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온갖 분야의 전문가들이 강조한다. 특히 요즘처럼 집 안에서만 몇 날 며칠이고 보내면서 일도 생활도 집 안에서만 하는 경우에는 더욱 중요시되는 것 같다. 나는 사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7-8년 차 칩거 전문가들과 살고 있다. 우리 요를레이와 노르망디. 얘네는 나름대로 바쁘고 알차게 하루를 보내며 그 미모는 매일매일 눈이 부시다. 내가 잘 관찰해보니 얘네는 24시간을 주기로 루틴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어느 날은 온몸 대 그루밍을 안 하고 잠만 자고 지나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우다다를 안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것도 일정 사이클을 두고 반복된다. 몸이 필요로 할 때 해야 할 것을 하는 듯하다.
나는 얘들 같은 지혜와 내 몸의 상태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본능이 없기 때문에 대충 다른 인간들이 정해둔 24시간/일주일/한달과 같은 사이클에 맞춰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매일매일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 또한 분명 일정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실행되어야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것도 있어서 시간을 만들어 넣어야만 한다. 따라서 매일 반복하는 루틴으로 하루를 꽉 채우면 안 된다.
매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루틴에 넣기 애매했던 것 중에 운동이 있다. 사실 운동이 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나는 아침에는 출근시간 전에 일어나는 것만 해도 대견히 여겨야 할 자이므로(예전에 하던 아침형 인간 되기 훈련은 때려치웠다), 운동은 반드시 저녁에 해야 한다. 하지만 저녁에 일을 마치고 바로 준비해서 저녁을 먹어야만 한다. 점심은 12시경에 먹는데 5-6시간이나 지난 후므로 배가 너무 고프기 때문이다. 식사 준비에도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므로 결국 운동은 저녁을 먹고 나서 해야 한다. 하지만 밥을 먹고 나서 바로 운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1시간 정도는 다른 일을 하거나 쉬면서 소화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운동을 30분 했다고 치면, 땀을 흘렸으니까 샤워도 30분 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운동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전후 포함해서 2시간은 특정한 일정 없이 비워둬야 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못 할지라도 꾸준히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운동하기, 책 읽기, 그림 그리기, 요즘 외주도 하고 있고, 일기 쓰기, 요리 연구,...
운동은 굳이 매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살을 빼거나 근육질이 되려는 목적이 아니고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니까 허리나 어깨, 목이 아프지 않으려고 하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강도에 따라 좀 힘들게 한 날은 다음날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저녁 2시간을 운동과 운동 준비에 안 쓰고 놀거나 다른 것을 하면 그렇게 꿀 같을 수가 없다. 아무튼 이를 통해 배운 것은, 루틴이라는 것이 결국은 '해야 할 것들'로 대충 정해져 버린 살림하는 직장인으로서 시간에 뭔가를 꼼꼼히 채워 넣는 계획보다는 빈 시간을 확보해 놓는 계획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 먹고 난 뒤 자기 전 2시간은 앞으로 나의 자유시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집안일을 그전에 다 마쳐 둬야만 한다. 그래서 결론은... 조금 일찍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네. 으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