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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되는 날씨가 돌아왔다. 오전형 인간이 좀 되어보려고 시도한 지 오래되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따뜻한 날 포함해서 아직까지 성공한 날이 며칠 없기는 하다. 나는 왜 이다지도 좋은 습관을 기르기 어려운 걸까? (또는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없는 걸까?) 미라클 모닝 수준은 결코 바라지도 않고, 적어도 일 시작하기 한 시간 반쯤 전에 일어나서 차도 한 잔 마시고, 스트레칭도 하고, 차분하게 글을 쓰거나 하는 내 시간을 갖고 싶은데 실행이 너무나 어렵다. 요즘같이 아침 기온이 차가울 땐 이불속에만 소중하게 간직된 내 체온으로 만들어진 천국 같은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냥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계속 다시 잠에 들어버리고 그 추가된 아침잠이 너무나 달콤해서 도저히 깨지지가 않는다. 요즘 집중력이 너무나..
스위스 양조장 투어. 빡세고 아름다웠던 3박 4일 면조 친구들을 따라 스위스의 맥주 양조장 투어를 다녀왔다. 3박 4일간 낮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 맥주를 마시면서 다닌 것 같다.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St. Gallen에 있는 Kornhaus Bräu에서 다 같이 모였고, 취리히 근처 Winterthur에 있는 Chopfab(코프압이라 읽음, 촙밥아님 주의 ㅋㅋ)에 들렀다가 루체른에서 1박 후 다음 날 인터라켄에 있는 Rugenbräu를 방문, 마지막으로 Bossonens의 Boss Bier까지 총 4개의 양조장을 방문했다. 그중 하나는 면조 친구의 가족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셋째 날 낮동안 면조와 친구들이 그곳에서 페스트 비어를 양조하는 동안 나는 혼자서 로잔 시내를 구경했다. 각 브루어리에 대한 감상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생략하기로 한다. 전문적인..
파티. 축하하고 베풀고 즐기고. 백신을 2차까지 맞고 2주가 지났다. 전보다는 좀 마음이 편하게 이곳저곳 다니고 있다. 어제는 매우 오래간만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다녀왔다. 동료의 생일파티였다. 원래는 100명 이상 초대하고 싶어 했는데 코시국으로 인해 60명까지 밖에 초대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할 만큼 엄청난 외향인인 동료 R의 생일파티다. 나와는 사실 자주 만나거나 친하게 지낸 적은 없지만 여러모로 소외(?)된 독일팀에서 동병상련을 느끼며 같이 일한 지 3년쯤 되니 온라인으로 목소리만 들어도 반갑기는 하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나도 생일파티에 초대해 줘서 다녀왔다. 한동안 날씨가 춥고 흐렸는데 기적처럼 다시 덥고 맑은 날이었다. R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R이 두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어린아이들이 굉장히 많이..
Chapter 1 vom meinem Leben in Deutschland ist bald zum Ende 독일어 시험을 봤다. 구우지 꼬옥 반드시 봐야만 하는 건 아니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본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결과에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어려운 시험도 아니었다. 구두나 글쓰기로 자기소개, 상황 설명, 약속 잡기, 간단한 의견 피력을 할 수 있고, 상점이나 대중교통, 정부에서 공지하는 것들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요구하는 B1 레벨이다. 그 정도를 어떻게든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구글 번역기도 없이 시험을 보자니 막막하기는 했다. 이래저래 삶이 바빴고, 퇴근 후에 공부하기란 생각보다 더 끔찍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시험 준비를 별로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시험센터를 찾아 예약을 했고,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했고, 스트..
이사갈 집을 찾았다. 독일에서의 이사는 정말 어렵다. 특히 내가 원하는 일정 조건을 갖춘 집을 만나는 건 어렵다 못해 인간의 노력 이면의 신 또는 운의 영역이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드는 조건의 집이 나와도 그 집에 방문예약 신청서를 보내고, 연락을 받아 약속을 잡고, 집을 보면서 인터뷰를 하고, 최종적으로 집주인이 나를 선택하기까지 많은 관문이 있다. 지원자로서 일종의 '결격사유'가 없는 편이 아무래도 인터뷰의 기회가 많이 올 것이다. 우리는 제법 큰 결격사유 중 하나인 '외국인'으로서 남들보다 약간 더 실패를 맛봐야 했다. 집을 사려다가 포기한 이유 나와 면조는 작년부터 immobilienscout24, immowelt, meinestadtde, ebay kleinanzeige, wg gesucht 등의 앱을 ..
폭우와 홍수 후 날씨가 다시 맑고 더워졌다. 지난번에 우울증과 뇌과학에 대한 책을 읽은 독후감(비슷한 거)을 쓰기도 했지만 한동안 많이 우울했다. 아무래도 8개월을 기다려 드디어 맞이한 여름인데도 날씨가 너무 춥고 계속 비가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홍수도 심하게 나서 서북쪽 독일에선 사람들이 많이 실종되고 죽기도 했다. 오래된 대륙의 한 복판에 위치한 독일은 전쟁은 몇 차례 겪긴 했지만 자연재해는 별로 겪을 일이 없던 축복받은 자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마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할 정도의 홍수는 겪은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5년간 살면서 태풍이 지나가는 경우를 매년 보긴 했지만 한국처럼 비가 종일 가차 없이 퍼붓는 장마와 관계된 태풍이 아닌 폭우를 동반한 심한 바람 정도였어서 나무가 쓰러지는 정도가 재해였다. 집이 물에 잠기고 차가 떠내려가고 ..
우울할 땐 뇌과학 그리고 에어팟 뇌과학 책이 읽고 싶어 져서 며칠 전부터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이제 절반 좀 넘게 읽어서 책의 두 단락 중에서 첫 단락인 뇌의 각 부위별 신경이 담당하는 역할과 해당 기능의 활성도에 따른 우울증 증상 또는 상관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두 번째 단락에서는 각 부분의 신경을 자극하는 생활 습관과 그 원리를 설명한다.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그동안 내가 겪고 있는 것이 우울증 증상임을 확신했다. 정확히 시점을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판데믹 전후부터 나는 불확실한 일에 대해 최악의 경우의 수를 상상하는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되었다. 그리고 판단이나 선택을 미루는 경우가 잦아졌다. 심한 무기력증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졌고, 급기야는 수면의 질도 안 좋아졌다..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살기 바질 페스토(페스토 제노베제)를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하고서 나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이전까진 페스토는 시판 고추장이나 간장을 사 먹는 것처럼 슈퍼마켓에서 사서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생바질 잎을 사더라도 보통은 샐러드나 피자 위에 뿌려 먹고 끝났었다. 사실 페스토를 만들기 위해서 생바질을 따로 산 적은 없다. 큰 발코니를 그냥 두기 아까워서 하나 둘 화분을 만들어 두고 만만한 허브 씨앗을 사다가 조금씩 심어봤고, 그중 가장 수확량이 많은 바질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이다. 막상 레시피는 되게 간단한데 이걸 직접 만들 엄두를 내 볼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진 오랜 세월과 많은 변화가 필요했다. 작은 화분에서 바질을 키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