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alling

(5)
맥주가 좋아서 독일에 온 지 8년, 맥주를 만들어 팔게 되었다. 오늘은 대망의 첫 배치 생산물을 병입 한 날이다. 이 특별한 감회를 기분을 기록해 두고 싶어서 밤이 늦었지만 기록을 하고 자려고 한다. 임근조와 나는 2016년 9월에 독일로 왔다. 곧 8주년을 맞이한다.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임근조가 브루마스터 과정을 공부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영어 점수를 받아 대학원에 입학하기 좀 더 좋은 자격을 갖춘 내가 독일에 있는 비즈니스 석사 과정에 합격해서 국제 이사를 올 수 있게 되었다. 독일 중서부 시골 같은 소도시에 위치한 대학원이었는데, 여기서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가끔씩 만나며 친하게 지내고, 여기서 임근조의 직장이 된 양조장을 만나고, 여러모로 우리의 기반이 되어준 곳이다. 처음에는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지만은 않던 임근조와 달리 나는 그럭저럭 잘 졸업해서 좋은..
안식년 계획 안식년을 가지고 싶다. 2026년에 내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니까 그 기점으로 안식년을 가져보기로 정해볼까. 2년이 남았다. 너무 긴가? 사실 당장 내년에 그만두고 싶고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올 해는 안된다. 아빠랑 남동생과 여행을 해야 하니까. 올해 매달 내 통장에 꽂히는 x000유로 남직한 돈은 우리 둘과 고양이 둘 네 가족의 안락한 삶을 보장해 준다.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일 자체를 통해서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것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임기응변으로만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지만 내 스스로를 사용자 경험 전문가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함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는 같은 직군에게도 매 년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 전문성을 쌓는 것이 의미가 있는 분야인지 모르..
나는 과연 이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답은 당연히 '할 수 있다'이다. 이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작년 초부터 했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정신적인 힘이 부족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우울감과 무기력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이해해주고 싶다. 작년 후반기부터 서서히 나아지기는 했다. 이사를 했고, 새 해가 되었고,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이 찾아왔고, 한국에 다녀왔다. 독일에 돌아와서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했다. 시간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 방향을 틀려는 의지를 가지고 노를 젓지 않으면 크고 센 물줄기만을 따라 흘러가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다니는 회사와 포지션은 과거의 내가 바랐던 것이다. 최선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직장이다. 이 곳에서 4년여를 일하면서 많은 ..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11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3년차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며 안락의자에 앉아있다. 때는 바야흐로 역병의 시대, 작년부터 쭉 재택근무만 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벌써 디자인 일을 꽤 오래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헤아려보니 어느새 십 년이 넘어 있는 것이다. 와우. 물론 내 커리어는 커리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다. 디자인하다가 때려치우고 경영학 공부하고, 다시 도저히 경영학 전공을 살린 일은 하기 싫어서 디자인 필드로 돌아왔다. 대신 한창 인기가 좋은 UX필드로 살짝 방향을 틀어 전직했다. 현재는 독일의 클라우드 회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타이틀은 UX 디자이너긴 하지만 경영학에서 배운 지식도 써먹을 겸 프로덕트와 서비스 기획도 하니까 스스로를 프로덕 디자이너로 칭하고 있다. 놀랍..
From Design to UX 움직이는 관심사 그동안 이 카테고리에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핑계가 있었지만 가장 지배적이었던 이유는 내가 충분한 전문가일까 하는 의심 때문이었다. 그 의심의 근거는 다양하지만 가장 큰 근거는 역시 나의 '움직이는 관심사'이다. 나는 아무리 증거를 찾아보려고 해도 뭔가에 대해 한 우물을 깊고 깊게 판 적이 없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넓고 얕은 관심을 두며 조금씩 파내려 가다가 가끔 운이 좋게 각 각의 영역에서 얻은 지식이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다. 내가 전문적인 영역을 공부할 생각이 들 만큼 깊은 관심이 있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실 꽤 다양한 디자인 분야는 거의 내 삶의 축이었다. - 학창 시절에는 만화 작화와 스토리 쓰기, 더 어릴 때부터 은근히 화가인 큰엄마처럼 살고 싶었기에 가져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