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서너 번 정도 참여해 본 것 같다. 지구의 날은 매 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고, 환경을 생각하는 의미로 전기 기기들을 다 끄고 저녁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정전이 되었다 가정하고 한 시간을 보내면 된다. 얼마 전 본 사랑의 불시착에 보고 깨달았는데 멈추지 않는 전기 공급은 현재 경제적으로 살 만한 국가에 사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혜택이었다. 전기를 아껴 써야 함은 알고 있지만 이 풍요로움 속에 실천하기가 어렵다. 사실 초를 켜고 한 시간 보내는 것은 꽤 낭만적인 일이므로 생각난 김에 실천해 보았다.
8시 30분이 되기 전에 미리 차를 한 주전자 우려놓았다. 한 시간 동안 천천히 요가를 하면서 보낼 예정으로 요가매트를 깔고, 차와 아이패드도 옆에 세팅해 두었다. 배터리로 이용하는 전자기기까진 봐주는 걸로 정했다. ㅎㅎ 50분짜리 요가 프로그램을 켜 두고 따라 했는데, 중간중간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버퍼링을 기다리다 보니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버퍼링 동안에는 짜증을 내지 않으려고 옆에 가져다 둔 차를 마셨다. 언제나 그렇듯이 요가에 일가견이 있는 고양이들이 근처에 와서 구경하고 참견했다. 어둠 속에서 스크린보다는 소리에 주로 의지하면서 집중해서 요가를 해보는 것은 되게 좋은 경험이었다. 사실 설렁설렁 느긋하게 하고 싶었는데 예상외로 빡세서 땀도 조금 흘렸다. 내 숨소리와 내쉬는 숨의 온도와 신체 부위 부위의 무게... 그리고 고양이들 숨소리와 고양이들 날숨의 온도까지(ㅋㅋㅋㅋ) 선명하게 느끼면서 요가를 해 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이런 시각을 쉬게 해주는 시간이 너무 신선하고 좋아서 앞으로 퇴근 후나 운동 후 wind down 하는 시간에는 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둠 속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대충 이 때의 장면을 떠올리며 낙서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