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안된다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면역력이 딱히 좋지 않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다. 휴양으로 가서 쉬다 온 것이 아닌 이상 여행을 다녀오면 반드시 아프고, 한국을 다녀온다던지 하는 큰 여행의 경우에는 엄청나게 아프고 지나간다. 이렇게 오랫동안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정신력이 힘주고 있다고 밖에는 생각 할 수 없어.
그저께 근력운동을 다시 시도했다가 몸살기운을 느낀 후로 쫄아서 어제는 스트레칭만 길게 했는데, 그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종일 근육통에 시달렸다. 그래서 오늘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햇빛을 조금 쬐는 걸로 오늘치 건강을 위한 노력을 퉁치기로 했다. 퇴근 후 맥주도 두 잔이나 마셨다.
점심을 먹고 테라스에 앉아서 햇빛을 잠시 쬐면서 간단하게 손으로 일기를 써 봤다. 일기라기 보다는 점심먹으면서 나그네(남편의 북한말이라고 배움 ㅋㅋㅋ)랑 한 이야기를 곱씹어 보는 문장을 써보았다. 나그네랑 한 이야기는 2월 말에 화려한 카니발을 신나게 하고 가장 확진자가 많은 NRW주에서 발표한 강력한 커퓨 조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같이 사는 사람과만 외출 및 1.5미터 간격을 유지하지 않고 어울리는 것이 허용된다고 한다. 그 조차도 3명이상 모이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다른 주는 5명 이상은 안된다고 한다. 아무래도 적적함을 이기지 못하고 뛰쳐 나와 소셜라이징 하는 인싸들의 의도를 차단하려는 목적 같다. 결국 같이 사는 사람들은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니까, 아마도 한 명이 아프면 함께 아파야 할 것이다. 바이러스를 가구 안에만 가두려는 작전이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하다. 이게 치사율이 더 높은 바이러스였다면 정말로 생사를 같이 하게 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나와 나그네는 서로 합의하에 결혼까지 한 사이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WG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심난 하거나 그 어느 때보다 더 끈끈함을 느끼게 될까? 궁금하다. 만약 내가 여러명의 타인과 같이 지내고 있다고 한다면 견디기 힘든 상황일 것 같다. 특히 병에 취약한 몸이라서 내가 남에게 옮을 가능성도 무섭지만 내가 남에게 옮길 가능성도 꽤 높아서 그 점이 너무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눈치보고 주눅들어 살게 될 것만 같다. 그래서 문득 나그네의 존재가 되게 고마웠다. 어쨌든 우리는 둘 중 한 명이 아파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진정한(?) 운명 공동체인 것이었다. 오늘에서야 새삼 깨닫다니. 그래서 나그네에게 약간 더 잘해주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보니 오늘의 감사 대상은 나그네구먼.
오늘은 트위터를 많이 하지 않았다. (뻥이다. 여전히 많이 했다.) 컨디션이 안좋아서 글도 잘 눈에 안 들어오고 피곤하다. 요즘 내 타임라인은 텔레그램으로 여성성착취에 가담한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벌인 범죄 이야기로 매우 분노도가 높아졌다. 대신 친구가 알려준 밀리의 서재를 가입해서 만화책을 보고 있다. 다카키 나오코라는 만화작가의 뷰티풀 라이프라는 만화를 봤다. 20대 초반의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이 상경하면서 겪는 혹독하고 고단한 현실 이야기다. 캐나다에서부터 대학교 졸업 할 때까지 온갖 알바를 하며 가까스로 버티던 내 20대 초반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모든 경험이 현재의 나를 되게 단단하고 밀도있게 만들어 주기는 했다. 이 작가도 그럴 것이다.
이대로 판데믹이 지속된다면 올 해는 어떻게 넘긴다 쳐도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매우 앞이 깜깜하다. 지금 있는 팀도 원래있던 부서에서 떨어져 나와서 완전히 다른 부서 소속이 될 것이라고 들었다. 가능할지 정말 모르겠는데, 이직준비는 해야 한다. 그동안 운 좋게 때론 요령 좋게 살아와서 취업준비 한 적이 사실 딱히 없는데. 약간씩 똥줄이 타들어가고 있다.