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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Journal

나태함 또는 불안감

폴짝 노르망디

오늘은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스카이프를 켜 놓고 수다를 떨면서(독일어라서 사실상 나는 거의 듣기만 하면서) 점심식사를 했다. 아니 사실 나는 배고파서 미리 국수 한 사발을 한 상태여서 디저트를 먹으면서 노닥거렸다. 덕분에 아이가 있는 집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내내 초등학생 아들을 둔 동료의 배경 소리가 아이가 뛰어다니며 뭔가를 부수고 엎고 소리 지르고 노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ㅠㅠ 보다 더 어린아이와 갓난아기가 있는 다른 동료는 애들을 재워두고 뒤늦게 조인했다가 이 소중한 조용한 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며 빨래를 걷으며 ㅋㅋㅋㅋ 콜을 했다. 우리 사람 둘과 고양이 둘은 너무 외롭지도 않으면서 비교적 평화롭게 이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

 

요즘에 아무래도 이 초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해본지 오래된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싶은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나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다음 주쯤 코로나에 걸려 숨을 못 쉬어 죽게 된다면 내 삶은 어떤 식으로 기억되길 원하나 뭐 이런 거. 답은 모른다. 그런데 대강 어느 방향으로 답하고 싶은지는 알아야 이 범지구적인 재앙을 겪고 다시 정비된 사회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살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에 오기 전과 후의 나는 많은 면에서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평생 필요 없을 것이라 여겼던 학부 졸업장 이상의 학벌을 추구해서 여기로 왔고, 그에 합당하는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보니 평생 게을렀던 자기 계발도 하려고 노력을 해보게 되었다. (지금은 잠시 때려치운 상태) 아니 사실은 한 번 포기하려고 생각했던 길로 다시 돌아와 걷고 있다 보니 이게 내 천직이란 생각이 들면서 더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시간과 체력 의지력 등이 받쳐주지 못해서 어마어마한 노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풀타임 UX 디자이너로 다시 일하게 된 지난 일 년간은 그래도 스스로를 업데이트하고 보다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애썼다고 생각한다. 더 높은 소득과 사회에 가시적인 영향력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직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전혀 실행의 페달은 밟지 않고 있고, 지금은 핑계 삼아 쉬기 딱 좋은 팬더믹 기간이다.

 

난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까.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커피 한 잔 하고 재택근무를 약속한 대로 8시간 채워서 마치고, 중간중간 발코니에서 햇빛을 쬐며 쉬고, 고양이들을 돌보고, 먹고싶은 것을 골똘히 생각해서 최선을 다해 구현해내어 먹는다. 이게 내가 보내는 일상의 거의 전부인데, 솔직히 말하면 만족스럽다. 이대로 삼십 년쯤은 더 이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 만나고 여행을 가고 이런 것들이 그립지만 (나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면 사실 크게 억울하거나 그립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집 마련도 월급만 모아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냥 이 정도 싼 렌트비를 내면서 쭉 사는 편도 나쁘지 않다. 이래도 되는 걸까? 이렇게 현실에 안주하는,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괜찮은가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하지만 채찍질을 하기에는 좀 지쳐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힘겹게 외국어로 마스터를 졸업한 것이 불과 1년 전 일이잖아. 한 2년쯤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만 만끽하며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이 것은 나태함일까 아니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불안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