일하니까 아 나도 회사원이었지 싶은 기분이 들더라. 하지만 역시 동료들의 잡담과 전화 회의 소리를 견디면서 일하는 것은 좋아할 수 없었다. 기름값이 지금처럼 무섭지 않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올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한 워크샵은 내가 하..
둘이 살기 나의 룸메이트(a.k.a. 나그네/면조)와 같이 산 지 10년이 넘었고, 두 사람의 학교나 근무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2인 가구의 생활방식을 경험했다. 분당에 신혼집을 구해서 살던 첫 해엔 한 명은 재택근무자, 나는 서울로 출퇴근을 했고, 곧이어 둘 다 출퇴근을 하며 저녁에만 만나는 삶을 살다가, 둘 다 재택근무자가 되어 동네의 편리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삶을 즐기다가 독일로 이사를 왔다. 독일에서 한동안은 학교나 어학원을 다니느라 둘 다 바쁘게 지내다가 내가 졸업하고 하이브리드 근무를 하는 직장을 구한 이후에는 나는 쭉 재택러로, 면조는 쭈욱 어딘가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중간에 3년 정도는 학교가 뮌헨 근처에 있는 면조의 기숙사를 따로 구해서 한 명은 펜들러(부주거지..
여행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어가는 이유 1. 정원 이사 온 후 뒷마당 정원만 열심히 관리했고 아침에만 잠깐 해가 들고 하루 종일 그늘이 진 앞마당은 많이 소홀했는데, 수국도 하나도 피지 않고, 통로 건너편 장미랑 나무들도 다 죽어가는 것을 보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둘 다 약속 없는 토요일을 맞아 오전 중청소 후, OBI에 가서 바닥에 덮을 나무 조각들이며 필요한 물건을 잔뜩 사 가지고 왔다. 꽃나무들이 심긴 땅의 수분 보호를 위해 나무 조각들을 깔고, 장미랑 사철나무를 뒤덮은 덩굴 잡초들을 싹 제거하느라 일요일 오전 내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했다. 정원 관리는 정말이지 힘이 많이 들고, 온갖 참신한 벌레들을 만나야 해서 고달프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되게 뿌듯하다. 생활의 행복에 기여가 큰 취미 중 하나라니까 내가..
집중력 장애랑 살아가기 내 집중력 장애 문제를 인식한 것은 엄청 오래전이다.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산만하다'라는 표현이 생활기록부에 종종 등장할 만큼 산만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진득하게 하나에 집중하는 것을 잘했던 시기는 입시미술 이후로 없었던 것 같다. 입시미술은 4시간 만에 주어진 과제를 완성된 그림으로 그려내야 해서 최소한 4시간은 연속해서 집중해야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시시때때로 전화가 오거나 동료가 질문을 해서 흐름이 끊기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내 집중력이 문제라고 인식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다시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와서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유명한 뽀모도로 타이머를 이용해서 25분 집중, 5분 휴식 같은 방법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25분을 한 곳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더 어..
폭염이 지나간 여름 이사 온 집에서 처음 맞는 여름은 정말로 뜨거웠다. 유럽 대륙을 바싹 구워버린 폭염 때문이었다. 모두가 더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내용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들렸지만 막상 나는 작년이나 재작년 여름보다 수월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작년 여름은 간간이 쏟아지던 스콜 때문에 습해서 힘들었고, 재작년 여름은 뜨겁고 또 뜨거웠다. 43도란 숫자를 봤던 것도 같다. 올 해는 내가 겪은 최고 기온이 41도였다. 아무튼 40도가 넘는 더위라니 심각한 기후위기가 체험된다. 매 년 가속화되는 기후위기와 더불어 올 해는 전쟁이 진행 중이고, 에너지 크라이스가 심각하고, 식량위기도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어서 물가가 실시간으로 오르는 것도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무서운 여름이다. 반면 내 집에서는 비교적 안락하게 보..
만나고, 이별하고, 지원하고, 면접보고, 가치 판단 어려워서 고민하느라 가버린 유월 벌써 칠월이 되어버렸네. 2022년 6월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너무나 바쁘고 시끌시끌했다. 6월 마지막 주는 면조의 졸업식과 함께 열린 프라이비어페스트가 장식한 멋진 피날레였다. 열심히 현생을 달리다 마시는 맥주는 정말 맛있다. 포지션을 바꿔서 이직을 하고 싶다고 결심한 후 4-5월 내내 이력서 업데이트, 커버 레터 쓰기, 포트폴리오 제작 및 프리젠테이션 정리를 했고, 6월엔 자격증 시험 보고, 총 6군데 회사에 지원을 했다. 오늘은 헤드헌터 통해서 지원한 한 곳과 2차 면접까지 봤다. 모든 게 준비되면 지원하는 것은 쉬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이게 가장 어렵다. 일단 공고를 자세히 읽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requirements에 쓰여있는 한 줄 한 줄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 게 많았다. 그..
오월, 파칭코, 멘탈 헬스 데이 오월의 우리 집과 주변은 기똥차게 아름다웠다. 걷는 곳마다 꽃향기가 났고, 매일매일 새로운 꽃들이 폈다. 아직 이 정원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하나씩 밝혀지는 꽃봉오리와 식물의 정체를 알아가는 기쁨이 있었다. 산책길 보리밭은 어느새 내 무릎 위까지 자란 청보리의 솟은 머리털이 바람에 쓸려 다니며 장관을 연출했다. 와인 밭도 어느새 초록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을 숨 가쁘게 느끼며 나는 이직 준비를 했다. 이력서와 커버레터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 한 달여를 보내고, 나그네가 한국에서 돌아온 5월 후반부에는 매 주말마다 꽉 찬 일정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보냈다. 책은 두 권을 다 읽었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정세진의 '식탐 일기'였다. 1984는 줄거리와 명성만 숱하게 듣..
봄날은 간다, 드라이브 마이 카 어제와 오늘 '드라이브 마이카'란 영화를 반씩 나눠서 다 봤다. 좋아하게 된 감독이 찍은 영화이고, 늘 좋아했던 하루키의 소설이 원작이어서 많이 궁금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더 재미있게 봤다. 소설을 읽을 때보다 주인공에게 더 몰입하게 된 건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주인공 가후쿠를 연기해서일까. 남자 창작자를 마음 놓고 좋아하기 힘든 시절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다. 영화 속에 큰 줄기가 되는 소재인 체호프의 극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단순한 사람이 깊게 몰입해서 끄집어낸 감정을 표현해낸 것들이 대게 내게 큰 감동을 준다. 그런 집중력이 나에겐 없어서 좀 동경하게 된다. 요즘 내내 이직을 위해 힘쓰다보니 나를 좀 심하게 '직업인'으로서만 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오늘 저녁은 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